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아’ 외친 배터리 광풍 1년…시장엔 무엇을 남겼나 [비즈니스 포커스]
[비즈니스 포커스]
2023년도 최고의 히트작은 에코프로였다. 연초 10만원에서 7월 말 150만원으로 무려 15배의 상승. 경이적인 그래프였다. 딱 1년 전 이맘때쯤부터는 증권가를 넘어선 국민적 신드롬이 일었다. 에코프로에 지금이라도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에코프로 밈’이 쏟아졌고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이들조차 에코프로 투자를 망설였다.
마치 비트코인 광풍과 같았다. 투자냐 투기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고 에코프로 투자자들은 연신 ‘가즈아’를 외쳤다. 승승장구하던 에코프로의 상승 열기에 이상이 생긴 건 2023년 말 4분기 실적에 먹구름이 끼면서부터다. 배터리 광풍 그후 1년, 시장엔 무엇을 남겼나.
① 힘 못 쓰는 배터리주
LG엔솔 –20.37%, 삼성SDI –17.56%, 에코프로비엠 –33.86%, 에코프로 –29.23%.
국내 대표 배터리주의 연초 이후 5월 29일까지의 성적표다. 그 어느 기업도 플러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5월 28일엔 에코프로비엠 투자의견을 매도로 하향한 증권가 보고서가, 5월 29일엔 대장주 LG엔솔이 국제신용평가사 S&P로부터 등급조정을 받았다. 이날 에코프로비엠과 LG엔솔은 나란히 52주 신저가를 맞았다.
전기차 시장 수요 부진에 운명 공동체 배터리 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연초 이후 관련주는 줄곧 약세를 보였다. 지난해 2차전지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국 증시의 상승률 톱10을 휩쓴 배터리주의 믿기 어려운 하락세였다. 전기차 수요 부진은 물론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불확실성 등이 악재로 작용했다.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2차전지 관련 주요 8개 기업(SK아이이테크놀로지·포스코퓨처엠·LG에너지솔루션·LG화학·SK이노베이션·에코프로비엠·삼성SDI·에코프로)의 2024년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16조3690억원으로 추정했다. 2023년 초 19조2931억원 수준에서 15.16% 감소한 규모다.
당시 이안나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2차전지 섹터는 미국 대선에 따른 IRA 불확실성, EV 수요 둔화, 수주 공백기, 낮아진 밸류에이션 매력도 등으로 ‘비중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배터리주를 끌어올린 개인투자자들도 ‘팔자세’에 나섰다. 특히 2023년 상반기까지 에코프로를 1조9144억원어치를 사들인 개인은 하반기 들어 2조4914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탈출행진을 이어갔다.
2024년 5월 29일 현재 에코프로그룹의 시총은 지난해 말 59조4516억원에서 38조7986억원으로 20억원가량 증발했다.
② 미완의 공매도
1년 전 에코프로 투자자들이 쏘아올린 공 ‘공매도’도 아직 미완이다. 공매도는 특정 기업의 주가가 내려갈 걸로 예상되는 경우 주식을 빌려서 팔았다가 추가가 내려가면 싸게 사서 갚아 이익을 내는 투자기법이다.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전면 금지 요구가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공매도 전쟁’을 선포하고 지난 연말엔 전면 금지란 초강수 카드까지 내놨다. 올해 6월까지 일시적 중단이었다. 6월이 됐지만 정부당국은 전면금지를 해제할 생각이 없다. 공매도 관련 전산시스템이 모두 갖춰지는 시점인 내년 1분기에야 공매도 해제가 이뤄질 전망이다.
5월 27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공매도 관련) 전산시스템이 공매도 주문한 회사 내에서 불법을 탐지하는 시스템이 있고 이들 전체를 (포괄하는) 중앙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있는데 모두 다 하려면 아마 2025년 1분기 정도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앞서 올해 6월 중 공매도를 일부 재개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 욕심으로는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른 시일 내에 일부 재개하는 게 좋겠고 재개가 어렵다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언제 어떤 조건하에 어떤 방식으로 (재개할지) 적어도 향후의 흐름에 대해서는 설명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날 정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정부 정책 엇박자 논란을 진화하고 나섰다.
공매도 금지 조치가 장기화할수록 한국 증시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작년 조치는 경제위기도 아닌 상황에서 나온 이례적인 조치였기에 총선 후 다시 논의를 거치면서 출구전략을 고민할 것으로 봤다”며 “미국, 일본 등 세계 주요국의 증시가 선전하는 가운데 한국 주식시장도 공매도 금지가 없었다면 더 많은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③ 제도권과 비제도권 논쟁
“애널리스트도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2023. 5. 23)
“애널리스트, 미안합니다.”(2024. 5. 28)
에코프로 종목토론방 또한 1년 전 애널리스트 비난 일색에서 애널리스트에 대한 사과와 후회로 분위기가 뒤바뀌었다. 시장에서는 “애널리스트가 결국은 이겼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에코프로 광풍의 1년은 제도권(애널리스트)과 비제도권(유튜버 등 재야의 분석가)에도 숙제를 남겼다.
