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인 상관에게 아들 소개해 준 엄마···“우리 성공해야 돼” [사색(史色)]
[사색-72] “그 분의 침실에 들어가야 한다. 밤마다 정신 못차리게 만들어야 해.”
그녀는 분에 넘치는 야망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권력 핵심에서 멀리 떨어져 비루한 삶을 사는 것이 넌더리가 났던 차. 새로운 왕이 집권했을 때 그녀는 가문을 부흥시킬 기회를 포착합니다. 아름다운 자녀를 왕의 성적 파트너로 바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자신의 자녀 중 가장 아름다운 아이를 골랐습니다. 바로 ‘조지’였습니다. 웬 남자이름이냐고요. 왕이 동성애를 탐닉한 인물,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랬던가요. 희망은 반드시 절망을 잉태하기 마련이라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인만큼이나, 성공도 실패의 아버지라고. 역사에도 적용되는 명제였습니다. 성군 엘리자베스1세가 일궈 놓은 잉글랜드의 영광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1세의 성적 방종이 불러 온 나비효과입니다.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가 사냥을 나갔을 때인 1614년이었습니다. 먼 발치에서 한 청년이 수발을 드는 걸 목격합니다. 워낙 하얀 피부에, 빨간색 입술, 매우 탄탄한 근육의 팔 다리. 누가봐도 미남. 제임스 1세의 눈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신하가 귀띔합니다. “이번에 새로 궁에 들어온 조지 빌리어스입니다.” 몇 차례 대화가 오고간 뒤, 제임스 1세의 곁에는 조지가 있었습니다. 제임스가 그에게 푹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식 중 빼어난 미모를 지난 아들 조지를 적극적으로 교육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었지요. 조지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 궁정의 예법과 프랑스어, 펜싱을 익혔습니다. 런던의 궁전에 들어가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교양’이었습니다.
궁정에서는 ‘미남계’를 활용한 치열한 정치적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어린 미남자 조지 빌리어스가 새로운 애인으로 등장한 것이지요. 그를 실제로 본 글로스터 주교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라고 극찬했습니다. 제임스의 몸과 마음은 이미 조지의 차지였습니다.
조지는 그야말로 승승장구였습니다. 처음에는 왕의 지근거리에서 술을 따르는 ‘로열 컵 베어러’(Royal Cup Bearer·왕실 고위직)로 임명된 뒤에는 왕의 침상을 전담하는 ‘젠틀맨 오브 베드챔버’까지 올랐습니다. 왕의 침실을 들어갈 수 있는 건 어마어마한 특권이었습니다. 그만큼 제임스 1세가 조지를 얼마나 신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조지는 국정을 운영할 능력이 안되는 인물이었습니다. 요직에 자기 사람을 앉혔고, 부와 명예과 관련된 일은 자신이 나서서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들끓기 시작합니다. 제임스 1세가 너무 많은 권력을 조지와 사유화하고 있어서였습니다.
처녀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죽은 뒤부터 사촌인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잉글랜드에선 제임스1세)가 왕좌에 앉았지만 그는 잉글랜드와 너무나 맞지 않은 인물이었지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서 나고 자란 제임스 1세는 처음부터 ‘왕권신수설’을 신봉했습니다. 왕은 신이 내린 자리이기에 누구에게도 양보하거나 공유될 수 없다고 생각했지요. 잉글랜드는 의회 정치로 성장하고 있는 나라였습니다. 세금을 부과할 때도 의회의 허락이 필요했을 정도입니다.
개신교도, 그것도 장로교 왕이 즉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톨릭 교도들이 화약 테러(Gun powder plot)를 계획한 배경이었습니다(TMI,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주인공이 쓴 가면이 테러 주도자 가이 포크스의 얼굴을 본 따 만든 것이지요).
의회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왕이라 하더라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이 ‘마그나 카르타’를 잉태한 잉글랜드의 힘이었습니다. 의회는 조지 탄핵안을 올립니다.
제임스 1세의 반응이 가관이었습니다. 탄핵안을 거절한 것도 모자라, 그를 버킹엄 공작으로 임명합니다. 공작은 왕 다음가는 ‘작위’. 잉글랜드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조지를 올린 것이었습니다. 의회와 시민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지요. 그가 총애하는 신하라는 이유에서요.
