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베트남, '제한적 견제·균형' 지켜낼 수 있을까
최근 정치 격변으로 집단지도체제 안정성 퇴색 우려
(하노이=연합뉴스) 박진형 특파원 = 지난달 말 베트남 남부 롱안성·안장성의 검찰·경찰은 사업가 럼 홍 손(68)씨를 과거 잘못된 수사로 가뒀다면서 손씨에게 공식 사과했다.
손씨는 1990∼1991년 두 차례 체포됐다. 그는 사료 공장을 짓는 계약을 한 게 문제가 돼 사기 등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그를 두 차례나 가두고도 기소할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 결국 풀려나기는 했지만, 그의 재산은 거의 사라졌고 범죄자 꼬리표로 온갖 고통을 겪었다.
검찰은 잘못된 수사로 손씨가 입은 육체적·정신적 피해는 보상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면서 자신들 사과가 손씨와 가족들이 받은 고통을 더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30여년 만에 누명을 벗은 손씨는 "오늘은 행복한 날이다. 나는 눈물을 감출 수 없다"고 현지 매체 VN익스프레스에 심경을 밝혔다.
손씨는 이제 60억 동(약 3억2천4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절차를 밟고 있다.
앞서 지난 3월에도 2015년 84세로 숨진 후인 찌엠 파이씨 유족들이 중부 카인호아성 검찰로부터 16억7천만 동(약 9천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파이씨는 1980년대 초 지방정부 관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983년 병보석으로 석방됐다. 이후 혐의 입증에 실패한 검찰은 1984년 해당 사건 처리를 유예했다.
결국 2019년에 검찰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파이씨 유족은 손해배상 소송을 내 2022년 승소 판결을 받았고 이번에 배상을 받아냈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검찰 등 수사 당국이 과거 잘못을 인정, 사과하고 손해배상하는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런 사례는 베트남에서 공권력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공산당 1당 지배 체제에 대해 흔히 상상하는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실 기자는 지난 4월 초 하노이에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베트남의 정치 체제에 대해 중국과 대동소이할 것이라고 다소 막연히 짐작해왔다.
하지만 부임 후 차츰 접하게 된 베트남 정치는 이런 짐작과는 달랐다.
물론 베트남이 공산당 1당 지배 체제이며 관(官)이 민(民)보다 확고히 우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베트남은 공산당 서기장·국가주석·총리·국회의장 등으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로서 제한적으로나마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살아 있다는 것이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시황제'라 불릴 정도로 시진핑 국가주석 1인의 뜻이 사실상 일사불란하게 관철되는 중국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국회의 경우 의외로 행정부 운영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행정부에서 통과된 사안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집단지도체제가 투자 대상으로 중국과 대비되는 베트남의 강점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안정적인 정부 운영으로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베트남의 장점이 최근 흔들리는 조짐을 보인다는 데 있다.
지난 수년간 대대적인 반부패 수사가 베트남을 뒤흔든 가운데 지난 3월 권력 서열 2위인 보 반 트엉(53) 전임 주석의 전격적인 사임을 시작으로 권력 서열 톱 4명 중 2명이 공석이 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게다가 차기 지도자 후보군으로 꼽히던 고위 인사들마저 급작스럽게 줄줄이 물러났다.
이들의 퇴장 사유가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가운데 그 배경을 놓고 온갖 설이 분분하다.
이에 외신들은 그간 베트남의 강점이었던 정치적 안정성이 퇴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탈(脫)중국'을 위해 베트남에 투자하려던 외국인 투자자 사이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부패 척결 수사를 주도해온 또 럼(66) 공안부 장관이 지난달 하순 주석직에 오르면서 지도부 공백 사태는 일단 봉합됐다.
다만 권력 서열 1위 응우옌 푸 쫑(80) 서기장의 고령 등을 고려하면 베트남 정치 요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외부인인 기자가 이 격변이 어떻게 끝날지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간 베트남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작동해온 '견제와 균형'의 기능이 사라지지 않는 안정적인 국가 운영이 지속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j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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