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조기입학'이 출산율 높일 수 있다는 국책연구기관[기자수첩]
내놓자마자 역풍에 폐기된 '5세 초등입학', 여아 선별시행으로 재활용 시도?
"학교가 언제부터 이성교제 주선?"…'재생산 위한 결혼'만 목표로 겨냥한 촌극
'여성 고스펙→저출산' 진단과 오버랩…부처 신설보다 정책평가 신뢰성부터 높여야
"차라리 이렇게 얘기를 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여자애가 성적도 좋고 취업도 잘하니 엄마들이 (산전) 선별검사에서 딸만 낳으려고 할 거다, 그럼 이 사회가 여초(女超)가 될 거고, 성비상 아이를 낳기 힘든 구조가 우려된다고…(따져보면) 그거랑 맥락상 뭐가 달라요?"
주중에 만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혀를 끌끌 찼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발간한 정기간행물 '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의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이 불러온 논란을 두고 나온 말이다. 약 30쪽 분량의 이 글은 '여성의 1년 조기입학'이 향후 적령기 남녀가 느끼는 서로의 매력도를 높여 궁극적으로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견으로 세간을 발칵 뒤집었다.
정책의 효과와 근거를 떠나, 여성만 콕 집어 학교를 1년 일찍 보내자는 제언이 국책연구기관의 '짬 있는' 연구자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에 언론은 경악했다. 젠더적 관점에서 이 발상의 기반에 깔린 '성차별' 관련 비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 주장이 제기된 배경과 맥락이 더 궁금했다. 기관의 특성상 국가 재정이 허투루 쓰이는 일을 가장 저어할 연구원이 이 정도 급진적 안(案)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할 때엔 '나름의' 논리적 완결성이 있을 거라 믿었다.
편견 없이 전문을 훑어보잔 생각으로 정독한 글의 시작은 의외로 무난했다. 현상의 심각성을 우리의 대응체계('기존의 관성에 따라 편성되고 계획된' 저출산·고령화 정책)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은 평범했고, 현재의 인구감소가 되레 '쾌적도가 높은 정상적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맞는 기회일 수 있다는 인식은 적당히 신박했다. 연구원이 유형화한 '현안 분석'이라기보다, 인구문제의 개론 같았던 글의 중간 즈음 문득 맥이 탁 풀렸다.
"본고를 작성하게 된 가장 큰 동기 중 하나는 현재 생산가능인구 대응 정책과 관련한 연구들이나 정책 제언들이 산발적, 비체계적, 각개약진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 정부 초기에 초등학교 5세 입학에 대한 정책이 제안되었다가 철회된 바 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국민들이 보다 어린 나이에 생산가능 인구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분명히 현재의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유효한 검토 대상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교육당국이 출범 두 달여 만에 내놨다가 거센 역풍에 철회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관련 지나친 희화화로 재논의가 어려워졌다며 '큰 아쉬움'을 표한 점에 비춰 보면, 여아에 대한 '선별 시행'으로 한 발 더 나아간 재활용을 시도한 듯 싶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제언이 '남성의 발달 정도가 여성의 발달 정도보다 느리다'는 전제를 기정 사실로 깔고 있다는 점이다. 거칠게 말하면 남성이 자신보다 성숙해 연상의 느낌을 풍기는 또래에겐 이성적 매력을 덜 느낀다는 얘기다. 남아의 발달 부진을 디폴트로 자인한 것은 덤이다.
이를 통해 '교제 성공'을 유도하고,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게 하자는 게 장 연구위원의 로드맵이다. 국가가 성별에 따라 학령기 시작을 달리 적용하는 것이 장래의 연애를 '지원'하기 위한 포석이란 인식도 놀랍지만, 최종 목적이 재생산을 위한 결혼이란 점은 올드하기 짝이 없다.
'학교가 결혼정보회사도 아니고, 언제부터 이성 교제를 주선하는 만남의 장(場)이 됐냐'는 취재원의 반문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던 이유다. 제각기 다른 아동의 성장속도를 고려해야 할 교육적 다양성이나, 자칫 '갈라치기' 논란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성별 이분화 접근에 대한 고민도 물론 찾아볼 수 없다.
생산가능인구를 지금보다 한 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한 집념은 '7단계'의 도식화로 이어졌다. ①결혼 의지가 있고 ②교제에 성공하고 ③결혼에 성공하고 ④첫째 출산의지를 갖고 ⑤첫째아 출산에 성공하고 ⑥둘째 출산의지를 갖고 ⑦둘째아 출산에 성공하는 것이 각각의 스텝이란다. 최소 '2.0' 이상의 합계출산율을 유지해야 사회가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란 설명도 친절히 덧붙였다.
이 '출산의사결정 트리'에서 어떻게 하면 단계별 이행율을 높일 수 있을까에만 몰두한 결과가 실소를 자아낸 정책 아이디어로 직결됐다는 점은 연구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출산율 0.7명 선도 위태한 저출산이 우리 사회 문제의 총체적 결론이듯, 이를 푸는 해법도 고차원 방정식임을 잊어선 안 된다.
인구 문제를 오랫동안 공부해온 또 다른 연구자는 이번 촌극이 7년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원종욱 당시 연구위원이 인구포럼에서 '여성의 고(高)스펙'을 저출산 원인으로 지목했던 사건과 너무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원 연구위원의 직함이 인구영향평가센터장이었다는 점도,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위탁 아래 인구정책평가센터를 운영하게 된 상황과 불안스레 오버랩된다. 저출산 극복에 15년간 280조의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내리막을 걸은 출산율을 들어, 정책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주문에 4월 말 출범한 센터다.
정책별 성과를 '합리적으로' 복기하기 위해선 저출산 문제를 입체적·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균형 잡힌 관점이 필수다. 대통령이 띄운 전담부처(저출생대응기획부) 신설도 좋지만, 기존의 인구정책을 평가하고 장기 전략을 수립할 주체의 신뢰성부터 담보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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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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