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이민·포퓰리즘·친러…유럽의회 파고드는 극우파

2024. 6. 8.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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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결판, 유럽의회 선거로 본 정치 지형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6일 포르투갈 중도 우파인 민주동맹의 선거 유세에서 지원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의 유권자 3억 7500만 명이 정당명부제 선거로 72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유럽의회 선거가 6~9일 나흘 동안 진행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단연 주목을 받는 정치 세력은 반이민·포퓰리즘·친러시아를 내세우는 극우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는 2개의 분쟁으로 고물가와 이민 등 현실 문제에 대한 유권자 불만이 표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평화·민주주의·평등·지구환경 등 이상주의를 앞세워온 기존의 좌파나 우파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자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극우세력이 틈새를 파고들며 지지세를 넓히고 있다.

유럽의회는 1900억 유로(약 285조원)의 예산과 관련 입법을 책임지면서 거대 EU기관들을 통제한다. 독일의 정치·선거분석 컨설팅 업체인 엘렉치온(Election.de)의 6일 발표에 따르면 이번 선거의 전망은 ‘우파 선전, 좌파 부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그룹 중 보수 성향의 ‘유럽보수와 개혁(ECR)’이 66석에서 82석으로 16석을, 더 보수적인 ‘정체성과 민주주의(ID)’가 62석에서 69석으로 7석을 각각 늘릴 것으로 예상됐다. ID에는 프랑스 국민연합(RN)이, ECR에는 ‘이탈리아의 형제들(FiD)’ 등 포퓰리즘·반이민 성향의 극우 정당이 포진해 있다. 현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이 소속한 최대 정치그룹인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도 5석을 늘릴 것으로 예측됐다. 우파의 예상 의석 증가 수는 28석에 이른다.

같은 날 롭 예턴 네덜란드 기후·에너지 정책 장관이 우베르겐 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720명을 뽑는 유럽의회 선거는 6~9일 진행된다. [AFP=연합뉴스]
반면 이상주의를 강조해온 좌파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대 좌파 정치그룹인 중도좌파 사회민주진보동맹(S&D)은 144석에서 138석으로 6석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다른 중도좌파인 자유당은 101석에서 85석으로 16석이 줄고, 녹색당/유럽자유동맹(Greens/EFA)은 73석에서 58석으로 15석이 줄 것으로 예측됐다. 좌파성향이 가장 강한 ‘좌파(The Left-GUE/NGL)’만 38석에서 42석으로 4석이 늘 것으로 전망됐다. 좌파의 예상 의석 감소 수는 33석이나 된다.

상황이 이러니 그동안 자숙해왔던 EU 각국의 극우 정치인이 갈수록 활개칠 것으로 보인다. 극우 정부 수반으론 이탈리아 ‘이탈리아형제단(Fdi)’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 헝가리 피데스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있다.

2022년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에서 41.46%를 득표했던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를 계기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더욱 거세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은 지난 4월 15일 퇴직과 연금수령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연금개혁안에 서명한 직후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26%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반면 포퓰리즘을 앞세워 연금개혁에 반대 목소리를 내온 르펜 대표의 경우 39%였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독일은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SPD) 소속 올라프 숄츠 총리가 집권하고 있지만 거듭된 악재와 리더십 문제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다. 특히 오는 9월 1일 작센·튀링겐, 9월 22일 브란덴부르크 등 신연방주(옛동독 지역) 3개주의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숄츠 교체론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신연방주 지역은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 극우정당의 텃밭으로 통한다. 극우세력에 숄츠의 정치생명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헝가리의 오르반 총리는 난민 수용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인종주의 발언을 일삼는 것은 물론 나토 회원국 정부 수반임에도 대놓고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영국 시사잡지 이코노미스트와 폴리티코 유럽 등은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현 EU 집행위원장인 폰데어라이엔과 프랑스 극우정치인 르펜 모두로부터 협력 제안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멜로니는 2022년 총리 취임 당시 반이민 발언으로 극우 성향으로 평가 받았지만 집권 이후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면서 합리적 우파 지도자로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는 현재로는 중도 좌·우파가 다수 의석을 차지하겠지만, 이민·우크라이나 등으로 극우세력이 각국에서 약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폰데어라이엔이 연임을 하더라도 정책 면에서 아무래도 더욱 우파로 기울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고속으로 질주해온 환경·이민 등 유럽의 진보정치에 ‘속도조절’을 처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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