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죽었다던 마스크팩 업체들…'이것' 만들어 수백억 잭팟 [방준식의 재+부팅]
소성현 피부과학연구원 부사장
"K뷰티 대표, 마스크팩서 선크림 바뀌어
수출 늘어나면서 임상 시장도 급성장"
"과거 K뷰티 하면 떠오르는 제품은 마스크팩이었어요. 중국 보따리상들이 미친 듯이 사 갔죠. 장사가 잘되다 보니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출혈경쟁이 시작됐습니다. 한장에 3500원에 팔던 제품들이 1000원까지 내려갔으니까요. 최근 들어 K뷰티가 다시 부활했습니다. 선봉장은 바로 선크림이었죠.
2020년 말 ‘자외선차단수치(SPF) 조작 사태’로 제조사들이 햇빛 차단 제품 개발에 작정하고 뛰어들었거든요. 사용감은 유지하거나 더 좋아지면서도 SPF 수치가 정확하게 나오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현재 중국의 빈자리를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으로 수출해서 빠르게 성장하며 연간 수백억씩 순수익을 내는 알짜 브랜드들이 늘고 있습니다. 투자 기회도 커지고 있죠. (웃음)"
글로벌 선크림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그동안 서구권에서는 일광욕 문화가 있었지만,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피부암 예방으로 선크림 사용을 권고하면서 수요가 급격하게 느는 추세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선크림 시장 규모는 2024년 149억 달러에서 2032년 222억8000만 달러로 연평균 5.16%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K뷰티가 성장하면서 화장품 효능에 대한 인체적용시험 및 시험관(In vitro) 실험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금융맨에서 뷰티 기업가로 변신한 한국피부과학연구원 소성현 부사장의 이야기다.
Q.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화장품 임상기관 한국피부과학연구원에서 부사장을 맡고 있는 소성현(43) 입니다. 저는 금융맨이었습니다. 뷰티 쪽은 전혀 몰랐어요. 화장품도 스킨로션도 잘 바르지 않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뷰티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3년 미미박스에 투자하면서 였습니다. 당시 K뷰티가 급격하게 성장했던 시기였어요. 이츠스킨이나 토니모리와 같은 기업들이 몇가지 히트상품으로 크게 성장해서 상장하는 것을 지켜봤죠. 비상장 초기 기업들을 투자하러 다니거나, 미팅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표님들과도 인연을 맺게 됐죠. 투자 검토하던 마스크팩 회사였던 이미인을 매각주선 했고, 2017년 마스크팩을 만드는 '얼트루'라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업계에 뛰어들게 됐죠."
Q. 마스크팩이 한창 인기였던 시기였습니다.
"초기에 'K뷰티'를 알리게 된 제품은 마스크팩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한국 마스크팩 품질이 가장 좋기 때문이죠. 앰플과 크림에 들어가는 레시피로 만든 내용물을 얼굴모양의 천에 적셔서 붙이고 있으니 얼마나 흡수가 잘되고 효과가 있었겠어요. 거기에 마케팅하기에도 시트를 붙이 얼굴이 눈에 딱 보이니 너무 좋았죠.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중국 수출 물량이 감당 안 될 정도로 많았어요. 규모가 작은 회사였지만 연 매출이 50억원까지 수직으로 상승하기도 했습니다."
Q. 경쟁이 치열해졌다고요.
"업체들끼리 출혈 경쟁이 시작됐죠. 제품 퀄리티가 상향 평준화됐기 때문에 마케팅 경쟁을 해야 했으니까요. 한장에 3500원에 팔던 가격이 1000원까지 내려갔죠. 그러다 앰플 회사로 아예 전환했습니다. 당시 직원이 '마스크팩에 쓰는 앰플만 따로 팔자'라는 아이디어를 듣고 결심했죠. 아주 묽은 앰플과 끈적이는 앰플 2종류를 출시했는데, 그 중에서 묽은 앰플이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인기뷰티 프로그램인 '겟잇뷰티'에서 1등을 하면서, '콧물 앰플'로 입소문이 났어요. 지금은 전체 회사 매출에서 80%가 앰플이 차지하고 있죠. 마스크팩은 기초화장품 중에 가장 저렴한 제품이기 때문에 앰플, 크림을 주력으로 하던 회사가 마스크팩까지 확장하는 경우는 있어도, 반대로 저렴한 제품인 마스크팩을 주력으로 하던 회사가 앰플 브랜드로 올라간 경우는 아마 없을겁니다."
