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에 맞는 하이볼? 세 가지만 기억하자
[김지호 기자의 위스키디아]
훈제 맛은 피트… 열대 과일 계열은 버번
견과류 고소함은 셰리…얼음은 크고 단단한 걸로
손님이 몰트바에서 “하이볼 한 잔 주세요”라고 하면 바텐더는 생각이 많아진다. 처음 보는 손님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는 독심술사가 아니기 때문에 손님의 의중을 파악하려면 몇 가지 단서가 더 필요하다.
친절한 바텐더라면 먼저 여러 가지 맛을 예시로 들면서 ‘기주(基酒)’ 선택에 도움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당혹스러움은 손님의 몫이다. 특히 몰트바가 익숙하지 않다면 낯선 용어에 슬슬 머릿속이 복잡해질 것이다. 그냥 적당히 시원하고 청량감 있는 하이볼 한 잔 마시고 싶었을 뿐인데.
하이볼은 청량한 맛으로 마시는 음료다. 오늘날 하이볼은 증류주에 무알코올 음료를 섞은 것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즉, 위스키뿐만 아니라 진에 토닉워터, 버번에 콜라를 타도 이를 모두 하이볼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때문에 하이볼로 만들 수 있는 메뉴는 무한하다. 특히 기주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이왕 돈 주고 마시는 거, 내 취향에 딱 맞는 하이볼을 고르는 게 좋지 않을까?
딱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본인이 어떤 맛을 선호하는지만 알아도 선택은 쉬워진다. 먼저 훈제나 장작 타는 맛을 원한다면 피트(peat) 위스키를 선택하면 된다. 피트는 ‘석탄화’가 되지 못한 습지에 축적된 풀이나 이끼 등의 퇴적물을 말한다. 석탄이 되기 전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상큼한 열대 과일 계열의 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된 위스키가 제격이다. 버번 특유의 바닐라와 캐러멜 풍미가 하이볼에서 산뜻한 과일 맛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말린 과일이나 견과류 계열의 고소함을 느끼고 싶다면 셰리 위스키를 선택하면 된다. 단, 셰리 위스키는 하이볼과의 궁합이 썩 좋지만은 않다. 자칫 셰리가 가진 안 좋은 맛들이 탄산수와 만나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셰리 오크통이 가진 유쾌하지 않은 나무 맛이나 어중간한 포도의 쓴맛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탄산수와 블렌디드 위스키와의 궁합은 좋은 편이다. 블렌디드 위스키 특유의 씁쓸한 곡물 맛을 탄산수가 말끔하게 잡아주기 때문이다. 조니워커나 산토리사의 가쿠빈 같은 블렌디드 위스키가 하이볼 기주로 사랑받는 이유다. 기주만큼 중요한 게 탄산수와 얼음이다. 얼음은 최대한 크고 단단한 게 좋다. 하이볼은 제조와 동시에 얼음이 녹으면서 술맛이 묽어진다. 바텐더들도 하이볼만큼은 빠르게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탄산수는 청량감이 강한 제품이 좋다. 자잘한 느낌의 밀도감 있고 부드러운 탄산수가 밸런스 측면에서 좋겠지만 ‘싱하’ 정도면 충분하다.
하이볼을 고를 때 너무 비싼 위스키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너무 비싼 위스키로 하이볼을 타면 생각만 많아진다. 자신도 모르게 여러 가지 맛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참, 피트는 하이볼에서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피트 하이볼에 가니시로 레몬 대신 검정 통후추를 북북 갈아서 넣어보자. 하이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이태원에서 ‘메이커스 마크’ 팝업 행사가 진행 중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칵테일과 하이볼을 5000원에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지간한 몰트바의 4분의 1 가격이다. 평소 병을 살 엄두가 안 났다면 메이커스 마크를 기주로 한 다양한 칵테일을 합리적인 가격에 맛볼 좋은 기회다. 메이커스 마크는 옥수수로 만든 버번위스키로 니트보다는 탄산수와 궁합이 좋다. 특히 입에 한 모금 물었을 때 올라오는 달콤한 바닐라와 캐러멜, 말미에 올라오는 구운 빵 맛이 인상적이다. 간간이 더운 기운이 느껴지는 요즘, 나에게 딱 맞는 하이볼을 찾아내는 것으로 여름을 대비하는 것은 어떨까. 바야흐로 하이볼의 계절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