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너무 달라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한겨레 2024. 6. 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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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해표마을 탐방
무릎 꿇고 영접했던 낫깃털이끼
해표들, 해조류 위 평화로운 오후
안정된 공간에서 포근함·상실감
어느 날 고래 나타나 고단함 위로
해표들이 해안가에서 마치 강아지들처럼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

우리는 일단 황금빛 이끼숲에서 대기하며 원격탐사팀의 드론 세팅을 기다렸다. 그 짧은 틈을 타 엘(L) 박사는 우리를 낫깃털이끼 언덕으로 데려가 바늘보다도 더 가는 포자의 존재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각자 구역을 정해 몇개의 포자가 발견되는지를 세어보자고 제안했다. 곧 일을 하자는 거였다. 지의류의 아버지 홍 선생은 남극 식물에는 서서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허리를 숙여야 보이는 것이 있고 무릎을 꿇어야 보이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낫깃털이끼의 포자가 그랬다. 매직 아이처럼 혼돈의 입체성을 띠는 낫깃털이끼들 위로 엎드린 채 나는 실금 같은 포자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안 보여요!” 하며 툴툴거리던 엠(M)과 나는 이내 “여기 있네!” 하고 소리쳤고 나중에는 은근히 경쟁이 붙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엠이 나보다 더 많은 포자를 찾았다.

“여기 진흙이 있네요.”

“작가님, 그건 진흙이 아니라 낫깃털이끼들이 한자리에서 생장과 휴면을 거듭하면서 만들어낸 피트층이에요.”

낫깃털이끼는 죽은 자기 몸을 배양분으로 삼아 자라고, 성장한 새로운 몸체는 이후 또 다른 줄기를 위한 기반이 된다. 그렇게 해서 가장 기초적인 생태를 만들어가는 이끼는 남극에서 가장 흔하고 미미한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무릎을 꿇고 영접해야 마땅한 존재이기도 했다. 이끼가 없다면 남극이라는 세계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낫깃털이끼의 모습. 이끼는 남극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1차 생산자라고 할 수 있다.

터진 멍게를 레드카펫 삼아

드론이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날씨가 점점 흐려지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공기는 차가워졌고 여름에만 일시적으로 생겨나는 고요한 호수 위로도 눈송이가 내렸다. 남극의 차가운 공기가 얼음조각이 되어 자기 몸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회의가 열렸고 일단 날씨가 괜찮아질 때까지 식사를 하며 대기하기로 했다. 우리는 힘들게 온 거리를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원격탐사팀은 계속 현장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대피소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펼쳐놓았다. 셰프가 정성 들여 준비해준 불고기 도시락과 언 몸을 녹여줄 컵라면이었다. 나는 애지중지하던 초코바를 모두에게 돌렸고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또다시 한국 면세점에서 사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행 중 한명이 “한국에서 와서 맛있네요” 하고 다행히 동의해주었다. 정작 개수가 모자라 나는 그 맛을 보지 못했지만 다 나누어주고 나니 비로소 할 일을 마친 것처럼 해방감(?)이 들었다. 도시락과 컵라면을 단숨에 해치우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돌아갔는데 ‘옆방의 잘생긴 선생님’(옆잘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개 한 마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개는 앞지느러미를 짚고 일어나 머리통을 갸웃대며 갑자기 왜 이 마을이 시끄러워졌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이 녀석 아직 애기예요, 애기.”

이 녀석이라고 소개받은 물개는 확실히 얼굴선이 연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앳된 티가 났지만 가까이 가기에는 약간 꺼려지는 육중한 몸이었다. ‘옆잘님’은 계속 물개와 대화하면서 남극 생활이 어떤지 뭐가 부족해서 아까부터 히잉히잉 소리를 내고 있는지를 다정하게 물었다. 물개와 깊이 교감하는 드루이드(켈트족 사제를 뜻하는 단어로, 게임 등에서 동식물에 대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캐릭터를 가리키기도 함)처럼.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눈발은 더 심해졌고 군데군데 음영만 다른 잿빛 세상이었던 해표마을에는 눈송이들의 반짝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촬영을 못 하게 되는 건가 불안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은 느긋해 보였다. 날씨가 허락하지 않으면 남극에서는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 그 조용한 순응을 다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옆잘님’이 나를 불러 절벽 아래에 펼쳐진 해표마을 풍경을 보여주었다.

해안가로 밀려온 미역, 김 같은 각종 해조류와 터진 멍게들을 레드 카펫 삼아 해표들은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몸을 바짝 붙여 마치 강아지들이 체온을 나누듯 서로 기댄 채 한잠 중이었다. 누워 있는 무리는 두 마리에서 여덟 마리까지 다양했고 눈처럼 흰 것과 얼룩무늬를 지닌 것, 등 부분만 검고 배 부분은 누런 것 등 생김새도 달랐다, 마치 사람처럼. 정작 나는 추워 덜덜 떨고 있었지만 마음은 녹듯이 포근해졌다. 그러면서 일면 슬퍼지기도 했는데 너무 순정한 것, 아름다운 것, 들끓는 자아 따위와는 무관한 자연 자체의 풍경과 맞닥뜨릴 때 느끼는 기이한 상실감 같은 것이었다. 남극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나는 실제 내 삶은 이곳과 얼마나 상이한가를 동시에 감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남극이 인간이 인간처럼 살 수 있고 해표가 해표처럼 살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간이었다.

해표마을에 살고 있는 물개.

구명복 입은 채로 쓰러지기

촬영은 불가능하게 느껴졌지만 혹시 몰라 엘과 엠 그리고 원격탐사팀은 지상에서 계속 대기하고 나머지는 대피소로 돌아왔다.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차를 마시는 중에 월동대원이 “그런데 여미는 왜 죽은 거예요?” 하고 물었다. 그는 기지에 작가가 온다는 말에 인터넷으로 나를 검색했고 등단작을 읽어보았다고 했다. 고마웠다.