Q. 왜 화장품 임상 기관을 인수했나요.
"한국은 전세계에서 화장품 임상이 가장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2012년 화장품법 전면개정으로 ‘화장품 표시광고 법위 및 실증’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어 특정 효능을 마케팅하기 위해서는 인체적용시험을 받아 실증자료를 보유하고 있어야합니다. 화장품 광고를 위해 임상을 받아야한다고 해서 알아보니 상당한 비용이 들더군요. 본격적으로 임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러다 우연히 2020년 한국피부과학연구원 안인숙 대표님과 인연을 맺고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약 120억원 펀드를 조성해 풋옵션 행사분을 모두 인수하고 투자자 대표로 합류하게 되었죠. 하지만 코로나로 영업이 불가능해 위기 상황이었죠."
Q. 위기가 기회가 됐다고요.
"당시 해외 커뮤니티에서 K뷰티 제품들의 문제점을 지적했었어요. 선크림의 자외선차단지수(SPF)를 50이라고 광고했는데, 실제로는 지수가 20도 안나오는 기능 없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인숙 대표님이 유튜브를 통해 '미달 제품'들을 나열해 방송을 했는데, 조회수가 50만뷰가 나오면서 이슈가 됐죠.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방송을 인용하면서 난리가 났었습니다. 대량 반품부터 한국 선크림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까지 나왔죠. K뷰티의 신뢰도가 추락했죠."
Q. 기회를 노린 곳이 대박이 났군요.
"그 상황속에서 선크림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던 곳들이 있었습니다. 모든 논란의 상황을 역전해 지금은 유럽제품보다 한국 선크림이 수치가 더 정확한 제품이 됐죠. 해외에서 조선미녀 '맑은쌀선크림'이나 라운드랩의 '자작나무' 등이 인기를 끌었죠. 조선미녀의 경우 선크림으로만 1년에 버는 이익이 600억원이 달할 정도니까요."
Q. K뷰티에 중소형 브랜드가 많아진 이유가 있나요.
"우선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한국은 화장품 위탁생산(OEM) 시스템이 원스톱으로 잘되어 있어요. 코스맥스나 콜마와 같은 제조사부터 화장품 용기 회사도 많죠. 브랜드 컨셉만 만들면 제조사가 수십종 제품으로 개발해줘요. 최저가로 좋은 제품을 빨리 만들 수 있죠."
Q. K뷰티에 숨은 알짜들이 많다고요.
"주식만 투자하는 분들은 '화장품 주식 요즘 잘 안 되잖아'라고 말해요. 최근 잘 나가는 회사들이 상장하지 않은 곳들이 많기 때문이죠. 최근에는 500억에서 2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중견 업체들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케팅과 브랜딩을 잘하는 곳의 이익률이 30%에 달할 정도로 높습니다. 코로나 이후 아마존 같은 유통채널을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한 효과죠. 해외 매출 비중이 80% 달하는 곳도 많습니다."
Q. K드라마 힘이 크다고요.
"드라마를 통해 한국식 화장법이 인기를 끌고 있죠. 특히 일본 시장이 급성장했어요. 일본 젊은 세대는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 않거든요. 중국은 2019년까지 최대 수출 시장이었지만, 지금은 그때의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현재는 90%가 일본, 중동, 미국, 러시아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마존을 잘 활용하는 브랜드들은 미국과 유럽 쪽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전 세계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기 때문이에요. 제조 기술은 일본 수준까지 올라갔고, 가격은 중국보다 약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세계 시장에서 통했던 힘이었죠."
Q. 엔젤투자자로도 유명한데요.
"현재까지 200여개의 기업에 투자하고 있어요. 뷰티 플랫폼 '글로우픽'을 운영하는 글로우데이즈의 경우 4년 전에 일본 상장사에 매각해 투자금액의 8배를 벌었죠. 1인이 먹는 피자를 컨셉으로 한 '고피자'는 3년 전 매각해 15배 가까이 수익을 내기도 했죠. 그 외에도 공유주방 플랫폼인 WECOOK 운영사 ‘심플프로젝트컴퍼니’, ‘팻프랜즈’ 등 초기투자에서 엑싯까지 함께한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가장 큰돈을 투자했지만, 잘 안된 곳도 있죠."
Q. 투자 혹한기인데, 왜 다시 투자에 나섰나요.
" 2020년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는 투자를 안 했어요. 투자자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당시엔 돈이 넘치던 시절이라 거품이 끼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창업자들이 50억원의 기업가치로 투자받고 싶다고 하는데, 사업모델(BM)이 전혀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작년 8월부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아무도 투자하려고 하지 않더군요. 이제 제 돈이 '대접받는 시기'라고 판단했어요. 모두가 몰려들 때 투자하면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해요. 계약 조건도 좋지 않죠. 그래서 벤처캐피탈(VC)과 얼어붙었다는 기사를 보고 움직였습니다. 기업가치에 거품이 꺼진 지금이 바로 투자할 때라고 생각했죠."
