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노동당에 보낸 200만달러, 이재명 방북 사례금으로 보기 충분”
7일 오후 수원지법 204호 법정.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건을 20개월 동안 심리한 재판장(신진우 부장판사)은 굳은 표정으로 1시간 23분 동안 선고를 이어갔다. 재판장의 유죄 판단이 계속되자 황토색 수의를 입은 이씨는 허탈한 듯 한숨을 쉬었다. 작년 7월 이 법정에서 이 대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이씨를 향해 “정신 차려라”고 소리쳤던 아내 백모씨는 방청석 첫 줄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신 부장판사가 이씨에게 징역 9년6개월과 벌금 2억5000만원, 추징금 3억2595만원을 선고하자, 아내 백씨는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비슷한 시각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재판’에 출석한 이 대표는 휴대전화로 뭔가를 검색해 읽었고, 5분 정도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대표가 이씨의 선고 기사를 찾아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사기업 동원해 불법 대북 송금”
이씨는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을 비롯해,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 수수, 증거인멸 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다. 이씨는 지난 2019년 경기도 부지사이던 시절,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게 총 800만달러를 북한에 불법 송금해달라고 부탁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 중 500만달러는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가 추진했던 ‘북한 스마트팜 개선’ 사업비를 대납한 것이고, 300만달러는 이 대표의 방북 비용을 대납한 것으로 봤다. 이씨는 작년 6월 검찰에서 방북 비용에 대해 이 대표에게 사전 보고를 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이씨는 법정에서 “쌍방울 측에 대납을 요청하지 않았고, 북한 측 영수증 등 증거도 없다”며 진술을 뒤집었다.
1심 재판부는 이날 불법 대북 송금액 중 스마트팜 사업비 164만달러와 방북 비용 230만달러 등 총 394만달러가 세관 신고 없이 중국 등으로 밀반출됐다고 인정했다. 특히 이 대표의 방북 비용 중 200만달러는 실제 북한 조선노동당에 전달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0만달러는 (이재명) 경기지사 방북과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전달됐고, 북한 상부에 전달한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며 “이씨 요청으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하는데도, 이씨는 자신의 공적인 지위를 이용해 사기업을 무리하게 동원했다”고 했다.
◇법인카드·차량 등 2억 넘게 받아
이씨는 2018~2022년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차량 등을 제공받는 형태로 불법 정치자금 3억3400여 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았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2억1800여 만원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씨가 2018년 지방선거 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후보 캠프에서 비서실장을 맡은 기간, 경기부지사 사임 후 민주당에서 활동한 기간 수수한 금액만 유죄로 인정한 것이다.
이씨는 이 기간 쌍방울의 대북 사업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뇌물 2억5900여 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았는데, 재판부는 1억700여 만원만 유죄로 인정했다. 쌍방울 법인 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비서 명의로 허위 급여를 받아왔는데, 부지사를 그만둔 시기에 받은 돈은 뇌물이 안 된다고 봤다.
◇“쌍방울 직원에 증거인멸 지시”
재판부는 이씨가 김 전 회장과 공모해 쌍방울 직원들을 시켜 PC 하드디스크를 파쇄 및 교체하도록 한 증거인멸 교사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쌍방울 임직원들의 진술과 통화 내역 등을 볼 때 혐의가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장기간 뇌물 및 정치자금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았다”며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력 정치인과 사기업 간 유착 관계의 단절을 위한 노력이 지속돼왔는데, 이씨가 이러한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죄질이 불량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씨는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변명으로 일관하여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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