여미는 15년 전 내 등단작의 인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선택을 한다. 그 작품을 쓴 서른살은 이십대의 연장선상에 있던 시절이었고 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하루하루가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사는 동력을 스스로 내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8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취직을 하고 한달 월급의 반 이상을 저축하며 살았지만 심한 우울감과 매번 싸우곤 했다. 전철역에서 무너지듯 울면서 도저히 회사를 향해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것 같은, 지금은 해리 상태라고 진단할 수 있는 감정적 위기도 맞닥뜨리곤 했다.

“이십대가 많이 힘든 시절이잖아요. 요즘은 자살률이 더 높아졌고요. 그런 막막한 이십대를 떠올리며 썼던 것 같아요.”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대피소에 함께 있던 일행 중 한명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매스컴에서 떠들어서 과거에는 모르던 일들이 알려져서 그렇지, 요즘만 유독 힘든 게 어딨어요?”

모두가 자기 틀 안에서 세상을 본다. 내가 보고 있는 세상, 상처받고 분노를 품고 자기 삶에 대한 회의에 사로잡히는 세상도 그의 말처럼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통계로 재단할 수 없고 각자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부분을 향해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울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고 전날 너무 과음을 해 몸이 힘들 때 빼고는 한번도 죽음을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을 이어가는 그 일행은 그런 세상 속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참 자기 개성이 있으시네.”

일행이 대피소 밖으로 나가고 나서 월동대원은 머쓱하게 웃었다. 나도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약간 아쉬운 점이 있으신가 봐요” 하고 대화를 마쳤다. 그는 나를 향해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다면 나 역시 마음이 상했을 것이다. 그는 엄연한 사실을 차마 믿고 싶지 않은 것 아닐까. 경험상 대개 그런 마음들은 자기 보호를 위한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시도는 촬영 불가로 결론 나고 다시 무거운 짐을 들고 언덕과 물길과 물개와 펭귄 곁을 지났다. 걷는 도중에 만난 해표 식구들은 평화를 깨는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봤는데 슬금슬금 도망가는 개체가 있는가 하면 몸을 일으켜 도전적으로 바라보는 개체도 있었다. 지금 마을에 남아 있는 해표들은 모두 암컷이라고 했다. 번식기가 지나면 암수가 같이 지내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바닷가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구명복을 입고 해변에 하나둘 쓰러졌다. 구명복은 찬 공기를 차단해 금세 요긴한 침낭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런 건 정말 기록으로 남겨둬야겠어요.”

내가 카메라를 가져다댔는데도 완전히 지친 엠과 엘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해표마을에서 돌아온 엘과 엠이 구명복을 입고 해변에 누워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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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서의 설 전야

남극에서의 설 연휴가 시작되었다. 물론 말만 연휴일 뿐 남극에서의 일정은 일정대로 돌아가지만 2월9일 저녁에는 새해를 맞이하고 생일자도 축하하는 바비큐 파티를 하고 10일에는 윷놀이도 할 예정이었다. 참가할 사람을 모집해 팀이 만들어졌는데 월동대원들 팀 이름은 ‘빡빡이들’ ‘헬스보이’ ‘운명의 데스티니’ ‘올드 보이’ 등 스왜그와 에너지가 넘쳤고, 우리는 ‘구름밭’ ‘모스팀’ 등 각자 연구분야를 정체성으로 삼은, 뭔가 이름부터가 패색이 짙은 분위기였다. 그래도 우리는 서로 한 윷 던질 줄 안다며 경기를 기다렸다. 윷놀이를 코리안 보드게임이라고 전해 들은 이리나와 구름도 합류하며 적극성을 띠었다.

설 전날 세종회관 입구에는 반짝이 발이 드리워졌고 솥뚜껑 화로가 각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남극의 특별한 농에서 키운 쌈야채들과 고기도 풍성했다. 해표마을에 다시 촬영을 다녀온 사람들은 거의 유령처럼 지쳐 돌아왔지만 원하는 촬영에는 성공했다고 했다. 원고를 쓰느라 따라가지 못한 나는 종일 팀원들이 돌아왔는지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는데 무사히 임무를 완성해 다행이었다. 게다가 가는 길에는 고래를 만났다고 했다.

“와, 좋았겠다. 정말 고래를 봤어?”

남극에 와도 정작 만나는 사람은 몇 안 된다는 고래. 세상 어딘가의 바다를 유영하고 있을 고래에 대한 상상은 인간이 지구에 대해 지니고 있는 환상과 꿈, 경이와 경외의 발신처였다. 고래 하면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라고 불리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빼놓을 수 없는데, 내 주위에는 유독 이 소설에 매료된 작가들이 많고 해마다 재독하는 이도 있었다. 내가 동영상을 찍었느냐고 묻자 엠 박사가 보여주었다. 수면을 오르내리는 검정 몸체, 쉬익대는 숨소리는 고래가 맞았다. 나는 좋았겠다고 부러워하면서 고래는 두번이나 같은 고생을 한 대원들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촬영은 더구나 썩 상태가 좋지 않은 낫깃털이끼(그것이 황금빛인 이유였다)들을 촬영해 남극 환경의 현상태를 알아보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니까 그날의 고래는 그런 수고와 관심에 대한 남극의 응답이었을지도 몰랐다.

글·사진 김금희 소설가

단편집 ‘너무 한낮의 연애’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에세이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식물적 낙관’ 등을 썼다. 작고 단순하고 환해지기 위해 늘 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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