“중대재해법, 현역병은 왜 적용 안됩니까”…헌재로 간 ‘김 상병’
정부 무대응에 2년 넘게 끌어…“별개로 국회 입법 논의 필요” 지적도
[주간경향] 2018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죽음 뒤 국회는 산재 사망을 막겠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다. 이 법에 따라 안전 예방 시스템을 사전에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가 죽으면 기업의 대표이사까지 처벌된다. 안전을 경영방침으로 정하지 않거나, 사업 특성에 따른 위험·유해요인을 확인해 개선하지 않은 근본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공공기관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현역병이 군 복무를 하다가 사망했을 때 중대재해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강원 춘천시 한 육군 부대에서 상병으로 복무하던 김다민씨(27)는 2022년 5월 헌법재판소에 중대재해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현역병을 중대재해법 보호대상으로 보지 않는 해석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헌재가 선언해 달라는 청구였다. 헌재는 이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해 현재 심리 중이다.
■직업군인 보호하는 중대재해법, 현역병은 배제
지난 5월 28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김씨는 육군 전투준비안전단이 군 내부망에 올린 중대재해법 관련 카드뉴스를 보고 헌법소원을 청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거나, 도급·용역·위탁 등 사업 수행을 위해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를 중대재해법 보호대상인 ‘종사자’로 규정한다.
그런데 육군이 제작한 카드뉴스에는 이 종사자에 간부, 준·부사관, 군무원, 공무직 근로자, 도급·용역·위탁업체 직원이 포함된다고 돼 있을 뿐 병사는 언급돼 있지 않았다. 김씨는 ‘중대재해법상 종사자에 병사는 포함되지 않느냐’고 군 측에 물었고, 군 측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지난 5월 2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직업군인은 중대재해법상 종사자에 해당하지만, 현역병은 법률에 의해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업군인과 현역병이 같은 공간에서 유사한 업무를 하며 사실상 함께 위험에 노출되는데도 직업군인이 복무 중 사망하면 중대재해법이 적용되고, 현역병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꼈다. 김씨의 말이다. “부대에서 울타리의 덩굴을 쳐서 옮기고, 풀 정화, 대형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정리하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허리나 무릎에 무리가 가서 질환을 얻게 된 사람들도 있었고요. 계급에 따라 하는 일이 같지는 않지만 작업과 훈련, 생활을 함께하는 존재들이었거든요. 중대재해법 적용을 차별할 만큼 (직업군인 등과)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똑같은 안전사고가 있을 때 현역병은 차별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현역병들은 각종 재난 때 수해 복구, 제설 작업에 투입되기도 한다.
김씨는 이런 법 해석이 현역병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자 평등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헌법 제39조는 모든 국민의 국방의 의무를 명시하면서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사망한) 채 상병이 병사로서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 바로 다음 날 전문하사로 임관해서 같은 상황(사고)에 놓였으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라고 했다. 신분에 따라 보호 여부가 달라지는 셈이다.
중대재해법이 안전책임자에 대한 강한 처벌에서 나아가 산업현장의 안전문화 확립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현역병에게도 적용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씨는 중대재해법을 통해 군내에서 현역병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정착됐다면 채 상병 사건, 군기훈련 중 훈련병 사망 사건과 같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군에서 안전관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체화된 경험으로써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문화가 정착돼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법은 안전문화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죠. 중대재해법을 통해서 전문적인 안전관리자가 배치된다면 그분들이 현장의 공기를 직접 평가할 수 있을 거예요. 단순히 안전교육을 몇 회 했고, 몇 명이 들었다는 것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장병들에게 안전문화가 얼마나 체화됐는지 평가하고 다시 수정하는 시스템이 중대재해법을 통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요.”
현역병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게 현재 주류적인 해석이다. 헌재는 2012년 현역병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게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현역병이 복무 후 실직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더라도 고용보험 적용대상은 아니라는 2010년 법원 판결도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지급, 고용보험 적용과 안전사고로부터 현역병의 생명권을 보호할 것인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권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에 필요한 입법·행정상의 조치를 취해 그 침해의 위험을 방지할 포괄적 의무를 진다.” 2008년 헌재가 한 결정문에 쓴 내용이다.
■“믿을 수 있는 안전 시스템이 병사 사명감도 높여”
병사의 권리를 말할 때 ‘군대 생활 편하게 한다’, ‘당나라 군대가 다 됐다’는 식의 비난이 따라붙는 것도 현실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안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본인의 의지 없이 징집된 20대 초반 남성 중에서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국방의 의무를 다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헌법에서 유일하게 ‘신성한’이라는 표현이 들어가는 게 국방의 의무예요. 국방의 의무를 지고 병역을 수행하는 것이 청년들에게 그 자체로 신성하고 자랑스러우면서, 사명감 넘치는 일이 돼야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남성들이 군 생활에 사명감을 느끼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의 아들, 친구, 연인과 같은 사람들이 국가를 지키기 위해 병사로서 헌신하는 동안 국가 또한 그들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매번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높은 분들이 사과하고 책임지고 사퇴하는 것에서 나아가 신뢰성 있는, 견고한 안전 시스템을 만들어서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생명과 안전을 더 강력하게 보장하는 법과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고, 병사들이 활동하는 모든 공간에서 그 법과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게 확립돼야 해요. 내가 국가를 지킬 테니까 국가도 나를 지킨다, 이런 상호신뢰가 형성될 때 믿음직스러운 군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부는 이 헌법소원에 무관심하다. 헌재는 국회의장, 법무부, 고용노동부 등 이해관계기관에 의견을 내라고 공문을 보냈지만, 명시적 답변을 보낸 곳은 한 군데도 없다. 김씨는 이해관계기관의 답변을 신속히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정부의 무대응 속에서 별다른 법률 공방 없이 2년 넘게 심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산업안전보건법이 국방행정과 관련해 법 적용을 일부 면해주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는 반면 중대재해법은 명시적인 예외조항이 없다는 점에서 중대재해법이 군 전체에 적용된다는 해석도 한다. 기자는 국방부에 지난 5월 30일 중대재해법 적용 범위에 관한 명확한 입장을 물었으나 국방부는 지난 6월 6일까지 답변하지 않았다.
헌법소원과 별개로 국회의 입법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중대재해법이 애초 종사자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규정해 고교 현장실습생과 같이 고용방식에 따라 보호되지 못하는 노동자군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미희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4월 ‘국방논단’ 연구보고서를 통해 “중대재해법 시행에 따라 국방 분야에서도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며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연구원은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에 중대재해법 취지를 담아 군인 안전에 대한 군의 의무를 규정하자고 했다.
김씨를 대리하는 홍남희 변호사(홍클로버 법률사무소)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린 나이의 현역병들이 군대에서 사망하는 사고를 보면서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지 않아 장병들 보호에 태만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며 “헌재가 헌법소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계기로 법과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경각심을 갖고 현역병의 안전과 보호에 신경을 쓰면 좋겠다”고 했다.
중대재해법을 연구해온 손익찬 변호사(공동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사업의 수행을 위해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는 그 위험을 창출하는 쪽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중대재해법의 목적인 만큼 채 상병 사건 등 군내 안전사고를 중대재해법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며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고 군대에 간 현역병에 대해서는 더 보호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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