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8년 전 내 아들 죽음 지금도 반복”
[주간경향] “우리 아들 때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또 이런 일이 반복된 것인지, 제가 더 열심히 해서 막았어야 했는데 싶었어요. 저도 이렇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군은 그런 마음이 안 드는지 묻고 싶네요.” 고 홍정기 일병 어머니 박미숙씨(57)의 말이다. 지난 5월 29일 박씨는 다른 군 사망사고 피해자 유족과 함께 최근 군기훈련을 받다 사망한 육군 훈련병의 빈소에 다녀왔다. 박씨는 훈련병이 훈련을 받다가 쓰러졌다는 뉴스를 보고 곧바로 군에서 세상을 떠난 아들 생각이 났다.
홍정기 일병은 백혈병 발병에 따른 뇌출혈로 입대 7개월여 만인 2016년 3월 사망했다. 박씨는 아들이 사망한 직후엔 군에 책임을 따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고 군을 믿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 6월 3일 서울 광진구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당시에는 군에서 최선을 다해주는 것으로 알았기 때문에 믿었다”며 “단지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달라고만 부탁을 했다”고 했다. 2018년 홍 일병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군이 부실한 대처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진상규명은 유족의 몫이었다. 박씨는 서울 홍익대 앞, 강남, 대학로 일대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전단을 돌리고 국방부와 군에 항의했다. 꿈쩍 않는 군의 태도에 박씨는 “그때서야 군이 이런 조직이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2020년 홍 일병이 훈련기간에 구토와 어지럼증 등의 증상으로 의무중대와 사단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군 측이 단순 진통제 처방만 하고 심각한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민간병원 검사 결과 정밀검진을 권유받았는데도 부대가 훈련기간이라는 이유로 홍 일병을 계속 훈련에 참여시켰다고 했다. 경찰은 최근 일어난 훈련병 사망사고에서도 부당한 훈련 지시가 있었는지, 응급대처가 제대로 됐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박씨가 말했다. “우리 아들이 ‘엄마, 여기는 무서워. 완전군장하고 자’라고 할 때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정기야, 지휘관 이야기 잘 들어. 지휘관 지시 잘 따르면 돼’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 아들 사건, 채 상병 사건, 이번 군기훈련 사고까지 보면서 딜레마가 생기는 거예요. ‘내 안전은 내가 책임져야 하네, (물에) 들어가란다고 다 들어가면 안 되네, 명령한다고 다 따르면 안 되네’ 싶은 거죠. 군대 보낼 때 아이들에게 네 안전은 스스로 지키라고 말해야 하나요? 어떤 지휘관을 만나느냐에 따라 생명이 왔다 갔다 하니까 부모들은 좋은 지휘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야 하나요? 제대로 벌을 주고 진상을 규명해야죠. 군이 생명을 귀하게 여겼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박씨는 시민들이 군 사망사고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 아들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전단을 뿌릴 때, 군대 갔다 온 20대 젊은이들이 외면하더라고요. ‘그래, 이런 재수 없는 일은 나 같은 사람이 당하는 거고, 너희들은 다 살아서 왔으니까 돌아보고 싶지 않겠지’ 싶었어요. ‘나만 아니면 돼’, ‘나와 관계없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실은 관계없는 일이 아니에요. 내 아들, 조카, 동생 다 관계돼 있고, 제가 겪어보니 그 상처는 회복하기 너무 힘들어요. 귀한 생명을 속절없이 보내서는 안 돼요. 군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시스템을 하나 더 고쳐 누가 군에 가도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국가는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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