조국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지만, 조지 빌리어스의 생명은 길고 질겼습니다. 제임스 1세가 1625년 58세를 일기로 사망하고 아들 찰스 1세가 즉위합니다. 찰스의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조지 빌리어스, 버킹엄 공작이었습니다. 제임스1세만큼이나 찰스1세도 조지를 무척이나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새 시대를 염원한 잉글랜드 사람들은 다시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찰스의 시대에도 버킹엄 공작의 실정은 계속됩니다. 잉글랜드 왕실과 스페인 왕실간 혼인이 무산된 걸 계기로, 그는 스페인을 공격하기로 결심합니다. 스페인과 전쟁 승리로 권력을 강화한 엘리자베스1세를 모델로 삼은 것이었지요. 조지는 몰랐습니다.엘리자베스1세와 자신의 그릇 차이를. 스페인은 나약해질대로 나약해진 잉글랜드 함선을 손쉽게 요리합니다. 과거 ‘무적함대’를 무찌른 잉글랜드가 아니었습니다.
대중의 분노는 임계점에 달했습니다. 대중 분노의 압력을 정치로 조절해야 할 의회 민주주의가 찰스1세에 의해 올스톱됐기 때문입니다. 정치로 풀지 못한 압력은 결국 ‘직접행동’으로 표출됩니다. 1628년 8월, 잉글랜드 포츠머스의 한 여관에서 조지가 살해된 채 발견됩니다. 육군 장교 존 펠튼이 범인이었습니다.
조지의 죽음은 그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찰스 1세는 그의 암살 소식을 듣고 침실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슬픔에 잠깁니다. 잉글랜드 전체가 조지의 죽음을 기뻐했지만, 찰스 1세만큼은 예외였던 셈입니다. 그는 그만큼이나 세상물정에 어두운 암군이었습니다.
사형 집행인이 그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군중들은 흥분해 그의 머리가 담겨진 통에 손수건을 담급니다. 왕의 피가 묻은 손수건을 기념품으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의회와 끝까지 불화한 찰스 1세는 결국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제임스1세가 조지를 총애하면서 생긴 나비효과였습니다. 스튜어트 왕조가 한 미남에 의해 절멸 위기까지 몰린 것이었지요. 권력이 사유화 되었을 때, 벌어진 비극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합니다.
ㅇ잉글랜드 내전의 시작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
ㅇ왕권신수설을 신봉한 그는 동성애적 성향으로 동성 애인인 조지 빌리어스에게 국정을 맡기기도 했다.
ㅇ조지 빌리어스의 실정은 아들 찰스 1세의 치세까지 이어졌고, 결국 그는 암살됐다.
ㅇ찰스 1세는 의회와 반목하다가 잉글랜드 군주 중 유일하게 시민에 의해 참수당한 군주로 남았다.
<참고문헌>
ㅇ코스트 데이비드, 버킹엄 공작의 탄핵과 초기 스튜어트 영국의 여론, 영국연구저널 , 2016년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남성간 성관계 후 감염”…새 성병 균주 발견, 전염성 강해 - 매일경제
- [단독] “갑자기 돈 빠져나가면 큰일”…새마을금고에 한은 ‘즉각지원’ 길 연다 - 매일경제
- “죽다 살았네, 이게 얼마만이야”…에코프로·LG엔솔 급등한 이유는 - 매일경제
- “아버지 믿고 대충사나 싶어”…‘김구라 아들’ 그리 다음달 해병대 입대 - 매일경제
- “이게 웬 나라 망신”…‘한국인 출입금지’ 결정한 이곳, 무슨 짓 했길래 - 매일경제
- 최측근이 이런 말을…“이재명, 설탕만 먹는다면 이빨 다 썩을 것” - 매일경제
- 한국 男女 국제결혼 1위 이 나라...일본서는 ‘범죄율’ 1위인 이유 [한중일 톺아보기] - 매일경제
- “광복절에도 욱일기 걸겠다”더니…신상털린 의사, 뒤늦게 “깊이 반성” - 매일경제
- "공모가 너무 비쌌나"… 새내기주 주르륵 - 매일경제
- ‘韓 감독 간의 피 튀기는 경쟁’ 신태용 vs 김상식, WC 최종예선 티켓 누가 거머쥐나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