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중이 놓친 자백의 ‘골든타임’ [세상에 이런 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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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니던 딸에게 〈미안하다고 안 할래!〉라는 그림책을 읽어준 적 있다.
주인공 마사는 맛있는 간식도 나눠 먹을 줄 알고 책도 잘 읽는 아이이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엄마는 잘못하고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마사에게 과자를 주지 않고 아빠는 마사를 업어주지 않는다.
여기에 변호사가 가세하는 경우라면 대부분 법적 책임까지 문제되는 사안이므로 더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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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니던 딸에게 〈미안하다고 안 할래!〉라는 그림책을 읽어준 적 있다. 주인공 마사는 맛있는 간식도 나눠 먹을 줄 알고 책도 잘 읽는 아이이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엄마는 잘못하고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마사에게 과자를 주지 않고 아빠는 마사를 업어주지 않는다. 마사는 처음에는 조그만 목소리로, 나중에는 크고 씩씩하게 ‘미안해요’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일찍이 헌법재판소는 사과한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자발적인 것이어야 비로소 사회적 미덕이 될 것이고 외부로부터 강제하기 적합하지 않다”라면서, 사죄 광고를 법률로 강제하는 것은 “인간 양심의 왜곡·굴절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 형성의 강요인 것으로서 침묵의 자유의 파생인 양심에 반하는 행위의 강제 금지에 저촉되는 것”이라며 사죄 광고 공표명령에 대해 위헌 결정(1991년 4월1일 89헌마160)을 했는데, 과자를 먹고 싶은 마음을 이용해 사과를 가르쳐도 될까? 아주 잠깐 생각을 해보았지만, 과자를 이용하든 설득하든 무서운 표정을 짓든, 사과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은 어른의 책임일 것이다.
‘사과’할지 ‘유감’ 표명할지 ‘해명’을 할지
그러나 정작 어른의 세계에서 사과는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초년생 시절 누군가로부터 “자주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프로의 이미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여자들이 특히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라는 조언을 들었을 때, 사과는 좋은 것이라고 믿었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사과’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의뢰인에 대해 비판 여론이 발생한 때 혹은 발생할 예정인 때, 입장을 밝힐지 안 밝힐지, 선제적으로 입장을 밝힐지 아니면 추이를 지켜볼지, 어떤 형식으로 누구 명의로 입장을 밝힐지, ‘사과’를 할지 ‘유감’을 표명할지 ‘해명’할지, 모든 경우의 수와 예상 효과를 따져보아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외부 변수가 발생할 경우도 많고, 어떤 지점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지 정확히 예상하기 쉽지 않다. 여기에 변호사가 가세하는 경우라면 대부분 법적 책임까지 문제되는 사안이므로 더 신중해야 한다. 사과가 자백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강히 부인하다가 뒤늦게 번복하면 더 큰 처벌을 받게 될 수 있으므로 자백의 ‘골든타임’을 놓쳐도 곤란하다. 변호사 입장에서 난도가 높은 업무인 셈이다.
위기 대응 비법을 공부해보려고, 성공한 사과와 실패한 사과의 사례를 분석한 〈공개 사과의 기술〉이라는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 책을 보면, “사과는 비난받아 마땅한 자신과 한발 물러서서 비난하는 사람들과 공감하는 자신, 즉 정상적 관계로 복귀할 가치가 있는 자신으로 분리하는 행위”라는 식의 ‘이론’에서부터 “과거의 일은 수동형으로 모호하게, 현재와 미래는 주어를 분명히 하여 명확하게 서술”하는 등의 여러 ‘테크닉’을 발휘한 사과문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과하는 기술’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사과는 사과를 받는 사람이 중요하고, 무엇을 잘못해서 사과하는지를 명확하고 진실하게 표현하는 사과가 대체로 성공한다.
가수 김호중씨가 사고 발생 열흘 만에 음주운전을 시인한 사건과 그에 대한 분석 기사를 보며, 어른들의 세계는 그림책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변호사는 위기 대응 업무에서 최선의 효과와 최소한의 책임을 부담할 메시지를 계속 궁리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사과의 기술은 어쩌면 복잡할 것 없이, 어릴 때 배운 그대로 진심과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이혜온 (변호사)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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