Q. 최근 투자자금이 AI 스타트업에만 몰리고 있습니다.
"저는 유행이나, 테마를 따르지 않아요. AI 이전에는 메타버스가 유행이었어요. 시장엔 언제나 '테마'가 존재하죠. AI 전문가도 투자를 성공시키기 어려운데, 일반인들이 어떻게 성공하겠어요. 저는 '사람들이 죽기 전까지 사용할 것들'만 투자합니다."
Q. 특정 분야나 종목에 투자한다는 말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가입니다. 잘되는 회사들은 초기 사업 모델로 마지막까지 엑시트(Exit)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나 상황이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죠. 돈을 벌기 위해 무한하게 변화할 수 있는 창업가에게 투자해야 하는 이유죠. 사업 모델이 좋더라도 대표가 이상하면 그 사람이 사업을 접었을 때 투자자는 소중한 투자금을 잃게 됩니다. 어떻게든 영업 통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창업자를 항상 찾고 있습니다. 절대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꾸준히 만나고 알아 왔던 사람에게 투자하죠. 투자 미팅은 제가 먼저 요청합니다. 간혹 이메일로도 투자 요청이 오지만 대부분 읽지 않아요. 유명하지도 않은 저에게 메일이 왔다면 모든 사람에게 거절 받은 곳이라는 의미기 때문이죠. (웃음)"
Q. 미술 컬렉터로도 유명합니다.
"앞서 말했던 '사람들이 죽기 전까지 사용할 것들' 중 하나는 바로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중에서 미술품이 좋은 이유는 '중고'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술품을 소유하면서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내 공간에서 내 그림을 보여주면 돈이 전혀 들지 않죠. 처음 찾아온 손님들에게 작품과 작가를 소개하면서 아이스브레이킹도 할 수 있어 손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아트토이 등 크고 작은 것들 합치면 1000여점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얼마나 돈이 많길래 미술품을 사느냐고 묻기도 해요. 사실 저는 '엔젤 투자'가 본성입니다. 물론 한국 단색화류도 몇점 컬렉팅했지만 주로 제가 직접 발굴한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 백만원 이하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제 기준에서 비싼 그림은 절대 사지 않아요. 작품은 결국 설치하고 항상 봐야하는데 볼 때마다 비싸게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까요. 초기 작가를 발굴하고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수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Q. 작품은 주로 어디서 구매하시나요.
"저는 아트페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초대 받아서 가더라도 한시간 정도 주요한 갤러리들이 밀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 실물과 동향을 파악하는 정도의 탐방을 하는 수준입니다. 대신 미술관 전시와 개인전을 찾아가요. 한국에도 좋은 전시가 진행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일본에서는 분기마다 전세계적인 대가들의 작품 전시가 있어 자주 가는 편입니다. 개인전에서는 작가와 직접 이야기하고 공감할 수 있어 좋죠. 작가를 고르는 눈과 창업가를 고르는 눈은 비슷해요. 포기하지 않을 창업자를 찾는 것 처럼 미술 작가도 붓을 꺾지 않을 작가를 찾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고 있죠."
Q. 1000점 중에 단 하나의 작품만 남긴다면요.
"일본의 아티스트 Tide(Ide Tatsuhiro)의 작품입니다. 유명해지기 전부터 약 10점 정도를 구매했죠. 작가에게 직접 커미션 작업을 부탁해 제 가족을 고양이 4마리로 표현한 그림을 받았죠. 지금은 작가의 작품 가격이 올라 경매로 내놓거나 선물로 줘 이제 4점 정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 중에서 이 작품은 아마 평생 가지고 갈 겁니다. (웃음)"
Q. 최근 일본의 커피 브랜드에 투자했다고요.
"일본 후쿠오카에 기반을 둔 인기 커피 브랜드 '노 커피 노 라이프(NO COFFEE)' 입니다. 주위에서 '커피 프랜차이즈 사업하냐'고들 묻는데, 전혀 다릅니다. 이 브랜드의 모토는 '좋은 커피와 함께하는 삶'으로 문화와 예술가와 협업하는 곳으로 유명해요. 커피와 함께 한국과 일본 양국의 작품 전시와 문화적 교류를 촉진하는 곳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한정판 미술품과 협업한 제품, 의류 등을 통해 문화 팬덤을 키우기 위한 공간이죠."
"저는 항상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화장품 임상 기관도 브랜드가 명확해야 하죠. 남들과 확연하게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하죠. 작가도 똑같아요. 멀리서 봤을 때 그 작가의 작품임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죠. 미술품이든 브랜드든 창업가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엔젤 투자자로서 창업자와 동행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단순히 돈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창업가의 마인드로 간섭하지 않고 동반자처럼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웃음)"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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