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실 3차장이 美 바이오 박람회에 간 까닭은…
왕윤종 국가안보실 3차장이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 바이오 관련 회의에 잇따라 참석했다. 왕 차장은 안보실에서 ‘경제 안보’를 담당한다. 왕 차장의 미 바이오 관련 회의 참석을 두고 외교가에선 미 의회가 추진 중인 ‘바이오 보안법(Biosecure Act)’의 여파를 보여준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은 바이오 보안법 등을 통해 중국인민해방군(PLA)과 연계된 중국 바이오테크 회사들을 배제한 새로운 바이오 공급망을 구축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도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얘기다. 한 정부 소식통은 “바이오 보안법이 연내 미 의회를 통과해 발효될 가능성이 있어 경과를 주시하고 있고 안보실이 조만간 관련 부처와 회의를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왕 차장은 지난 4일(현지 시각) 미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을 찾았다. 이 행사는 ‘바이오 USA’로 불리는 바이오 테크 분야 박람회다. 왕 차장 박람회 방문에는 김현욱 안보실 경제안보비서관과 최선 대통령실 첨단바이오 비서관도 동행했다. 국가안보실 고위급 인사가 바이오 USA 박람회를 찾은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왕 차장은 박람회장에서 “지금까지는 바이오를 안보 개념으로 보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보건 안보 측면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느껴 고민 중”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왕 차장은 5일엔 미국, 일본, 인도, 유럽연합(EU)과 함께하는 ‘바이오제약 연합(Biopharma Coalition) 출범 회의에도 참석했다. 미 백악관, 국무부, 복지부, 상무부, 식품의약처(FDA) 당국자들이 두루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5국은 경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상호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바이오제약 공급망 구축을 논의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중국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었지만, 미국이 바이오제약 연합을 발족시킨 배경을 감안하면 회의 참석국에 중국과 관련된 협조를 요청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정부·의회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발발 이후 의약품 공급을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마스크, 의료용 장갑 같은 기초 의료 용품 생산은 물론 각종 의약품과 원재료를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 미 당국이 의약품 공급망 안전성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중국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인민해방군과 밀착됐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중국 정부는 중국인 유전자 정보가 해외로 이전 공유되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국 기업이 수집한 유전자 정보는 ‘국가 안보’와 관련 있는 경우 중국 정부에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해 외국인 유전자 수집과 분석의 길을 열어뒀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 최대 유전체 분석 업체 BGI(華大基因), 세포·유전자 치료제 위탁개발생산(CDMO)을 하는 중국 제약사 우시앱텍(藥明康德) 등이 인민해방군과 여러 공동 연구를 해왔다고 보도했다. BGI는 세계 각국 병원 의뢰를 받아 태아의 기형 여부를 시험하는 유전자 검사(NIFTY)를 한다. 한국 산모들에 대한 검사도 다수 수행했다.
중국 바이오테크 기업과 인민해방군의 밀착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미 의회 미·중전략경쟁특위는 올 1월 “적성국 바이오테크 기업을 막아야 한다”며 ‘바이오 보안법’을 발의했다. 미 정부와 관련 기관, 정부 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은 2031년 말까지 BGI나 우시앱텍 등 ‘우려 기업’들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적성국 정부의 행정 처분, 지시,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기업’은 다 거래 제한 대상이라 다른 기업의 추가 지정도 가능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한국 정부도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란 지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최신 통계에 따르면, 국내 원료 의약품 자급도는 11.9%(2022년 기준)에 불과하다. 한국이 원료 의약품을 가장 많이 수입해 오는 나라는 중국(수입액 9억달러)이다. 바이오 안보의 핵심으로 꼽히는 유전체 분석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 중국이 갑자기 원료 의약품 수출을 통제하거나, 한국인 DNA를 분석해 활용할 경우 현재로선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바이오 보안법 (Biosecure Act)
미국 의회가 중국 바이오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해 발의한 법안. 미 행정부를 비롯해 관련 기관, 정부 지원금을 받는 기업들이 ‘우려 기업’에 해당하는 중국 바이오 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 상·하원 상임위를 각각 통과했고 전체 회의와 대통령 서명을 거쳐 연내에 공포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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