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 밀린 동요… 아이 대신 어르신들이 부른다

구동완 기자 2024. 6. 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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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이상만… 국내 첫 실버 동요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지난 5일 경기 이천시 이천아트홀에서 대공연장에는 60대가 넘은 노인들만 참가하는 전국 최초의 실버 동요제가 열렸다. 경기 일산에서 온 ‘솔빛소리합창단’ 단원 48명이 토끼 모자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동요 ‘앞으로’를 부르자 1000여 명 관객이 가득 찬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지난 5일 경기 이천시 이천아트홀 대공연장에서 열린 '제1회 전국실버동요제'. 참가한 노인들이 교복을 입고 동요를 부르고 있다. 이날 동요제에는 전국 곳곳에서 온 노인 480여 명이 참가했다. /구동완 기자

전국 50팀이 참가한 치열한 전국 예선을 거쳐 서울·경기·전남·충북에서 20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최고령자는 ‘이천시니어합창단’ 소속 심재구(89·여)씨. 그는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오빠 생각’을 불렀다. ‘강천수월래’(경기 여주)팀은 진짜 지팡이를 들고 나와 ‘꼬부랑 할머니’를 불렀다. 여성 22명으로 구성된 광주광역시 ‘추동복’ 팀은 교복을 입고 ‘금강산’을 불렀다.

전남 나주에서 온 은파합창단의 한순희(73)씨는 ‘오빠 생각’이라는 동요를 불렀다. 한씨는 “이 노래만 부르면 연로한 친오빠와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 눈물이 난다”며 “동요를 부르면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고, 어린 시절 함께 지내던 가족들 생각이 난다”고 했다. 경기 부천에서 ‘평생 친구’라는 팀으로 참가한 박희석(80)·김찬분(73)씨 부부는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기념하려고 동요제에 참가했다. 부부가 하모니카로 ‘섬집아기’를 연주하자 관객들은 눈물을 흘렸다.

‘퀸즈싱어즈’(서울·경기) 소속 이경희(64)씨는 “동요를 부르면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고 국민학교 친구들과 뛰놀던 추억이 떠올라 행복하다”며 “돌발성 난청이나 기억상실증에 걸린 팀원들도 노래하면서 건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이천시는 한국 첫 창작 동요인 ‘반달’(윤극영) 창작 100주년을 기념하려고 이번 행사를 개최했다. 이천시 관계자는 “저출산과 고령화, K팝 문화의 확산으로 어린이 동요가 잊혀지는 상황에서, 동요 문화의 산증인인 어르신들과 함께 동요의 명맥을 잇고자 행사를 기획했다”고 했다.

한국동요문화협회 인윤희 사무국장은 “저출생으로 아이들이 줄고 K팝 인기와 사교육 열기에 밀려 동요가 어린이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며 “오히려 동요를 부르며 위안을 얻는 노인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올해 16회를 맞이한 옥천짝짜궁전국동요제는 10년 전에 비해 참가자 수가 40% 가까이 감소, 예선 참가 팀이 예년 60개에서 반 토막이 났다. 지자체 지원 예산도 삭감됐다.

‘119전국소방동요경연대회’도 20년 전에는 어린이 참가자가 3000명이 넘었으나 지금은 2000명 대에 불과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음악산업백서를 보면 작년 10대 청소년 61.2%가 댄스와 아이돌 장르 음악을 즐겨 듣는다. 발라드(35.4%)와 랩·힙합(18.8%) 등이 뒤를 이었는데 동요는 항목에도 없었다.

조원경 한국동요작곡가협회장은 “정작 어린이들이 외면하는 동요를 노인들이 부르며 동심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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