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컷] 창덕궁 지붕에 올라 세상을 보니
창덕궁 지붕에 오르면 무엇이 보일까? 촬영을 위해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에 허가를 받아도 고궁의 지붕을 함부로 올라갈 수는 없다. 오직 궁을 관리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하다. 사진가 정명식(47)은 국가유산청 복원정비과 시설직 주무관으로 4대 궁궐이나 문화재를 복원하고 보수하는 일을 한다.
오래된 한옥은 시간이 지나면 어딘가 뒤틀리기 때문에 반드시 보수가 필요한데 정 씨는 이런 일을 본업으로 하는 한옥 대목수이자 문화재 수리도 한다. 사실 문화재 복원 작업에는 사진이 따라 다닌다. 박물관 수장고의 유리건판을 뒤져서 100여 년 전 모습이 촬영된 사진을 찾아 복원을 준비하고, 복원 공사가 계속되고 마친 후에도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이 아니라 취미로 사진을 찍던 정명식은 고궁이나 문화재 뿐 아니라 사찰, 불교 행사 등을 따라다니며 꾸준히 사진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일터에서 함께 하다 보니 남들이 보지 못한 미세한 변화와 아름다움을 기록한다.
예불 때 스님이 종을 치다가 멈추는 순간, 창덕궁 명정전 지붕 위로 구름이 잠시 해를 가리는 동안 계단 답도에 새겨진 봉황 두 마리, 3월이면 피는 창경궁의 홍매화, 창덕궁 낙선재 후원 언덕의 육각형 누각 상량정의 아름다운 천장 조각 등까지. 단순히 오래된 건축 뿐 아니라 사찰 앞 송충이 한 마리, 바위에 껍질만 남은 매미 같은 미물들도 그는 사진으로 소중히 기록한다.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한 정 씨는 건축 도면을 만들기 위해 직접 사진을 찍어야 했다. 고건축답사 동아리에서 전북 완주 송광사를 찾아가 첫 사진을 찍었다. 암실 작업도 배웠다. 또 그의 친구 삼촌이 도편수여서 학생 때부터 한옥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옥 짓는 현장이 친근했다고 한다. 불교 연구자들의 모임인 불교문화연구회에 모임에서 전국 사찰을 답사하면서 찍은 사진으로 20년간 전국의 모든 절을 가봤다고 했다.
대학생 때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오늘의 사진 올리는 것을 즐기면서 사진에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니콘 D-700이나 소니 A7R을 쓰다가 최근에 핫셀브라드 중형 미러리스를 구입해서 인물 사진을 찍고 있다고 했다.
어떤 인물인지 물었더니 유교 제례행사 제관들을 초상사진으로 찍는다고 했다. 어느 날 제관들의 환복 전, 후 모습을 찍는데 옷을 갈아입으면 이들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택배, 자영업자,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왕릉의 후손이라는 엄청난 자부심으로 제례복을 입으면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알았기에 이것을 포트레이트 형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대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에 있는 러시아인 아내가 사진가의 영문 홈페이지도 직접 만들어주고 해외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태권도 시범단원으로 러시아를 갔다가 한국어를 공부하던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고 했다.
사진가는 앞으로 사진집 열 권을 낼 계획을 하고 있다. 그동안 작업한 사진은 절이나 궁궐, 조선왕릉, 불교행사 등이 있고 약식으로 지내는 성묘나 제사 등을 기록하면서 현대화되는 유교문화를 기록하기도 하는데, 제사도 우리 세대가 마지막이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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