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도입, 得일까 失일까… 한은 연구용역 결과 공개 ‘눈길’
경제효과 놓고 학계 의견 분분… “투자에 영향”
한은 용역 “총예금 동일… 경제 영향 크지 않아”
“블록체인 등 기술도입 비용 더 크다” 주장도
한국을 비롯한 각국의 중앙은행이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개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CBDC 도입의 경제효과를 놓고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과거에는 CBDC가 대출의 재원인 은행 예금을 대체해 투자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최근에는 은행이 경쟁적으로 예금 유치에 나서 오히려 투자 활동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외부용역으로 진행한 한 연구에서 소매용 CBDC 도입이 실물경제(가계소비, 기업투자,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CBDC를 도입해도 은행의 예금 총량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인데, 기존 주장을 모두 부인한 것이다.
CBDC란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 형태의 화폐를 말한다. 활용 범위와 사용 주체에 따라 ‘소매용’과 ‘도매용’으로 나뉜다. 소매용은 개인과 기업이 일상생활에서 현금처럼 쓰는 CBDC다. 도매용은 지급준비금과 비슷한 개념으로, 금융기관 간 자금 거래, 최종 결제 등에 사용한다.
◇ 조성훈 연대 교수 “CBDC 도입, 경제에 미치는 영향 적어”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20일 발간된 ‘BOK경제연구’에 조성훈 연세대학교 교수가 작성한 워킹페이퍼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Real Effect and Welfare’(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실물 효과와 후생)가 실렸다. 이 워킹페이퍼는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작년에 진행한 CBDC 관련 연구용역 결과다.
조 교수에 따르면 소매용 CBDC는 두 가지 경로로 실물경제에 영향을 준다. 우선 CBDC는 기존 화폐에 비해 거래의 투명성·편의성이 개선된 디지털 결제수단이므로, 소비자들은 현금이나 요구불예금보다 CBDC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CBDC가 도입되면 은행 예금이 줄어들고, 이를 재원으로 하는 대출과 투자도 쪼그라들어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여기서 그친다면 CBDC 도입은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만 줄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 CBDC에 맞서 예·적금 유치에 나선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CBDC는 투자수익 측면에서는 저축성예금에 불리하다. 은행이 이를 노려 줄어든 요구불예금 대신 저축성예금을 늘리면 은행의 총 예금은 다시 늘어난다. 이는 대출과 투자 확대로 이어져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조 교수는 앞선 두 가지 경로를 고려해 CBDC가 실물경제 미치는 영향의 크기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분석 과정에는 거시경제 실증분석에 널리 이용되는 뉴케인지언 동태적 확률분석(DSGE) 모형을 사용했다. 연구 결과 CBDC 비중이 늘어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줄더라도 저축성예금이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해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긍정 효과가 상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CBDC가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CBDC 도입으로 예금의 구조(요구불예금·저축성예금의 비율)가 변화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연구의 핵심”이라면서 “CBDC가 금융산업에 불안정 요인을 유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 CBDC 효과 두고 논란… “기술도입 비용이 더 들수도”
그간 학계에서는 CBDC가 도입되면 실물경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조 교수의 설명처럼 CBDC가 요구불예금을 줄이고, 저축성예금을 늘릴 수 있어서다. 과거에는 전자에 집중해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브 메르슈(Yves Mersch) 유럽중앙은행 집행이사회 위원은 2017년 한 연설에서 CBDC 도입으로 은행 대출 이자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했고, 국제결제은행(BIS)은 이듬해 낸 보고서에서 예금이 CBDC로 유입되면 은행이 저비용이고 안정적인 재원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긍정적 효과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데이비드 안돌파토(David Andolfatto) 마이애미대학 교수는 2021년 논문에서 은행산업이 독과점 또는 독점적 경쟁시장인 경우 CBDC가 도입되면 예금과 대출 규모가 늘어난다고 했다. 조너선 치우(Jonathan Chiu) 캐나다은행 수석 연구 고문은 2019년 발간한 논문에서 대출과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는 정도를 직접 측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CBDC의 혜택을 강조하는 학자들이 사용하는 모형이 DSGE 등 표준 모형과 달라 분석 결과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조 교수의 논문은 CBDC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잠재운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한은을 포함해 CBDC 도입을 준비 중인 주요국 중앙은행으로서는 부담감을 덜 수 있는 결과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연구에 대해 “은행의 공식적인 의견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과거 CBDC 도입으로 시중은행이 예금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이론적인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효과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의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 교수는 “CBDC가 도입된다고 해서 사람들의 현금 사용 방식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이미 우리는 현금보다 신용카드 등 전자화된 결제수단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블록체인 등 CBDC 도입에 필요한 기술을 적용하는 과정에 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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