애널리스트는 숫자로 이야기한다. ‘주가수익률(PER)’, ‘주가순자산배율(PBR)’이 그들의 리포트를 입증하는 증빙 자료다. 반면 성장주는 숫자와 상관없이 급등하는 경우가 많다. 테슬라도 쿠팡도 PER과 주가에 괴리가 있었다.
그 누구도 에코프로를 주목하지 않았던 시기에 에코프로를 발굴한 이들은 증권가 애널리스트였다.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유망주·추천주로 에코프로를 꼽았다. 하지만 애널리스트는 리포트에 욕망이나 꿈, 투자자의 투자심리를 반영할 수 없다. 숫자로만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주가와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황제주에 오른 에코프로의 주가 상승은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에겐 ‘기이한 현상’이었다. 좋은 기업이지만 실적에 비해 주가가 지나치게 과열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에코프로그룹주가 한창 달아오를 때 증권사에서 첫 매도 리포트가 나왔다. 잇달아 B사도 에코프로비엠의 투자 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에코프로비엠의 미래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지만 주가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미래 이익을 반영해 당분간 이를 검증할 기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에코프로를 비롯해 8개 배터리주를 추천하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터리 아저씨’ 박순혁 씨는 여의도 애널리스트들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며 리포트를 믿지 말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특정 증권사를 공개 저격하며 이들의 추천 리포트에는 검은 의도가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매도’ 리포트에 대해선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쓴 것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제도권(애널리스트)과 비제도권(유튜버 등 재야의 분석가)의 충돌이었다.
제도권에서는 애널리스트가 할 일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해 상반기 한경비즈니스를 통해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뽑은 베스트 리포트는 에코프로의 첫 매도 보고서였다. B 센터장은 “상반기 비상식적으로 상승했던 2차전지 대표 기업을 대상으로 충분한 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매도’ 의견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오히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한다”고 추천했다. C 센터장 역시 “애널리스트의 소신을 밝힌 보고서”라고 한 표를 보탰다.
투자자들은 비제도권의 손을 들어줬다. 종토방도 유튜브 댓글도 매도 리포트를 쓴 애널리스트를 비롯해 증권가 전체를 향한 맹비난이 이어졌다. 항의 전화, 협박 메일에 이어 여의도 출퇴근길에는 애널리스트를 쫓아 물리적 충돌을 자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매도 리포트가 연달아 나왔지만 개인의 추매는 계속됐다.
재야의 강자들이 유튜브라면 애널리스트는 지상파방송이었다. 유튜브에는 욕설과 흡연 그리고 19금 장면까지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지상파는 제약이 많았다. 그 결과가 현재 방송 시장의 현실이다.
반면 주식시장은 다르다. 누군가는 책임 있는 말을 해야 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주식시장을 예측할 수 있지만 그들의 말에는 ‘책임’이 없다.
하이투자증권의 고태봉 리서치본부장은 지난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짜가 유리한 세상’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는 “애널리스트는 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기에 2~3중 컴플라이언스를 거쳐야 하고 공표자료가 아니면 어디 나가 말할 수도 없다. 모니터링도 당한다”며 “전문직의 윤리규정이라 주식투자도 불가하다”고 토로했다. ‘배터리 아저씨’가 주식 계좌까지 직접 공개하며 말로만 하는 투자가 아님을 증명한 것과는 정반대일 수밖에 없는 위치다.
고태봉 본부장은 “하지만 일부 유튜버들은 내가 이 종목을 얼마에 샀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생각이 다른 특정인 실명까지 거론하며 육두문자도 태연하게 쓴다”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본인 생각이 근거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누가 속이고 누가 속는지 모든 게 헷갈리는 세상”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언론이 비제도권의 말을 받아 수많은 책임이 따르는 애널리스트와 경쟁을 시킨 책임도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렇다고 재야권의 승리로 결론을 내기엔 찜찜하다. 제2, 제3의 에코프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에코프로 광풍의 1년은 한국 투자 지형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한다는 시각도 있다. 재야가 더 이상 재야가 아니고 제도권이 더 이상 제도권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타이거자산운용투자일임의 이재완 대표는 1년 전 “저희가 가지고 있는 시장 전망이 틀려도 중간은 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중략) ‘시장의 쏠림’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 시장의 왜곡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 시장의 모습에는 적응하도록 노력하겠다. 저희는 이 상황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제도권에도 비제도권에도 숙제가 남겨졌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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