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는 자부심이었다" 女 배구 레전드들의 쓴소리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지는 오래됐지만, 국가대표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했다.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6명의 레전드가 한 자리에 모여 후배들에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또 배구 관계자들에게 대표팀 부진에 대한 심각성 파악과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KYK INVITATIONAL 2024' 김연경 국가대표 은퇴 경기 미디어 데이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연경(흥국생명)을 비롯해 한송이(은퇴), 황연주, 양효진(이상 현대건설), 김수지(흥국생명), 배유나(한국도로공사)가 참석했다.
뜻깊은 행사를 앞두고 개최된 회견이지만 현재 여자 배구 대표팀의 부진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선수들의 은퇴 이후 대표팀은 국제 무대에서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열리는 파리올림픽 출전은 예선 7연패로 진작에 물 건너갔다. 작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약체로 평가받던 베트남에 첫 경기부터 2 대 3으로 패하는 등 17년 만에 빈손으로 돌아왔다.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성적은 더 처참하다. 2022 VNL 12전 전패에 이어 2023년에도 12경기에서 모두 졌다. 올해에는 겨우 연패를 끊었지만 현재 성적 1승 7패(승점 4)로 참가국 16개국 가운데 13위에 머물러 있다.
우선 올림픽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큰 손해다. 김수지는 자신의 국가대표 경력 중 "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돌이켰다. 이어 "소중한 경험을 해봤다는 게 굉장한 영광"이라고 강조했다.
양효진도 "올림픽이라는 무대에 처음 섰을 때 놀랐다. 전 세계인이 주목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만큼 중압감 있는 무대에서 뛰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면서도 "선수라면 올림픽은 꼭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연경 역시 "올림픽은 큰 의미"라고 단언했다. 이어 "관심을 못 받을 때도 좋은 성적을 냈다"며 "아쉽게 파리 올림픽에는 못 나간다. 우리나라 모든 스포츠가 침체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걱정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지고 있는 후배들의 부진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우선 맏언니 한송이가 입을 열었다.
한송이는 "(국가대표로 뛸 당시) 지원도 안 됐고, 기대치도 없어서 준비 과정이 부족했다"며 "연맹, 협회, 관계자들이 더 잘 도와줬으면 결과가 바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모든 배구 종사자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더 심도있게 배구인들이 심각성을 인지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연주는 유소년 육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황연주는 "배구는 섬세한 운동이고 터치가 많다. 시간을 더 오래들여야 잘할 수 있다"며 "현재는 유소년 선수들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유소년 때부터 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김연경은 "일정이 국가대표 보다는 V-리그에 집중돼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어 "대표팀에 초점을 맞추면 부상 관리도 되고, 훈련 시간을 더 길게 가져가면서 기량이 발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경기에 임하는 대표팀 선수들의 태도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승부욕이 전혀 없는 모습", "훈련하는 것 같다"는 등 태극마크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해당 경기는 지난 5월 15일 펼쳐진 VNL 중국전. 실점한 뒤 대표팀 선수들이 웃는 모습이 포착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정말 태극마크의 무게가 가벼워진 걸까. 혹시 그렇다면 선배들의 마음가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연경은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고 공개적인 자리에선 운 적이 없었는데, 도쿄올림픽 이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태극마크를 내려놓을 당시 감정을 돌이켰다. 그러면서 "'은퇴'라는 단어는 묵직하고 감정적인 느낌이 든다"고 첨언했다.
김수지는 "여자 배구는 관심은 많이 받는데 효율이 안 나온다"면서 "나에게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갔던 경험은 자부심이다. 선수들이 이 자부심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경기에 뛰는 선수는 물론, 안 뛰는 선수들도 열심히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효진도 쓴소리를 남겼다. 양효진은 "(김)연경 언니가 한국 여자 배구의 멱살을 잡고 끌고 왔다. 과거 언니들은 대표팀에 올 때마다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어린 나이에도 한국 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깊게 고민했었다. (좋은 성적은) 쉽게 오는 것이 아닌데 지금은 너무 쉽게 와달라고 바라는 느낌이 든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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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CBS노컷뉴스 이우섭 기자 woosubwaysandwiche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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