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의 고수] 노후 생활비 월 369만원인데… ‘DB·DC·IRP’ 나에게 맞는 퇴직연금은

김유진 기자 2024. 6.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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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적립금 382조원으로 ‘껑충’
퇴직연금 제도 DB·DC·IRP형으로 나뉘어
근속 연수·연봉인상률 따라 선택해야
일러스트=챗GPT 달리3
첫 월급 200만원을 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A씨는 어느덧 25년간 한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 A씨는 매년 3%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됐다. 퇴직연금 제도 중 확정급여(DB)형에 가입된 A씨는 1억9000만원의 퇴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A씨와 동일한 임금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B씨와 C씨는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에 가입했다. B씨는 DC형 퇴직연금의 투자 수익률이 4%를 기록하면서 약 2억2600만원의 퇴직급여를 받게 됐다. 반면 C씨는 투자 수익률이 2%에 불과해 1억6000만원을 퇴직급여로 받는다. 세 명의 근로자는 모두 같은 초봉으로 시작했지만, 어떤 퇴직연금 제도를 선택했느냐에 따라, 운용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퇴직연금의 수준이 달라졌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 은퇴 후 삶이 길어지면서 퇴직연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KB경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노후 의식주 등 기초적인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비용은 월 251만원, 여행·여가 활동 등의 비용까지 고려한 적정 생활비는 월 369만원이었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노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과 같은 기본 연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퇴직연금을 잘 운용해야 은퇴 후 삶을 책임지는 자금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직장인 5명 중 1명은 여전히 자신이 가입한 퇴직연금 상품마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퇴직연금의 제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퇴직연금의 기초부터 살펴보자.

◇ 퇴직급여 적립금 운용 주체 따라 달라져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근로자 재직 기간 중 사용자(고용회사)가 퇴직급여를 금융기관에 적립하고, 이 적립금을 사용자나 근로자가 운용하다가 55세 이후에 연금 또는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적립금 운용 책임에 따라 확정급여형(DB형)과 확정기여형(DC형), 개인형(IRP형)으로 나뉜다.

고용노동부·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382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8%(46조5000억원) 증가했다. 제도유형별 적립금 규모는 DB형이 205조300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DC형(기업형IRP)이 101조4000억원, 개인형IRP가 75조6000억원이었다.

퇴직연금의 연간 수익률은 5.26%다. 제도 유형별로는 DB형의 연간 수익률이 4.50%를 기록했으며, DC형 5.79%, IRP 6.59%였다. 실적배당형 비중이 가장 높은 IRP가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래픽=손민균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근로자가 가입한 DB형은 사용자가 퇴직급여를 금융회사에 사외 적립해 책임지고 직접 운용하는 퇴직연금 제도다. DB형 퇴직연금 제도에 가입하면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을 근속연수로 곱한 값이 퇴직급여가 된다. DB형 퇴직연금 가입자는 추가로 내거나 중도인출을 할 수 없다.

근로자 입장에서 보면 기존 퇴직금 제도에서 받을 수 있는 금액과 DB형 퇴직연금으로 받는 금액은 같다. 두 제도의 가장 큰 차이는 근로자의 퇴직금 수급권 보호 여부다. 기존 퇴직금 제도에서는 기업이 퇴직금을 사내 유보하는 경우가 많아 회사가 갑자기 도산한다면 근로자가 퇴직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DB형 퇴직연금 제도에서는 퇴직금이 외부 금융사에 적립돼 위탁 운용돼 근로자의 퇴직금 수급권이 보호된다.

DC형은 사용자가 납입할 퇴직급여 부담금이 매년 근로자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로 사전에 확정된 퇴직연금 제도다. 근로자는 개별 계좌에 부담금이 정기적으로 납입되면 직접 자신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책임지고 운용해 적립금과 운용수익을 퇴직급여로 받는다. DC형은 임금인상률 대신 투자 수익률이 클수록 퇴직급여가 더 많이 쌓이는 구조다. 특히 이 퇴직연금 유형은 근로자 본인이 추가로 부담금을 납입할 수 있다. 납입한도는 연간 1800만원으로, 이 중 900만원까지는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IRP형은 근로자가 재직 중에 자율로 가입하거나 퇴직 또는 이직 시 받은 퇴직급여를 계속해서 적립∙운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 제도다. 이직이 잦아 퇴직금을 생활자금으로 써버릴 수 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어 안정적인 노후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특히 IRP는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 퇴직연금 미가입자도 소득만 있다면 가입할 수 있다. 근로자 개인이 가입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DC형 제도와 적립금을 운용하는 방식 등이 비슷하다.

DC형과 IRP형의 경우 투자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개인이 운용을 직접 하다 보니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디폴트옵션’을 지난해 7월부터 적용했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디폴트옵션이 적용되면 실적배당상품 투자를 높여 투자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그래픽=손민균

◇ 연봉인상률·이직 횟수 따라 선택해야

회사와 근로자의 상황에 따라 어떤 퇴직연금 제도가 가장 유리한지가 결정된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어떤 퇴직연금 제도를 택하고 있는지 먼저 확인한 뒤 선택 가능한 퇴직연금 제도를 살펴봐야 한다.

월 급여가 많고 임금상승률이 높은 회사에 다니는 근로자는 DB형 제도가 유리하다. 경영이 안정적이고 수명이 긴 기업, 자체 퇴직연금을 설계할 수 있는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 근속 연수가 긴 기업에 다닌다면 DB형 제도에 가입하는 편이 적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초봉 월 200만원인 근로자가 이직을 하지 않고 매년 3%씩 연봉이 인상된다면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도 늘어난다. 25년을 근무한다면 퇴직급여는 1억163만원이며, 35년을 근무하면 1억9123만원까지 퇴직급여가 증가한다.

다만, DB형 제도에 가입된 근로자는 회사가 퇴직연금 부담금을 정상적으로 납부하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한, DB형은 중도인출을 할 수 없고 적립금의 50% 이내에서 담보대출만 가능해 주택 구입, 의료비 등으로 퇴직금 중간 정산이 필요한 근로자는 DC형으로 퇴직연금을 전환해야 한다.

DC형 제도는 퇴직연금을 어떻게 운용하냐에 따라 추후 퇴직급여의 차이가 생길 수 있어 금융상품에 대해 이해도가 높은 근로자에게 적합하다. DC형은 물가 상승이나 투자 수익률에 대한 손실 책임이 근로자에게 있어 같은 회사에 다니더라도 운용 수익률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퇴직급여가 달라진다. 운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기예금 금리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으므로 운용 상품에 대한 공부는 필수적이다. 기업 수명이 짧거나, 자체 퇴직연금제도를 설계하기 어려운 기업, 연봉제 실시 기업, 사업장 이동이 잦은 근로자라면 DC형 가입을 고려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직이 잦아지는 문화를 반영한다면 IRP로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편이 유리하다. IRP는 퇴직, 이직할 때 발생하는 퇴직급여를 하나로 모을 수 있어 퇴직금을 생활비로 써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 2022년 4월부터 퇴직하는 모든 근로자는 개인 IRP 계좌로 퇴직급여를 지급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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