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쿵! 사랑 아니라 병입니다

김태훈 기자 2024. 6. 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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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은 일본 노인들의 일상을 유쾌하게 담아낸 짧은 시들을 묶어 낸 책이다. 국내서도 ‘심쿵’이란 표현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며 요동쳤던 증상이 알고보니 부정맥 때문이었다는 누리꾼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다만 부정맥은 웃음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형에 따라 경미하게 발생하는 경우도 있으나, 심각할 때는 심정지까지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기도 하다. 6월 첫째주를 ‘세계 부정맥 주간’으로 제정해 질환에 대한 인식을 넓히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정맥은 포괄하는 범위가 넓고 증상도 매우 다양한 질환이다. 심장을 박동하게 하는 전기 신호를 형성하고 전달하는 과정에 관련된 모든 질환을 통칭하기 때문이다. 심장이 정상적이고 규칙적인 수축을 반복할 수 있도록 전기 신호가 생겨나 차질 없이 전달돼야 하는데, 이상이 생겨 비정상적인 신호가 나오면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빨라지거나 늦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부정맥은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박동하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유형은 달라도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피로감을 호소하고 어지러움과 숨이 찬 느낌이 지속되거나 심할 때는 가슴의 통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문제는 어지럽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등의 증상이 평소에도 쉽게 경험할 만큼 흔히 나타난다는 데 있다. 사랑의 감정처럼 특별한 계기가 없는데도 이런 증상이 반복해 나타난다면 부정맥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양소영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교수는 “특히 심방세동은 노화와 관련 있어 노년층에서 흔한 질환”이라며 “부정맥 증상에 대한 인지 자체가 부족해 치료를 놓치고 방치하는 노년층도 많다”고 말했다.

피로감·어지러움·가슴 통증 나타나
노화와 연관…노년층에 흔한 질환
심장병·흡연·음주 등도 영향 미쳐
맥박 속도 따라 빈맥·서맥 나뉘어
치료 않고 방치 땐 뇌졸중 위험도
치료엔 생활습관 교정이 가장 중요
1주일에 150분 이상 걷기 운동 권장

부정맥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노화 말고도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선·후천성 심장병, 흡연과 음주, 카페인 섭취 등의 생활습관, 고혈압·당뇨·비만·갑상선질환 같은 동반 질환도 영향을 미친다. 원인만큼이나 증상도 다양한데, 크게는 맥박이 빠른지 느린지에 따라 빈맥성과 서맥성 부정맥으로 구분한다.

빈맥성 부정맥 중 가장 흔한 편인 ‘심방세동’은 심장이 빠르고 불규칙적으로 뛰며 부르르 떨리는 듯한 증상을 보이며, ‘조기 박동’은 심장이 갑자기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빠른 속도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은 증상이 예기치 않게 갑자기 발생했다 갑자기 멈추는 특징이 있다.

반면 서맥은 맥박이 1분에 60회 미만으로 느리게 뛰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서맥성 부정맥에는 전기 자극을 만들어내는 동방의 기능이 약해져 나타나는 ‘동서맥’이 있다. 또한 맥박이 심장 전체에 퍼져서 고르게 수축하는 것을 돕는 전도길이 차단되면서 서맥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전도장애’라고 한다. 이러한 환자들은 어지럽거나 힘이 없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는 증상이 나타난다.

부정맥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심장에 전기적 이상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심전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만 심전도 검사는 10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에 끝나므로 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려야 할 때는 기기를 24시간 휴대하며 측정할 수 있는 ‘활동 중 심전도’ 검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길게는 2주까지 장기간 검사가 가능한 방법도 개발돼 있으며, 일부 환자들이 어지럼증으로 쓰러져 머리를 다치는 등의 사고 상황을 최대한 기록하고 예방할 수 있게 ‘이식형 사건기록기’라는 기기를 심장 주변 피부 안쪽에 삽입하는 경우도 있다.

진단 결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부정맥을 방치하면 합병증 위험도 커진다. 심방세동이 있으면 심방이 충분히 수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부에 혈액이 정체되면서 굳어져 혈전이 생길 위험이 높아진다. 이 혈전이 혈류를 타고 이동하다가 뇌의 혈관을 막으면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 맥박이 느려지는 서맥은 심한 경우 심장이 몇 초 멈추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어지럼증을 넘어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 있어 위험하다.

부정맥의 유형이나 증상의 경중을 막론하고 치료를 위해선 생활습관을 고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의근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특히 심방세동과 같은 빈맥성 부정맥을 가진 환자들은 과로, 과음, 과식, 스트레스 등 생활습관에 문제가 없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며 “다른 치료를 진행해도 생활 속 위험인자 교정이 없으면 치료의 효과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뚜렷하게 교정해야 할 생활습관이 없는데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약물치료를 진행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빈맥성 부정맥에 사용하는 ‘항부정맥 약제’가 대표적이다. 또 심방세동 환자는 혈전이 생겨 혈관을 막는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피의 응고를 억제해주는 약제인 ‘항응고제’를 사용한다. 약물치료 외에 시행할 수 있는 시술로는 부정맥이 발생하는 부위를 찾아 국소적으로 차단하는 ‘고주파전극도자절제술’, 심장에 전기적 충격을 전달해 정상적인 움직임으로 전환시키는 ‘전기적 동율동전환술’ 등이 있다.

대부분의 서맥성 부정맥은 노화로 심장의 전기 신호 생성·전달 기능이 약해져 발생하기 때문에 약물 치료는 어렵다. 그래서 인공심장박동기 시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스텐트 삽입술처럼 카테터를 통해 심장에 삽입하는 무선 인공심장박동기도 있어 환자의 선택 폭이 넓어졌다. 양소영 교수는 “인공심장박동기 시술은 시술 자체의 위험도가 낮은 편”이라며 “고령의 서맥 환자는 시술을 미루지 말고 빨리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서맥성 부정맥 환자가 인공심장박동기를 삽입한 수술 부위는 1~2주 정도 물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좋다. 또 인공심장박동기가 심장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팔을 많이 움직이거나 매달리고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의 과도한 움직임은 피해야 한다. 운동은 부정맥이 안정화된 상태거나 완치됐을 때 해야 한다. 맥박이 120회 이상 뛰고 있는 빈맥성 부정맥 상태에서 운동하면 위험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일주일에 150분 이상 걷거나 70분 이상 달리는 수준의 운동을 권장한다. 부정맥이 없더라도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하면 부정맥을 예방할 수 있다.

커피를 비롯해 카페인이 든 음료는 주의해서 섭취해야 한다. 빈맥성 부정맥이 있는 환자에겐 카페인이 이미 빠른 맥박을 더 빨라지게 할 수 있다. 최의근 교수는 “부정맥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잘 조절되고 있는 경우라면 1~2잔의 커피는 무방하지만, 에너지 드링크 중 카페인이 과다 함유된 경우엔 섭취를 삼가는 것이 좋다”며 “부정맥은 최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진단 방법과 치료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므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보다는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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