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간 5건, 특검법 남발…여야 잇속 챙기기 도구로

원동욱 2024. 6. 8.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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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법 도입 25년, 빛과 그림자
22대 국회는 특별검사(특검) 정국으로 시작됐다. 22대 국회 첫날인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1호 법안은 모두 특검법안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명 ‘채 상병 특검법안’을 지난 국회에 이어 다시 발의했고, 조국혁신당은 이른바 한동훈 특검법안을 발의했다. 개원 첫날 1호 특검법안들을 시작으로 야권은 ▶이화영 술자리 회유 의혹 특검법안 ▶김건희 여사 종합 특검법안도 내 모두 4건의 발의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에선 윤상현 의원 등이 김정숙 여사 특검법안을 접수했다.

이화영 특검법, 1심 선고 4일 앞 발의 논란

22대 국회 임기 시작 10일 만에 5건 발의는 이례적 속도다. 물론 19대 국회를 제외하곤 14대 국회 이래 특검법안 발의 건수가 늘어오긴 했다. 모두 118건인데 특히 극단적 진영 대결이 벌어진 20대(31건)·21대(27건) 국회에서 급증했다. 이번 국회도 초반 양태만 보면 심하면 심했지만 덜하지 않은 셈이다.〈그래픽 참조〉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여야가 경쟁적으로 특검법안을 발의하나, 국회를 통과해서 실제 특검이 이뤄진 건 13건에 불과하다. 모두 여야 합의로, 수사의 공정성을 기대할 수 없거나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을 때 도입했다. 특검의 공정성을 담보할만한 장치들도 함께 마련됐다. 대부분 대법원장이나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추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특검이나 ‘드루킹 여론조작 특검’은 각각 반대 진영이랄 수 있는 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야3당이 추천권을 갖도록 보장한 경우였다.

하지만 이번 특검법안들은 중립적이거나 공정해 보이려는 모양새도 아니어서 합의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검사 출신인 김광삼 변호사는 “이화영 술자리 회유 의혹 특검법안 같은 경우 전형적인 당 대표 사법리스크 방탄 특검”이라며 “기존 수사기관의 수사가 미진한 사안에 한해 적용돼야 할 특검제도가, 최근 정치권의 잇속에 따라 남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부 특검법안에서는 정당이 사법부, 재판부에도 영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성윤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화영 특검법안의 경우 민주당 인사들과 관련된 사안인데도 특검 추천 권한을 민주당이 갖도록 했다. 또 재판부가 해당 사건을 우선 신속하게 진행해 1심에서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 이내, 2·3심에선 전심(前審)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3개월 이내 해야 한다고 못 박아 사법부 권한까지 제한했다. 발의 시점도 논란인데 지난 7일 이화영 사건의 1심 징역 9년6월형 선고가 내려지기 불과 4일 앞두고였다. ‘당 대표 방탄 특검’이란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다른 특검법안도 유사한 논란이 있다. 역시 이성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은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추천한 특검 후보 2명 중 한 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했다. 재판부에 신속·집중 심리를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특검이 영장 담당 판사를 고를 수 있게 했다. 조국혁신당의 1호 법안인 한동훈 특검법안 역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 특검 추천권을 갖는다. 조국 대표와 가족이 한 전 장관의 수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보복’이란 비판이 나온다. 윤상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김정숙 여사 특검법안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에 맞대응하는 성격이라 논란을 부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논란이 있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발의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민주당이 헌정 사상 최초로 야권 단독 개원까지 강행할 정도로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어서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제사법위원장까지 차지하면 언제든 논란이 있는 내용의 특검법안도 통과시킬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해 맞서고, 다시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21대 때 여러 차례 경험했던 일이다. 이번에 야권에서 발의한 4건의 특검법안 중 2건(김 여사, 채 상병)은 ‘재탕’이기도 하다. 지난 국회에서 야권이 단독처리하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국회 본회의 재의결 과정에서 부결된 것들이다.

박영수, 성공한 특검서 몰락한 특검돼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신민영 형사전문 변호사는 “특검을 계속해서 해야 할 정도로 기존 수사 시스템이 문제이면 그걸 해결하려 노력하는 것이 입법부의 역할”이라며 “10번 양보해 몇몇 사안들이 특검해야 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기존 사법체계에 대한 보완점은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특검법안만 내는 것은 정치인들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상병 평론가는 “무리한 방식의 특검 남발은 결국 국민적인 피로도를 몰고 올 것이고 이는 특검에 대한 신뢰 자체도 떨어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특검은 ‘잘 드는 칼’은 아니다. 신민영 변호사는 “특검에 들이는 비용에 비해 그만큼 효능이 있는지 의문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13건의 특검 중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건 3~4건에 불과하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검’이 그중 하나인 데 이용호 G&G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을 조사해 김대중 전 대통령 측근을 줄줄이 구속하는 성과를 냈다. 당시 검찰은 “뒤져봐야 별것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차정일 특별검사팀은 수사 착수 한 달 만에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을 전격 구속했다.

2003년 대북송금 사건 특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대북송금 의혹을 어느 정도는 밝혀내 청와대 비서실장 출신의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구속기소 해 징역 3년형을 끌어냈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30여 명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당시 수사를 지휘한 박영수 특검이 이후 ‘가짜 수산업자 금품수수’에 연루돼 논란이 됐고,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해 구속됐다. 가장 성공한 특검에서 가장 몰락한 특검이 된 격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첫 특검이었던 일명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은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를 재판에 넘겨 징역 2년 확정판결을 끌어내 성공적 사례로 분류된다. 김 전 지사와 민주당의 강력한 저항 속에 고전했던 터라, ‘대반전’이기도 했다. 다만 수사를 받던 노회찬 전 의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원동욱 기자 won.dong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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