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 고수들이 전하는 라이프 ‘핵(Hack)’
미국의 사전 출판사 메리엄 웹스터(Merriam-Webster)는 ‘라이프 핵(Life Hack)’을 ‘익숙한 작업을 더 쉽게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간단하고 영리한 팁 또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시대와 소셜미디어를 거치며 이 단어는 ‘삶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생활의 팁’으로 확장, 공유되는 모양새다. 단순하지만 기발하고 투박하지만 세련된 고수들의 ‘라이프 핵’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핵심(Hack-心)’ 팁을 소개한다.
■ 하마터면 그냥 버릴 뻔했다
‘기름 한 방울이 튄 옷이 있는데 몇 번을 세탁해도 지워지지 않아요!’ ‘겨드랑이 땀 때문에 누렇게 변한 와이셔츠 세탁은 어찌해야 하나요?’
흡사 세제 판매 사이트에 올라오는 ‘Q&A’ 같지만, 이는 ‘홈세탁’ 팁을 공유하는 인플루언서 ‘땡스맘’ 조용미씨의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이다. 옷장 깊숙이 박혀 있던 고가 브랜드 가방을 새것처럼 부활시키고 곰팡이가 피어 휴지통으로 골인할 뻔했던 양복을 살려낸 이들에게 조씨는 달인이자 은인으로 불린다.
18년간 의류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조씨는 자신의 경험과 원단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목 늘어난 면 티셔츠 복구법’, ‘비싸게 주고 산 유명 브랜드 패딩 점퍼에 묻은 케첩 얼룩 제거법’ 등과 같은 콘텐츠를 올린다. 조씨는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살림의 기초가 되는 ‘의(衣)’지만 제대로 알려주는 이도, 배워본 적도 없는 분야가 세탁”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동네 세탁소는 하나둘 사라지고 그마저도 비싼 세탁비로 부담이 되니 ‘홈세탁’ 관심을 두는 이들이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가 전하는 핵심 팁은 ‘세탁 전 라벨 확인’이다. 대다수의 고급 의류는 ‘드라이클리닝’을 권하지만, 원단 성분을 파악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세제 사용과 세탁법을 따른다면 홈세탁으로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쇼핑 단계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흰색과 검은색으로 배색 된 옷은 이염의 확률이 높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 여기, 우리집이 인생 맛집
외식이라는 두 글자가 두려운 요즘이다. 한국소비자원의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기준 김밥 한 줄 가격은 3362원, 자장면은 7146원, 냉면 1만1692원이다. 집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평소대로 장바구니를 채웠을 뿐인데 영수증에 찍힌 금액이 예전 같지 않다.
중고등학생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주부 장연범씨(가명)의 요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수고와 식비를 덜고 재고를 남기지 않으며 잘해 먹을 수 있을까’다. 장씨는 “한창 잘 먹는 아이들과 외식을 나서면 10만원은 우습게 넘기더라”며 “이 돈이면 진수성찬 세 번은 차릴 수 있을 터라는 생각이 들어 집밥에 신경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의 핵심 팁은 ‘재료 정리를 미루지 않는 것’이다. 장을 봐 온 직후 정리하지 않으면 냉장고 속을 파악하기 힘들고 재료 또한 시들어 신선한 맛이 사라진다. 또한 정리와 동시에 한 끼 식사량에 맞게 소분해 두면 요리 때마다 번거롭게 느껴지는 손질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요리 실력이 서툴다면 ‘백종원 애호박’ ‘류수영 돼지갈비’ ‘김수미 오이’ 등 선호하는 요리 전문가, 인플루언서와 식자재를 조합해 검색해 보는 방법을 추천한다.
‘2인 가족’ 박해인(@iloveyou915)씨는 결혼 후 자신도 모르게 새는 지출을 막기 위해 식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변동지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비를 절약하면 한정된 월급이라도 저축의 비율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한 달 식비 30만원으로 살기’를 실천 중인 박씨는 ‘적게 사고 정확하게 아는 것’을 자신의 핵심 팁으로 삼았다. 가족 구성원 수가 적으면 가격이 싸다고 해서 많이 사 두는 것보다 조금씩 필요한 만큼만 사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보유한 재료 리스트를 냉장고에 붙여두면 해당 재료로 가능한 요리를 떠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며 “정해진 예산안에서 같은 재료로 만들 수 있는 다른 요리를 찾아보는 과정도 꽤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 등잔 밑이 어둡다, 인테리어 핵
유명 디자이너 제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수납 선반이 이케아 접이식 수건걸이로 만들어지고, 이동식 선반이 로봇청소기의 집이 될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인테리어에 적용된 ‘핵’은 기존의 제품을 원래의 용도와 다르게 활용한 아이디어 제품들이 주목받는 추세다. ‘이케아 핵(IKEA HACK)’, ‘다이소 DIY’ 등의 해시태그로 공유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시공 없이 홈스타일링만으로 집을 꾸민 리빙 인플루언서 이솔씨는 다이소 제품으로 만든 다양한 소품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유한다. 시판 중인 아크릴 거울에 전선 보호관을 붙여 유럽풍의 격자 거울을 제작하고, 스테인리스 밥공기와 뚜껑을 활용해 무선 조명을 만드는 식이다.
이씨는 “정형화된 신축 아파트 인테리어의 한계에 늘 갈증을 느꼈다”며 “그러나 높아진 금리로 인한 이자 부담에 큰 비용이 드는 시공은 자연스럽게 뒷순위로 밀렸고 자연히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조언은 간단하다. “나의 취향과 집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것은 자신”이며 “큰돈을 들이지 않아도 홈스타일링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것.
인테리어 트렌드에 기민한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단어, ‘쇠테리어’다. 쇠, 즉 스테인리스를 활용한 인테리어로, 은빛 금속 소재의 가구나 소품으로 공간을 장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스타그램 ‘나타나라’의 운영자인 최선아씨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쇠테리어’ 홈스타일링을 즐기는 재주꾼이다.
최씨는 “스테인리스의 차가움과 우드의 따뜻함이 믹스매치될 때의 느낌을 좋아한다”며 “욕심 나는 소품과 조명은 너무나 많은데 원하는 대로 구매할 수 없으니 최대한 가성비를 살려 ‘쇠테리어템’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가 강조하는 핵심 팁은 ‘일단 두드려라’다. 최씨는 “상상 속 제품을 직접 만들어 냈을 때, 생각한 대로 크기가 딱딱 맞을 때 느껴지는 희열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주변을 유심히 지켜보면 나만의 아이디어로, 손길로 채워질 ‘신상’이 보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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