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범인의 추억' 막으려면 죄샐틈 없는 과학수사가 답이다
[정 변호사의 ‘죄와 벌’] 화성연쇄살인 사건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에서 일어난 10여 건의 살인사건을 가리킨다. 우리나라 역사상 사회적 파장이 가장 컸던 사건이자 과학수사 발전의 시동을 건 사건으로 평가된다. 범인은 피해 여성을 성폭행한 뒤 잔인하게 살해하고 차마 지면에 옮길 수 없는 엽기적 행각을 서슴지 않았다.
반경 2킬로미터 안에서 불과 넉달 동안 4건의 강간살인이 발생하자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화성에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지고 5년 동안 연인원 40여만명의 경찰(방범 인력까지 합치면 200만명)이 투입되었다. 국내 단일 사건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수사본부에서 조사한 사람이 2만1280명이었고 용의자로 지목한 사람이 3000여명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규모 수사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살인사건은 계속 발생했고 범행은 대담해졌다.
“딱 보면 티 난다” 필요하면 증거도 조작
서태윤 형사는 박두만 형사와 정반대다. 박두만과 달리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엘리트 형사로 인정받던 그는 “서류는 절대 거짓말 안 하거든요”라며 과학적, 객관적 증거를 중시한다. 그런 서태윤에게 박두만은 “대한민국 형사는 두 발로 수사한다”며 “미국은 땅덩이가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다 돌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연방수사국(FBI)이 머리를 안 굴릴 수가 없지만, 대한민국은 좁기 때문에 두 다리로 다니면 범인이 다 밟힌다. 잔머리를 계속 굴리고 싶으면 미국에 가라”고 조롱한다.
서태윤의 수사는 진척이 별로 없었다. 당시 과학수사의 발전 수준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지문 대조나 부검 정도 외에는 과학수사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1984년경 영국에서 처음 개발된 유전자 감식 기술은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던 때다. 심지어 경찰이 무속인들을 찾아가서 범인이 누군지 물어보았고, “너는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는 글이 쓰인 허수아비를 화성 곳곳에 세워두라“는 무당의 말대로 경찰이 허수아비를 세우기도 했다.
미숙한 과학수사는 진범을 놓쳤을 뿐만 아니라 강압적 수사방식과 맞물려 억울한 사람을 양산했다. 당시 경찰의 강압 수사를 받았던 사람 중 3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갑자기 생긴 암으로 죽은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용의자가 3명이었고 경찰이 이들 모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결국 이춘재가 범인이었으므로 모두 허위자백이었던 셈이다. 그 중 윤모씨는 소아마비인데도 쪼그려뛰기를 시키는 등의 경찰의 강압 수사를 견디지 못하고 8차 사건의 범인이라고 허위자백한 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윤씨에게 누명을 씌우는 데에도 미숙한 과학수사가 역할을 했다. 당시 국과수의 담당관은 방사성동위원소 감정법을 활용해 “현장 음모와 윤씨의 음모는 동일인 음모로 볼 수 있음”이라는 감정 결과를 제출했다. 그러나 통상 방사성동위원소 감정법은 화석이 있는 지층과 같이 수십만년 또는 수만년 동안 특정 원소가 축적된 경우에나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건 발생 후 불과 며칠 지난 이후의 음모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이 자명했고, 당연히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었다. 심지어 국과수 담당관은 윤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음모 수치를 사용했고 그마저도 조작했다는 것이 수사로 밝혀졌다. 2020년 윤씨는 재심 재판을 통해서 사건 발생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윤씨에게 자백을 강요했던 경찰들은 이미 그 공으로 특진했고 경찰을 퇴직한 뒤였다. 윤씨는 진범 이춘재보다도 자신의 무고함을 몰라준 검사, 판사가 더 밉다고 했다.
1990년 11월 15일 9차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 직후 경찰은 용의자(영화에서는 박해일 분)가 범인이라 판단한다. 그 역시 가혹행위 끝에 자신이 범인이라 자백한다. 피해자의 피를 소나무에 닦았다는, 진범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진술까지 한다. 그런데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기 직전 피해자의 옷을 보니 그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정액이 묻어 있었다. 그 정액이 피의자의 것임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일본(영화에서는 미국으로 설정되었다)까지 샘플을 보내 유전자 감식을 했다. 정액의 주인과 용의자의 유전자가 불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결국 용의자를 풀어주게 된다. 이 유전자 감식이 우리나라 수사에서 최초로 실시된 것이었다. 그 유전자 검사가 아니었다면 윤씨와 같이 억울한 사람이 또 생겼을 것이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검사는 김종빈 강력부장으로 훗날 검찰총장이 된다.
과학수사, 인권 보호하며 진범 규명 가능
과거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수사가 박두만 형사의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심지어 고문이 적법한 수사방법으로 인정되었다. 18세기까지 프랑스에서는 피의자를 신문하면서 철제 의자에 앉힌 채 점점 더 화롯불 곁으로 가까이 가게 하거나, 엄지손가락을 나사 모양으로 돌아가는 기계에 넣었다. 조선 시대에도 뜨겁게 달군 쇠로 살을 지지거나(포락炮烙), 한지처럼 엷은 종이에 물을 뿌려 얼굴에 겹겹이 올려놓아 숨을 못 쉬게 하면서(도모지塗貌紙) 고문했다. ‘난장(亂場)’은 두 발을 묶어서 거꾸로 들어올린 다음에 발바닥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고문 방식인데, 이때 발가락이 떨어져나가고 피가 튀어서 ‘난장판’이라는 말의 유래가 되었다.
놀랍게도 이런 고문은 재판을 통해서 혐의가 확인된 이후에 가하는 형벌이 아니라 진실을 발견하는 수사 과정에서 실시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수사 현실에서도 1990년대까지는 폭력이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강압 수사를 하면 진범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억울한 사람이 양산된다. 그렇다고 수사를 느슨하게 하면 억울한 사람은 줄어들지만 진범이 도망갈 여지가 커진다. 이러한 관습적 수사관행을 따르면서 진범을 더 잘 잡고 인권을 더 보호한다는 것은, 마치 밥을 많이 먹으면서 살을 뺀다는 말처럼 모순적이다. 그런데 과학수사는 억울한 사람을 줄이면서도 진범에 다가갈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말하자면 밥을 더 많이 먹으면서 살을 빼는 일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과학수사는 최대치로 발전해야 한다. ‘과학수사’라는 말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수사는 과학적이어야 한다.
새 연재물 ‘정 변호사의 죄와 벌’을 시작합니다. 법관과 법무 관료를 두루 거치는 동안 쌓인 경험과 생각들을 개성있는 문체로 풀어낼 예정입니다. 필자인 정재민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판사로 재직했을 뿐 아니라 외교부, 국방부, 방위사업청, 법무부 등 여러 행정부처에서 근무한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또한 『보헤미안 랩소디』 『독도 인 더 헤이그』 『소설 이사부』 등의 소설과 에세이집을 출간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법무법인 예문정앤파트너스의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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