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물류창고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질식한다
알렉 맥길리스의 '아마존 디스토피아'
아마존이 어떻게 미국을 망치는지 추적
독점기업으로 해체돼야 한다는 주장 담아
2021년 6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서른두 살 대학교수였던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발탁했다. 우리로 치자면 공정거래위원장쯤 되는 FTC위원장은 법무부 반독점국장과 함께 미국 반독점 정책의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그런 자리엔 으레 관가와 시장에서 산전수전 겪어 본 사람이 임명되기 마련인데, 젊디 젊은 대학교수를 앉힌 것이다.
발탁 이유는 그가 쓴 예일대 로스쿨 박사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때문이다. 논문의 핵심은 알려진 대로 1970년대에 정립된 '소비자 후생' 법리를 무너뜨리는 데 있다. '독점이라 해도 엄연한 사기업을 정부가 해체할 수 있는 건 그 기업이 소비자 후생을 명백히 침해했을 때'라는 논리다.
이게 지금 같은 거대 IT 플랫폼 기업 시대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논문의 요점이다. 플랫폼 기업들은 오히려 가장 앞장서서 '소비자 후생 증대'를 내세운다. 아마존 주문 배송은 소비자에게 온 세상의 다양한 상품에 쉽고 편리하게 접근하도록 도와주면서도 싼값에 제공하는, 그 얼마나 편리한 서비스인가.
"소비자 후생 논리를 깨라" 리나 칸의 미션
그렇기에 리나 칸의 주장이 관철되기 쉽지 않다. 오랜 법리를 뛰어넘어야 하고, 디지털 시대를 역행하는 느낌을 각오해야 하는 데다,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세계 최강이던 시절 기세 좋게 대기업들을 해체시켰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 쉬인) 공습'으로 상징되는 중국과의 경쟁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탐사보도 기자 알렉 맥길리스가 쓴 '아마존 디스토피아'는, 말하자면 리나 칸 논문에 대한 상세한 보충 해설서다. '클릭 한 번으로 이걸 참 편리하게도 배송받았어'라는 원클릭 경제의 소비자 후생 논리가, 그 뒤로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파괴하고 있는지 미국 전역의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구체적 과녁으론 아마존의 물류센터 '풀필먼트(Fullfilment)'를 골랐다. 너희들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켜 주겠다는, 이름부터 참 소비자 후생적인 그곳 말이다.
아마존은 아주 싼 가격에 경쟁적 제품을 쏟아내면서 관련 소매업체들을 반강제로 가입시킨 뒤 관련 판매, 소비자 정보를 독점한다. 이 정보를 분석해 더 싼 제품을 만들어 이를 아마존에 더 자주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경쟁사들을 축출해 버린다. 플랫폼 기업은 사기업인데 마치 정부가 세금을 걷듯 수수료를 걷어간다.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아마존 풀필먼트는 '악랄한 구매독점자'
이는 '약탈적 가격' '구매독점' '정보비대칭'의 순환 구조다. 독점적 가격은 이제 공급자가 나 하나밖에 없어서가 아니다. 이젠 물건을 사들일 곳이, 관련된 정보가 대거 축적된 곳이 아마존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발생한다. 저자는 이를 '수학적으로만' 완벽한 파생상품으로 인해 발생했던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형 투자사들에다 비유한다. "대형 투자 은행들이 그러듯이 아마존도 시장조성과 그 시장에서의 거래,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
아, 잊지 말라는 듯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출발점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해 뒀다. "헤지펀드 D. E 쇼에서 갓 나온, 부모가 유산으로 물려준 10만 달러를 손에 쥔" 사람. 그리고 애초 아마존을 시애틀에서 시작한 이유도 판매세를 가장 적게 내는 곳이어서다.
아마존 풀필먼트의 노동 조건은 열악하다. 예전 물류회사 직원은 세세한 점검과 분류 작업을 진행하는 고숙련직이었으나 이제 로봇 자동화 때문에 인간은 물건을 집어 올리는 피커, 물건을 싸는 패커일 뿐이다. 저자는 볼티모어 지역 노동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전한다. "볼티모어 GM공장은 시간당 평균 27달러를 주고, 부가급부도 제공했다. 10년 뒤 이 지역에 들어선 아마존 풀필먼트는 시간당 12~13달러를 지급하고 부가급부도 없다."
거대 빅테크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아마존에선 노동자의 모든 움직임이 자동 추적돼 알고리즘으로도 해고 가능하다. 또한 "사내에서 승진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높은 이직률을 촉진"한다. "노동자들이 이름 없는 부품처럼 계속 제자리에서 쳇바퀴를 돌게 해야 저항적 연대를 일구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아마존 풀필먼트를 이렇게 요약했다. "네오모던 하이테크 게토."
이런 이야기들의 결론은 무엇일까. 아마존으로 빨려 들어간 소매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 경제 생태계가 무너진다. 이 생태계가 붕괴하니 광고 수입이 격감한 지역 언론도 붕괴하고 그에 따라 지역에 대한 관심, 감시, 감독 또한 무뎌진다. 무너진 지역은 경제 회생을 위해 무리한 조건을 내걸면서까지 다시 아마존에 매달리는 악순환에 빠진다.
"뒤처진 지역들에서 분노가 높아지면서 유권자들은 인종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메시지에 더 쉽게 반응하게 됐"고 이는 "인구 수로만이 아니라 지역별로 배분되는 미국식 정치 시스템"에서 훨씬 더 큰 무게감으로 작동한다. 쉽게 말해 미국을 '트럼프스럽게' 만든다.
이러는 동안 민주당과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은 "낙후된 지역들을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버리고 가야 할 때"라고 말하면서 트럼프 추종자들을 두고 "아마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투표를 계속할 것"이라고 되뇐다. 자칭 진보라는 작자들이 '계급배반투표'라고 조롱이나 하고 있냐는 분노다.
"우리는 단지 소비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이고 노동자이고 생산자이고 납세자이고 시민입니다. 단지 원클릭 결제를 넘어서는 욕구와 욕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귀담아들을, 아마존에 항의하는 어느 노동자의 절규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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