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 경고등] 폐교 위기에 딸과 생이별…섬마을 '기러기 아빠'의 사연

김상연 2024. 6. 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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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절벽에 육지보다 훨씬 빨리 닥친 위기…최근 5년간 인천 섬 학교 5곳 문 닫아
"학령 인구 감소, 불가피하다면 폐교 활용 대안 고민해야"

(인천=연합뉴스) 김상연 기자 = "딸이 학교에 입학해도 어울릴 친구 하나 없이 과외 형태의 수업을 받을 텐데 교육상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족과 떨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서해 북단 인천 소청도에 사는 나모(37)씨는 올해 첫째 딸을 다른 섬에 있는 초등학교로 보낸 이유를 덤덤하게 털어놨다.

소청도에서만 23년을 생활하며 딸 셋을 키우던 나씨는 지난 3월 첫째 딸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섬 내 유일한 초등학교인 소청분교 대신 인근 대청도에 있는 대청초로 입학시켰기 때문이다.

대청초 소청분교 [인천시 옹진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청도 30대 가장, 딸 셋 다른 섬 보내고 '기러기 아빠'로

나씨가 졸지에 '기러기 아빠'가 된 것은 소청분교가 2020년부터 학생을 확보하지 못해 휴교에 들어가며 간신히 명맥만 유지 중인 탓이었다.

신입생이 있을 경우 이 학교는 다시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딸이 학교의 유일한 학생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씨는 "학생이 1명뿐이니 혼자 학교에 다니게 두는 게 내키지 않았다"며 "내가 가족과 떨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첫째 딸은 엄마와 함께 대청도에서 생활하고 있고 둘째·셋째 딸도 대청도에서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대청도와 소청도를 오가는 배편이 하루 3번에 불과하다 보니 평일에는 딸들이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만나기 쉽지 않다.

나씨는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소청도에서 유일하게 어린 자녀가 있는 지인은 2주에 한 번씩 육지에 있는 아들을 보러 간다"며 "여건상 섬에서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다"고 했다.

올해도 신입생을 받지 못한 소청분교는 최근 주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결국 폐교 절차에 들어갔다.

나씨를 포함한 섬 내 예비 학부모 2명은 모두 소청분교 폐교 여부를 묻는 인천시교육청 조사에 동의 의사를 밝혔고 다른 주민들도 어쩔 수 없이 폐교에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초등학교 빈 교실 ※ 기사와 직접 관련 없는 자료사진입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천 섬마을 폐교 심화…5년 사이 5개교 문 닫아

인천은 인구 300만명에 달하는 대도시이지만, 지방소멸 적신호 중 하나인 폐교 증가 문제가 중대한 현안 중 하나다.

유인도가 40개에 이르다 보니 소규모 섬마을이나 접경지를 중심으로 학령 인구 감소에 따른 폐교 위기가 육지보다 훨씬 빠르게 닥치고 있는 것이다.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인천에서 폐교한 학교는 용유초 무의분교, 교동초 지석분교, 서도초 볼음분교, 서도중 볼음분교, 교동도 난정초교 등 5곳으로, 모두 섬 지역에 몰렸다.

현재 인천 섬 지역에 있는 남은 분교는 모두 7개이지만 소청분교가 문을 닫을 경우 승봉도·영종도·이작도·신도·자월도·장봉도 등 6곳만 남게 된다.

이 중 승봉도에 있는 주안남초 승봉분교의 경우 2019년부터 각각 재학생과 신입생을 받지 못해 휴교 중이다.

다른 학교들 역시 올해 기준 전교생이 적게는 6명에서 많게는 14명 수준이어서 사실상 폐교 위기에서 놓여 있다.

섬 주민들은 폐교로 인해 젊은 인구 유입이 완전히 단절되는 상황 등을 우려해 학교 존치에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재학생 확보에 뾰족한 방법이 없어 아쉬움만 삼키고 있다.

소청도 주민 이모(76)씨는 "과거에 주민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학교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며 "젊은 층이 계속 줄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교실 풍경 [촬영 김상연]

"폐교 피할 수 없으면 성공적인 차선책 마련돼야"

교육 당국은 주민 동의 없이 폐교를 추진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장기적인 방치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주민 설득에 나서고 있다.

시교육청은 폐교가 확정될 경우 섬 지역 예비 학부모에게 교육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는 데다 학교 재배치를 통해 더 나은 교육 여건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시교육청은 한편으론 교육·도시계획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폐교 활용 자문단'을 발족해 지역 특색을 반영한 폐교 활용 방안을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

섬마을 정주 여건이나 접근성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폐교 극복 방안을 찾는 것보단 교육·문화시설로서 대안을 찾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천에서는 폐교 59개 가운데 40개가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매각됐고 8개는 시교육청 직속 교육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다른 7곳은 주민 편의시설이나 박물관·캠핑장 등으로 조성하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나머지 4곳은 시교육청이 계속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

김경배 인하대 건축학과 교수는 "폐교가 당장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이 공간을 방치하지 않고 활용성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는 섬 지역을 활성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예컨대 영화 '섬마을 선생' 촬영지인 대이작도 계남분교를 복원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처럼 문 닫은 학교를 섬 체류형 관광과 연계해 되살리는 모습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난정평화교육원 평화예술축제 [인천시교육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방치된 섬마을 폐교들, 교육문화시설로 명맥 유지

시교육청은 지역 특색에 맞게 의견 수렴을 거쳐 성공적으로 폐교를 활용한 본보기로 인천난정평화교육원 사례를 제시한다.

접경지인 교동도에 있는 난정평화교육원은 2019년 2월 졸업생 4명을 끝으로 폐교가 확정된 난정초를 리모델링해 전국 교육청 최초의 평화교육 전문기관으로 거듭났다.

난정평화교육원은 북한과의 거리가 3㎞ 안팎에 불과한 교동도의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평화와 공존의 필요성을 알리고 교육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지난해에는 2인 1실 구조의 객실 36개를 갖춘 생활동이 건립된 데 이어 평화를 주제로 한 교육이 꾸준히 관심을 끌며 이용객이 늘었고, 아무도 찾지 않던 폐교에는 3월부터 12월까지 6천844명이 다녀갔다.

인천에서는 난정평화교육원 사례 외에도 폐교 활용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문 닫은 옹진군 무의분교의 경우 내년까지 '무의바다학교'로 조성돼 영종도와 무의도 일대 생태·환경·인프라를 활용한 해양 교육과 행사 거점 시설로 운영될 예정이다.

1999년 폐교한 옹진군 북도분교에서도 기존 학교 건물을 철거한 뒤 지상 2층짜리 도서관과 야영 시설·찜질방·전시실 등을 갖춘 독서캠핑장을 짓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시교육청은 도서관이 없는 북도면에 독서와 캠핑을 결합한 체험 공간을 마련해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역 역사·문화·관광 자원을 토대로 독서와 숲길 탐방, 캠핑으로 이어지는 특화 체험 행사를 운영하기로 했다.

인천시교육청 관계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활용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며 "지역과 상생할 수 있는 우수한 폐교 활용 모델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goodlu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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