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도로 한복판 오리가족, 가슴 떨리는 50초 '응원'[인류애 충전소]
반대편 건너갈 수 있게 50초간 차로 막아준 화지씨, 기다려준 운전자들
"그 상황 또 와도 구할 거예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잖아요"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지난달 30일 오후 2시 반, 강원도 42번 국도에서였다. 자동차 전용 도로였고 평일 오후라 차가 많지 않았다.
화지씨는 1차선에서 운전하다가 멀리서 무언가 움직이는 걸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처음엔 무슨 비닐봉지가 놓여 있나, 하고 가까이 가서 보니 오리가 차도를 건너려는 거였어요. 순간 당황스러웠지요."
감속하지 않았다면 오리를 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
13마리 오리 가족은 갈 방향을 잃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건너려다 멈칫. 한쪽은 중앙분리대라 큰 시멘트 벽에 막혀 있었고, 반대편 논밭으로 빠져나가려면 차도를 건너야만 했다.
아기 오리는 이미 지쳤는지,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엄마 오리는 우왕좌왕했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갈 때마다 아기 오리들이 졸졸 따라다녔다.
숨 막히는 15초가 흘렀다. 화지씨 차가 멈춰 있는 걸 갸우뚱하며 확인한 엄마 오리가, 비로소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 오리는 최선을 다해 1차선을 건넜다. 아기 오리들도 사력을 다해 뒤따랐다. 1차로는 화지씨 차량이 멈춰 있었던 터라 안전이 확보돼 있었다. 7초쯤 더 지나자, 오리 가족이 1차선을 거의 다 건넜다.
그러나 문제는 2차선이었다. 절반은 왔고, 절반은 더 건너가야 했다.
오리가 움직이는 것에 맞춰, 화지씨는 2차선으로 천천히 차를 옮길 준비를 했다. 차 몇 대를 보낸 뒤 비었을 때 진입했다.
뒤쪽은 700m 정도 직선 도로여서, 다른 차들이 화지씨 차를 보고 속도를 줄이기엔 거리가 충분했다.
다행히 뒤따라오던 차도 비상등을 켜며 서행하다 멈춰서 잠시 기다려주었다.
그리 찰나의 시간에, 엄마와 아기 오리 13마리가 2차로까지 무사히 다 건넜다.
2차선 바로 오른쪽은 논밭이라 오리들은 그리로 사라졌다. 너무 다행이었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화지씨의 마음은 어땠을까.
"진짜 빨리 건넜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어요. 되게, 되게 엄청 벌벌벌벌 막 떨리는 거 있잖아요. 긴장이 풀리지 않는 상태로, 손도 마음도 벌벌 떨렸지요. 쟤네(오리들)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나왔을까, 한편으론 안타깝다는 생각도 했고요."
안도하는 마음뿐이었다. 오리들이 무사해서, 또 사고가 안 나서. 또 뒤차들이 기다려줘서 너무 고맙다고 생각했단다. 오리들이 건너자마자 바로 다시 출발했다.
어쩌면 위험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인데, 어떤 마음으로 그랬느냐고 물었다. 그가 대답했다.
"실은 제가 대단한 동물애호가이거나 그랬던 건 아녔어요. 꼭 살려야 돼, 이런 생각보단 제 차로 오리를 칠 수가 없는 거예요. 죽일 수도 없고 그걸 보는 것도 너무 끔찍하고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멈췄었어요."
"5년 전쯤이었어요. 경기도 여주에 갔었는데, 시내 길이었고요. 신호가 걸렸는데 시각장애인 한 분이 횡단보도를 못 건너고 계시더라고요. 그땐 동생이 운전하고, 제가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요. 동생에게 차를 어디 주차해두라고 하고, 내렸어요. 30대 초중반 정도 돼 보이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무사히 건널 수 있게 도왔지요."
그 시각장애인은, 알고 보니 그 동네가 초행길이었단다.
다 건넌 뒤 시각장애인은 화지씨에게 도움을 주어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그런 적이 더 있다고 했다. 어르신께서 걸음이 느려 횡단보도를 다 못 건널 때에도 도운 적이 있다고.
