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스럽고 안타까워"…'VNL 30연패→또 4연패' 女 배구의 속절없는 추락, 목소리 높인 김연경 "방안 모색해야" [MD잠실]
[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도쿄올림픽 '4강 신화'는 허상이었던 것일까.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탓이라곤 하지만 너무나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는 여자 배구 대표팀. '배구여제' 김연경을 비롯해 여자 배구의 황금기를 주도했던 전·현직 선수들이 입을 모았다.
김연경은 7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보조경기장에서 국가대표 은퇴경기 미디어데이를 가졌다. 이날 김수지(흥국생명)와 양효진, 황연주(이상 현대건설), 배유나(한국도로공사), 한송이(은퇴)가 함께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들은 모두 런던올림픽을 비롯해 리우올림픽, 도쿄올림픽 등에서 김연경과 호흡을 맞췄던 사이.
김연경은 8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국가대표 은퇴경기 및 은퇴식을 갖는다. '배구여제'로 불리며 세계적으로도 최정상급 커리어를 지닌 김연경은 한국 여자 배구의 '보배'로 세 번의 올림픽(2012년 런던, 2016년 리우, 2020년 도쿄)과 네 번의 아시안게임(2006년 도하,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세 차례 세계선수권 대회를 비롯해 예선전까지 포함하면 17년 동안 총 38차례나 '태극마크'를 달았다.
현역 커리어는 현재진행형이지만, 국가대표 경력에 마침표를 찍은 김연경은 '전설' 그 자체였다. 김연경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대표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김연경은 런던올림픽에서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는데, 4위 팀에서 수상자가 나온 것은 역대 최초였다. 게다가 김연경은 가장 최근 열린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4강 진출'의 신화를 작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도쿄올림픽에서이 김연경의 마지막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었다.
김연경은 도쿄올림픽이 끝난 뒤 공식적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양효진을 비롯해 김수지도 차례로 태극마크를 내려 놓게 됐다. 때문에 여자 배구 대표팀은 반 강제적으로 세대교체를 진행하게 됐는데, 이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여자 배구 대표팀은 지난달 20일 국제배구연맹(FIVB) 2024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태국과 맞대결이 열리기 전까지 무려 '30연패'의 늪에 빠졌었다.
여자 배구 대표팀은 지난달 20일 태국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길고 길었던 연패의 사슬을 끊어내는데 성공했지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7일 시점으로 여자 배구 대표팀은 다시 4연패를 기록 중이다. '사령탑 교체'라는 강수도 통하지 않고 있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부진. 무작정 팬들의 응원을 바라는 것도 어렵고, 선수들 또한 패배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선수들의 실력의 문제이지만, 김연경을 비롯한 선배들은 그 실력을 증진시기키 위해서는 시스템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연경은 17년간 달았던 태극마크의 자부심과 부담을 함께 내려 놓으며 "2021년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인터뷰에서 '국가대표를 내려놓고 싶다'고 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17년의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국가대표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좋을 때도 함께 했다. 국가대표가 세 번의 세대교체를 했음에도 자리를 지켰었다. 최근 여자 배구 국가대표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그래서 이 이벤트가 더 중요하다. 여자 배구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줬으면 한다.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고 힘내서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김연경의 국가대표 은퇴경기 및 은퇴식에 참석한 선수들도 하나 둘씩 목소리를 냈다. 2023-2024시즌을 끝으로 현역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한송이는 "지금은 여자 배구의 과도기인 것 같다. 좋았던 선수들이 은퇴를 하고 어린 선수들이 세대교체를 하면서 겪는 과도기. 이게 무조건 '선수들이 부족하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국가대표 경기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할 때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협회 연맹 구단 관계자들이 모두 나서서 조금 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서 어떻게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 이 상태로는 내년 후년도 달라질 것이 없다. 이런 문제를 심도있게 배구인들이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연경과 함께 런던과 리우올림픽에서 함께 뛰었던 황연주는 유망주 육성 과정부터 다시 밟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 그는 "지금의 경기를 하고 있는 선수들의 문제보단 유소년 육성부터 잘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배구는 섬세한 운동이다. 터치가 많아야, 시간이 오래 걸려야 잘할 수 있다. 그런 터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시작하는 선수들도 많이 없다. 밑에서 차근차근해야 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김연경의 '절친'으로 리우와 도쿄올림픽에 출전했던 김수지는 "앞으로의 숙제인 것 같다. 여자배구가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데, 관심만큼의 효율이 나오고 있지 않다. 우리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뛰고 있는 선수들 뛰지 않는 선수들의 참여율도 높아야 한다. 우리도 돌아보면 올림픽을 경험하고 자부심이 됐다. 그게 지나면 굉장히 크다. 자부심을 위해서 참여율이 높았으면 좋겠고, 구단들도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일하게 김연경과 런던부터 리우, 도쿄까지 세 번의 올림픽에 나섰던 양효진은 "작년부터 선수들이 대회를 나가면서 힘듦을 겪고 있다. 선수들은 갑자기 닥친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대회 경험이 없는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며 "예전부터 차근차근 됐으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는데, 누구를 탓하기도 그렇고, 그렇게만 바라보기도 힘들다. 참 어려운 것 같다. 배구는 이전부터 힘들었다. 그래서 (김)연경 언니가 대표팀 올 때마다 스트레스가 컸다. 윗세대도 마찬가지. 욕도 많이 먹었다. 그런 걸 겪다가 좋은 순간이 펼쳐진 것인데, 지금은 너무 쉽게 와달라하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김연경의 생각도 이들과 다르지 않다. 배구여제는 "나도 공감한다. 같은 생각이기도 하다. 우리가 V-리그를 하고 있지만, 국가대표에 대해 초점을 맞춰서 하지는 못하고 있다. 국가대표 스케줄에 맞춰서 V-리그가 진행되면 부상 관리나, 연습기간을 길게 가져가면서 기량이 발전될 수 있는데, 국가대표에 집중보다는 V-리그에 집중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며 "지원을 비롯해 짧은 시간에 바꾸려 하기보다는 조금 더 길게, 오랜 시간 어떻게 할지 생각해야 한다. 개개인이 괜찮다고 해서 배구의 성적을 등한시하지 않고 토론을 하면서 한국 배구가 나아가야 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결국 양효진이 말한 대로 김연경처럼 '멱살을 잡고 끌고갈' 선수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러한 선수를 발굴하거나,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스템과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가대표에서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현역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들은 대한배구협회(KVA) 등의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이렇게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여도, KVA가 바뀌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언제까지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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