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네덜란드 풍속화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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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화풍과 기법, 소재의 독자성이 차별화되면서 이전에 없던 정물화와 풍속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풍속화는 일상과 서민들 예찬이다.
물론 네덜란드 풍속화 주류는 온화하고 따뜻한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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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17세기 네덜란드는 여러모로 독특하다. 종교적으로 신교가 지배했고, 정치적으로 시민계급을 발판으로 공화정을 발전시켰다. 대항해시대에 순응해 경제적으로 유럽 최강국이 됐다.
회화에서도 뚜렷한 특징이 나타났다. 프란스 할스(1580~1666), 렘브란트 반 라인(1606~1669),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 등 오늘날까지 추앙받는 걸출한 화가들이 활약했다.
이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왕이나 귀족, 교회라는 주문자가 사라진 미술 시장에 시민계급이 대량으로 작품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화가들은 신중하게 상품 판매 전략을 세워야 했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프로테스탄트 성향상 종교화는 사라지다시피 했고, 역사화와 신화화도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화풍과 기법, 소재의 독자성이 차별화되면서 이전에 없던 정물화와 풍속화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정물화는 영어로 'Still Life'라고 하는데, 단순히 정지된 물상을 그리는 게 아니었다. 종교적 교훈을 품으면서 종교화 역할을 했다. 주 소재인 꽃과 음식을 통해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내포했다. 꽃은 시들고 음식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성경 '전도서'에 나오는 구절, '헛되고 헛되며 헛되도다'를 은유했다.
얀 브뤼헐(1568~1625), 암브로시우스 보스하르트(1573~1621)가 꽃 정물화의 대가다.
풍속화는 일상과 서민들 예찬이다. 그림 속 주인공은 성직자, 왕, 귀족에서 벗어나 가족, 이웃, 상인 등으로 바뀌었으며, 장소는 그들이 사는 집 실내나 마당이었다.
삶의 한 단면으로 그린 풍속화는 뚜렷한 주제가 없어 보인다. 실내에서 일하는 모습, 편지를 읽거나 대화하는 모습, 단란한 식사나 여흥 장면 등 중산층의 생활상을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더러 위장하거나 은닉한 게 있다. 무엇? 매춘이었다.
이 시기 풍속화 대가였던 세 명의 화가, 헤라르드 테르보르흐(1617~1681)와 피터르 더 호흐(1629~1684), 가브리엘 메추(1629~1667)의 대표 작품을 통해 그들이 숨겨 놓은 풍속도를 보자.
테르보르흐 작품, '부모의 훈계'(1655)는 엄격한 아버지, 애써 피하는 어머니, 꾸중 듣는 뒷모습 젊은 여인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매춘 현장에서 여인을 두고 흥정하는 장면으로 보는 해석이 더 강하다. 지워졌지만, 남자 손엔 동전이 그려져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남자 모습은 지나치게 젊고, 여성 의상은 의아할 정도로 화려하다.
호흐 걸작, '술 마시는 여인'(1658)도 언뜻 보면 한 가족의 식사 장면처럼 보인다. 결정적 단서는 오른쪽 벽에 걸린 그림이다. 그리스도와 간통녀 이야기, '너희 중에 죄 없는 자는 이 여인을 돌로 쳐라.'가 떠오르는 그림이 어렴풋하게 걸려 있다.
메추 작품 제목은 '단장하는 여인'(1660)이다. 어머니와 딸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지만, 충분히 다른 상상이 가능한 작품이다. 앉은 여성의 주홍 상의와 금빛 치마가 강렬하며, 앞에 보이는 첼로는 '사랑의 연주'를 의미한다.
물론 네덜란드 풍속화 주류는 온화하고 따뜻한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다. 하지만 시장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숨기면서 슬쩍 드러내는 주제를 그렸다.
인간의 욕망은 장막 뒤에 숨어 있다. 네덜란드 화가들은 이에 부응하며 이슥한 욕망을 그림으로 치환했다.
따지고 보면 새로운 게 아니다. 비너스나 다이애나, 헤라 등 신화의 이름으로 여성 누드를 마음껏 그리며 주문자 욕구를 만족시킨 다른 시대, 다른 나라 작품들도 색과 선으로 욕망을 투영한 '은폐'이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솔직했다. 번성했던 이 풍속의 가치는 약 200년 후 프랑스 인상주의에서 부활한다.
doh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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