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일만 석유' 최대 140억 배럴 입증하려면… "시추 말고는 방법 없다"
성공률 20%…"5번 시추하면 1번 발견 가능"
사업 좌우할 경제성 평가는 시추 후에 이뤄져
섣부른 기대감·장밋빛 전망 당장은 의미 없어
경북 포항시 영일만 일대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대통령 발표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정부가 정면돌파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는 7일 물리탐사 결과를 분석한 미국 심해 기술평가 전문업체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Vitor Abreu) 고문과 기자회견을 열고 "동해 프로젝트의 유망성은 상당히 높다"며 분석 과정과 각종 의혹 등에 적극 답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선 섣부른 예측이나 장밋빛 전망은 금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긁지 않은 복권'보다 못한 수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차분히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냉정한 평가도 나온다.
아브레우 고문이 취재진 앞에 선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3일 국정 브리핑 이후 나흘 만이다. 아브레우 고문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해 유전 탐사개발 프로젝트의 유망성은 상당히 높다"며 "우리가 분석한 모든 유정(油井)이 석유와 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브레우 고문은 윤 대통령이 영일만 일대에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다고 발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석유공사는 지난해 2월 동해안 심해 물리탐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액트지오에 동해 심해 8광구와 6-1광구 북부·중동부의 자료 해석을 맡겼다. 이 회사는 자체 첨단 기술과 노하우를 활용해 심해 지역에서 총 7개의 유망구조를 찾아내고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의 탐사자원량(물리탐사자료 해석을 통해 산출된 유망구조의 추정 매장량)을 산출했다.
석유·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구조가 되기 위해선 저류층(모래), 덮개암(진흙), 기반암, 트랩 등 크게 네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보통 심해 저류층에 석유가 존재하고 진흙이 '덮개암' 역할을 하면서 석유나 가스가 새어나가지 않게 가두는 구조(트랩)를 형성하는데, 동해 깊은 바다에서 이 같은 구조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아브레우 고문은 "이 분지를 살펴보니까 덮개암과 저류층이 존재했다"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석유공사의 입찰에 참여해 낙찰받았고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동해 해역에서 이뤄졌던 석유시추 탐사 작업도 유망구조를 알아내는 데 이바지했다. 석유공사는 호주의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에너지'와 국내 심해 지역에서 △2012년 '주작공'(6-1광구 북부) △2015년 '홍게공'(8광구) △2021년 '방어공'(6-1광구 중동부) 등 3개 시추공 작업을 진행했지만 석유나 가스를 발견하지 못했다. 액트지오는 2개 팀을 꾸려 앞선 3개 시추공 사업의 실패 이유를 분석하고 이 데이터를 토대로 기존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의 저류층을 찾아 7개의 유망구조를 이끌어냈다. 아브레우 고문은 "7개 유망구조에는 탄화수소가 성숙할 수 있는 징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남아 있는 방법은 시추를 통해 이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석유·가스 진짜 있을까…1차 시추 끝나는 내년 상반기에야 '윤곽'
긍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불확실성과 실패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석유공사와 아브레우 고문이 예상한 성공률은 20%다. 그는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수치"라며 "최근 발견된 유정 중 가장 큰 매장량이었던 남미 가이아나 유전의 성공률도 16%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다만 "'20%의 성공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80%의 실패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라며 "실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시추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추정되는 예상 탐사자원량이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로 편차가 너무 큰 이유 또한 불확실성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아브레우 고문은 "기존 유정에서 탄화수소가 쌓인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최대 추정량은 암석 내 충분한 공극이 있어 충분한 양의 석유·가스가 담겨 있을 가능성을 고려한 수치"라고 말했다. 아울러 석유 25%와 가스 75%로 예상 매장 비율을 추정한 이유를 묻자 "가장 확률이 높은 비율로 도출한 것"이라며 "기반암에서 가스와 콘덴세이트(천연가스에서 나오는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 그리고 석유가 분출될 수 있는 가능성, 분출될 수 없는 가능성을 모두 고려하지만 정확한 비율은 확답할 수 없다"고 했다.
석유시추 사업의 운명을 좌우할 핵심 요소인 경제성과 관련해선 여전히 물음표인 상황이다. 경제성을 갖추기 위해선 동해 심해 해역에 있는 탄화수소가 상품성을 가진 양질의 석유나 가스여야 한다. 결국 시추 후 데이터 분석이 이뤄질 내년 상반기에야 평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곽원준 석유공사 수석위원은 최대로 상업 생산이 가능한 물량의 예상치를 묻는 질문에 "석유나 가스가 발견되는 데 필요한 요소는 갖춰져 있어도 이 유망구조 안에서 석유가 이동을 했느냐, 이동했으면 얼마나 차 있느냐는 아직 모르고 그게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리스크"라며 "시추를 통해서 밝혀내야 될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동해 심해 가스전을 장기간 연구했던 국내 한 대학 교수는 "그동안 한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섣부른 해석은 위험하다"며 "지나친 억측이나 장밋빛 전망은 사업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각종 불확실성과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시추를 결정한 데 대해 "충분한 정책적 판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호현 산업부 에너지정책실장은 "우리나라는 석유와 가스를 1년에 1,400억 달러씩 수입하는 국가로 이런 에너지 자원이 국내에 있다면 상당한 수입대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국내 검증단과 정부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거쳐 액트지오의 분석 방법이 적절하다고 봤고 시추할 필요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달 중 국내‧외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전략회의'를 열고 영일만 심해 가스전의 성공적 개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세종=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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