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죽만 울린 축구 국가대표 감독 선임, 귀한 시간만 날렸다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2024. 6. 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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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했던 데드라인 5월 훌쩍 넘겨…임시 감독 체제 거듭
무수한 후보들 이름만 나열…협상도 보안도 ‘낙제점’

(시사저널=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은 다시 한번 중요한 시간을 임시 감독 체제로 허비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 2월 아시안컵 부진과 A대표팀 운영 방기 등 이유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경질한 이후 후임 사령탑을 찾아왔다. 선임 주체인 전력강화위원회는 정해성 위원장이 목표했던 데드라인인 5월 중순을 훌쩍 넘겨버렸다. 결국 5월20일 축구협회는 6월6일과 11일 열리는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두 경기를 김도훈 임시 감독 체제로 치른다고 공식 발표했다.

임시 감독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울산 HD 감독으로 2020년 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서며 능력을 증명한 김도훈 감독은 이후 싱가포르 최고 클럽인 라이언시티 세일러스를 이끌었다. 6월 A매치 일정이 싱가포르와의 원정 경기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상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을 택한 것이다. 홈에서 치르는 중국전 전략도 맥락이 비슷하다. 김 감독은 최근까지 중국 슈퍼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박건하 수석코치, 최성용 코치를 선임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차기 월드컵 본선으로 향하는 결전의 무대를 앞두고 준비성과 연속성에 문제가 생겼다. 신임 감독은 최종 예선의 막이 오르는 동시에 자신의 축구를 팀에 입히기 위한 실전과 실험을 병행하는 힘든 미션을 받는다. 유럽파가 즐비한 대표팀의 실정상 그 전에 따로 평가전을 잡을 수도 없다. 왜 대한축구협회와 전력강화위원회는 4개월이라는 골든타임을 놓쳤을까?

6월3일(현지시간)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조별리그 싱가포르전을 앞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싱가포르 비샨 스타디움에서 훈련하는 가운데 김도훈 임시 감독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협상 접촉 단계에서 후보들 이름 새어나와

2월1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재신임 여부를 묻는 긴급임원회의를 마친 후 직접 취재진 앞에서 경질을 발표했다. 나흘 후 감독 선임을 맡는 전력강화위원회가 재편됐다. 클린스만 감독 체제에서 후방 지원을 맡았던 마이클 뮐러 전 위원장이 전혀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 속에 지도자 경험이 풍부한 정해성 경기운영위원장이 새 전력강화위원장이 됐고, 전력강화위원도 전원 교체했다.

정해성 신임 위원장은 3월부터 정식 감독을 선임하겠다며 속도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외국인 감독과 접촉해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실상 3월 정식 감독 선임 계획은 한국인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선포와 다름없었다. K리그를 2년 연속 제패한 홍명보 울산 감독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언급됐으나,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대표팀의 불을 끄기 위해 국내 감독을 차출하는 방식은 구시대적이라는 것. 홍 감독은 지난해 8월 울산과 2026년까지 연장 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플랜A 실패 이후 전력강화위원회는 최악의 선택을 했다. 3월 A매치를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로 치른 것. 황 감독은 태국과의 2연전에서 1승1무를 기록하며 소임을 다했지만, 본업인 올림픽대표팀 업무를 제쳐둬야 했다. 유럽파 차출과 올림픽 최종 예선에 대비해야 할 시간에 A대표팀 업무를 맡은 황선홍 감독은 결국 한 달 후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겸임 체제 결정과 함께 나온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당초 황선홍 감독의 A대표팀 정식 감독 선임까지 고려했던 정해성 위원장은 급하게 외국인 감독 선임으로 기수를 돌려야 했다. 다양한 에이전트가 제안한 프로필 중 8명의 후보를 골라 유럽으로 떠나 미팅을 가졌고, 제시 마치 전 리즈유나이티드 감독과 헤수스 카사스 이라크 대표팀 감독을 최종 후보로 낙점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은 최악이었다. 1순위 후보인 마치 감독과 협상에 돌입했지만 열흘 후 나온 결과는 결렬이었다. 연봉에 대한 큰 틀의 합의를 마쳤던 것으로 알려졌던 터라 충격이었다. 마치 감독은 행선지를 급선회해 캐나다 A대표팀으로 향했다. 캐나다 축구협회는 재정적으로 대한축구협회보다 열악하지만 북중미월드컵에 대비해 자국 프로팀들의 지원을 끌어내며 마치 감독을 영입하는 협상력을 발휘했다. 반면 대한축구협회는 마치 감독의 한국 상주는 어렵다는 조건에 막혀 더 진척하지 못했다.

카사스 감독은 현직 사령탑이지만 비교적 적은 연봉과 합리적인 위약금으로 인해 확실한 대안으로 꼽혔다. 문제는 이라크 측의 강력한 반발이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내 회원국인 한국이 자국 감독을 빼가려는 정황에 대해 이라크 축구협회가 불만을 표출한 것. 때마침 AFC 집행위원에 당선되며 국제 축구계에 복귀한 정몽규 축구협회장으로선 굳이 갈등을 일으킬 필요가 없었고, 결국 카사스 감독도 선임이 불발됐다.

3월 A매치 종료 후 2개월 동안 무수한 감독 후보가 거론되고 있다며 화제는 끌었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었다. 조세 무리뉴, 사비 에르난데스, 라파엘 베니테스 등 유명 감독과의 접촉설도 나왔다. 정해성 위원장은 선임 실패 후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인터뷰를 했지만 오히려 협상력 부재만 인정했다. 전임 외국인 감독 선임 때와 달리 협상 접촉 단계에서 이미 많은 감독의 이름이 새어나오는 보안 실패까지 이어졌다.

지난 3월 국가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았던 황선홍 감독 ⓒ연합뉴스

제2의 클린스만 사태 또 되풀이될 수도

6월3일 전력강화위원회는 감독 선임을 위해 재소집돼 회의를 진행했다. 새로운 후보를 선정해 협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대한축구협회 내부에선 오히려 유럽 주요 리그 시즌이 종료됐고, 6월과 7월 열리는 유럽선수권 등 국제대회 종료 후 접촉 가능한 대안이 더 많을 것이라며 전화위복으로 보는 분위기다. 하지만 외부의 시각은 냉랭하다. 우리만 A대표팀 감독 후보를 찾는 게 아닌 만큼, 능력 있는 지도자는 자금력 등에서 경쟁 우위인 다른 국가와 클럽으로 갈 것이라는 게 현실적 상황이다.

정몽규 회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취재진을 만나 "6·7월 중에는 감독을 선임할 것으로 본다"는 낙관론을 내놨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때와 달리 자신이 나서지 않고 전력강화위원회에 감독 선임을 일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결국 최고위층이 나서서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톱다운' 방식이 아닌 상황에서 감독 선임 시스템 자체가 난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감독 평가와 미팅은 전력강화위원회가 맡지만, 협상은 행정 파트인 경영본부 관계자가 나선다. 이런 간극 탓에 당초 전력강화위원장과는 긍정적으로 교감한 감독 후보와 에이전트가 다른 입장을 취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것은 대한축구협회가 2021년 전력강화위원회 역할을 결정이 아닌 자문으로 격하시킨 데서 비롯된다. 감독 후보가 한국행에 의지를 표출하면 최대한 빨리 협상으로 마무리하도록 전력강화위원회에 권한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감독 선임은 지난 4개월과 비슷한 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그럴 경우 결국은 정몽규 회장이 나서야 하고, 제2의 클린스만 선임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게 축구계의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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