그러면서 화지씨는 "누구나 다 그러지 않나요?"라고 했다. 그래서 다 그렇진 않다고, 남일이라 여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지구가 언제부터 인간 목숨만 소중했나요. 똑같이 다 소중한 목숨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요.'
'소중한 생명들 지켜주시고, 뒤 차들도 한마음으로 무탈히 기다려줘서 다행이에요. 한뜻으로 생명 지킨 걸 칭찬합니다.'
'아, 진짜 세상에 이런 사람들만 살았으면 좋겠다, 제발.'
전체 댓글 중 95% 이상은 이리 훈훈했으나, 소수는 뒤에서 오던 차에 피해줄 수도 있었다고. 같은 행동을 다시 하지 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화지씨도 일부 댓글이 속상했는지, 해명하듯 글을 남기기도 했다.
'위험하단 걸 저도 본능적으로 알았어요. 다만 룸미러로 확인했을 때, 제 뒤에서 오던 차들이 한 대도 없었고요. 2차선에서 오던 차량도 3대를 다 보낸 뒤에야 차선을 바꿨습니다. 앞뒤로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였다면 저도 판단이 달라졌겠지만요. 결과만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제가 마냥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요.'
이 같은 댓글을 본 누군가 '참…이제 생명을 구해도 차 한 번 막히는 게 더 불만인 세상이 왔네'라고 남기자, 1만2553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또 다른 이는 이리 말했다.
'위와 비슷한 외국 영상들을 많이 봐왔는데, 거기 달린 댓글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는 확실히 사람들이 예민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일 하셨는데 그러한 댓글들에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이 멋진 남자들이 사랑스럽다.' '오리들이 길을 건너도록 도와준 분들이 친절하다.' '이 영상이 내 마음을 녹였습니다, 엄마 오리가 고맙다고 인사하네요.' '인간의 본성은 훌륭합니다.'
그러니 화지씨도 이와는 다른, 일부 악플을 보며 상처받은 듯했다.
"이게 정말 옳은 행동을 한 건가, 이런 생각 때문에 주관이 흐려지더라고요. 일부 악플을 보고 있자니 '내가 잘못한 걸까'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그럼 오리를 차로 쳤어야 했을까, 피하는 게 맞았을까, 정답은 없는 거잖아요. 제가 할 수 있었던 것 안에서, 상황이 따라줬다면 조금 더 인류애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뒤에 차가 오는 걸 보고, 저 사람들은 멈춰줄 거란 믿음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도 있고요."
13마리의 귀한 생(生)을 구한 사람. 지나치지 못한 마음 덕분에, 오리들은 올 여름을 또 살아갈 거라고. 화지씨에게 끝으로 이리 물었다. 만약에 또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어떡할지.
"똑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저는 똑같이 살릴 것 같아요. 제가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란 게 보장된다면요.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잖아요. 혼자 사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야지요."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탈덕 불가능" 박보검, 12년 전 팬 이름 기억…반갑게 포옹까지 [영상] - 머니투데이
- 블랙핑크 리사와 열애설…LVMH 회장 넷째 아들, 지주사 대표 됐다 - 머니투데이
- "창원·마산 일대에서 배달대행" 밀양 5번째 가해자 신상 폭로 - 머니투데이
- 심수봉, 6세 딸과 생이별 '눈물'…"전남편 돈 받은 유모가 데려가" - 머니투데이
- '징맨' 황철순, 빌트인 가구 훔친 혐의로 민사 소송…폭행 이어 또 구설 - 머니투데이
- "오 마이, 이걸 푼다고?"…린가드, 수능 영어 풀다 '당황' - 머니투데이
- 웃으며 들어간 이재명, 중형에 '멍'…'입 꾹 다문 채' 법원 떠났다 - 머니투데이
- "돈으로 학생 겁박"…난장판 된 동덕여대, '54억' 피해금은 누가 - 머니투데이
- 구로 디큐브시티, 현대백화점 나가고 '스타필드 빌리지' 온다 - 머니투데이
- 무대 내려오면 세차장 알바…7년차 가수 최대성 "아내에게 죄인"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