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으로 돌아간 한반도 시계…큰소리치는 서울, 조마조마한 접경지

김찬호 기자 2024. 6. 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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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으로 돌아간 남북관계…접경지역 주민만 불안
지난 6월 2일 오전 인천 중구 전동 인천기상대 앞에 떨어진 북한 오물 풍선 잔해를 군인들이 수거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6월 2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북한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이 떨어졌다./경기남부경찰청 제공

[주간경향] 한반도 시계가 2017년으로 되돌아갔다. 전쟁 발발 분위기가 온 사회를 긴장시키던 때로 역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6월 4일 접경지역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9·19 군사합의 효력을 정지했다. 하루 뒤인 6월 5일에는 7년 만에 미군 전략폭격기가 사격훈련을 했다. 이로써 북방한계선(NLL)에선 당장 ‘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 됐다. 정부 방관 속에 탈북민 단체도 대대적인 대북 전단 살포를 재개했다.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는 것에 대한 맞대응이라는 주장이다. 첨단무기가 충돌 억지력을 발휘하는 시대에 한반도에선 때아닌 ‘풍선 전쟁’이 벌어졌다.

실체가 불분명했던 윤석열 정부 대북정책은 북한 도발을 만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지난 6월 6일, 윤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평화는 굴종이 아닌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인지, ‘도발에는 도발로 맞대응하겠다’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다만 어느 쪽이든 근원적 의구심은 남는다. 하나는 5년간의 ‘대리인’일 뿐인 정부가 ‘주인’인 국민의 이해를 충실히 고려하고 있느냐다. 이는 일부 국민의 이념, 호승심과는 차원이 다른 생존의 문제다. 윤 대통령 발언 속엔 유사시 접경지역 주민들을 어떻게 보호한다는 계획이 없다. 또 다른 하나는 대리인인 정부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느냐다. 사실상 ‘오물 풍선’과 ‘9·19 군사합의’가 등가교환된 모양새다. 정권의 이익이 반드시 국익과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한국 정치사의 상식이다. 지난 일주일,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따져봐야 한다.

오물 풍선, 목적은 무엇인가

북한의 오물 풍선은 한국사회에 두 가지 충격을 남겼다. 하나는 스스로 핵보유국이라 주장하는 북한의 도발 수준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북한발 오물 풍선 실물이 빠르게 공유됐다. 불특정 다수가 인명·재산 피해를 볼 수 있는 막무가내식 도발 행태는 다시 한번 북한 정권의 민낯을 드러냈다. 또 다른 하나는 해당 오물 풍선이 접경지역 및 수도권을 넘어 강원, 충북, 경북지역에서도 목격됐다는 점이다. 북한이 자랑하고, 한국이 요격을 자신한 미사일이 아님에도 전국 곳곳에 북한이 날려 보낸 물체가 닿았다. 풍선에 매단 것이 오물이 아닌 생화학무기라면 전국이 사정권이 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풍선을 무기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이것이 안보위협이라는 점에서는 견해가 일치한다. 이미 풍선은 국제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은 미국, 대만 등에 ‘정찰 풍선’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잇달아 날리며 갈등을 야기한 바 있다. 지난 6월 5일 한 안보 전문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풍선 끈에 기폭장치를 달아 원하는 시간, 위치에서 끈이 끊어지게 하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물체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국민은 잘 모르지만 매일 한반도 상공에는 홍보용·상업용 풍선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날아다닌다. 이중에 무엇이 북한발 풍선인지 식별해 제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 최고의 정찰 능력을 갖춘 미국도 자기네 머리 위로 날아다니는 풍선을 곧바로 잡아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당장 풍선을 무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한이 서해상에서 수행하고 있는 위성항법장치(GPS) 교란과 오물 풍선은 대표적인 ‘회색지대 전술’이다. 이는 직접적 무력 충돌은 피하는 공격 방식을 의미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역시 풍선에 화학무기를 넣으면 그 즉시 전쟁이란 것을 잘 안다”며 “오히려 한국에 물리적 대응이 어렵다 보니 오물 풍선, GPS 교란과 같은 회색지대 도발에 집중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오물 풍선을 통해 무엇을 노렸느냐가 문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총장은 “표면적 배경은 우리 측 대북 전단 풍선에 대한 맞대응이지만 그 속내는 결국, 남남갈등 획책일 것”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고 이성적 대응이 필요한데 벌써 정부가 북한의 미끼를 덥석 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는 북한의 미끼를 물었나

북한발 오물 풍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9·19 군사합의 폐기다. 이는 연쇄적으로 대북 전단을 자유롭게 살포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결정이 오물 풍선 사태를 정책 갈등으로 변모시킨다는 점이다. 이미 정치권과 전문가를 중심으로 “오물 풍선과 9·19 군사합의 폐기가 어떻게 등가교환 대상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설사 9·19 군사합의가 잘 이행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유지했다면 유사시 모든 책임은 군사합의를 어긴 북한에 있다는 명분을 쥘 수 있었다”며 “합의를 중지한 이후부터 발생한 문제는 이제 남북 공동의 책임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물 풍선에 관한 군사회담을 제안해 북한의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을 거친 뒤 합의를 중지하는 등의 전략적 고려가 아쉽다”고 덧붙였다.

대북 전단 살포를 두고는 의견이 더욱 엇갈린다. 정부는 “대북 전단 금지법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를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즉 직접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표현의 자유가 그 수단도 정당화하는가’이다. 대북 전단 살포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대북 전단이 “목적을 혼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조 위원은 “일부 탈북민 단체가 떠들썩하게 대북 전단을 날리고 북한군도 이를 뻔히 파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전단이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겠냐”며 “진짜 북한 민주화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북한군이 파악할 수 없게 조용히 주민들에게 약품, 쌀을 실어 보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부 탈북민 단체의 행보는 접경지역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해당 단체 선전이나 상업적 이익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 총장은 “대북 전단이나 확성기가 단순히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관료들이 분노케 하는 것이 목적이냐”며 “전단이나 확성기는 북한 주민이나 군인이 이를 보거나 듣고 대정부 투쟁을 유도하는 등을 목표로 하는데 지금껏 목적이 달성됐다는 소식은 없고, 한국 측 피해만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2021년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 2015년 목함지뢰 폭발사건 등이 대북 전단, 확성기로 인한 갈등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북한과의 갈등 국면에서는 불합리한 규칙이 존재한다. 행위자와 피해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은 접경지역인 경기 파주나 인천 백령도에 있지 않다. 대북 전단을 날리는 탈북민 단체 역시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 모두 “전쟁도 불사한다”는 큰소리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후방에서 나온다. 불안은 전방에서 살아가는 주민, 의무복무하는 군인,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들 몫이다. 지난 6월 3일 접경지역 주민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는 “주민들의 평화적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깊이 우려한다”고 외쳤다. 서울에 있는 정부는 보란 듯 하루 뒤 9·19 군사합의를 종료했다. 의무도, 책임도 없는 단호함은 만용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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