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김민솔·이효송 등 황금세대에 좋은 환경 만들어주자”
“2024 US여자오픈은 경기력과 대회 진행 양 측면에서 세계 여자골프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한 대회였다. 한국이 아쉽게 세계 최강의 자리를 지키지 못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이정표였다. 대회 진행도 한국 골프가 급성장 과정에서 놓치는 품격이란 점을 일러주는 측면이 있었다.”
올해 US여자오픈을 현장에서 지켜본 오세욱 두산건설 상무는 “한국 골프의 미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큰 영감을 준 대회였다”고 평가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골프 대표팀 코치였던 그는 미국에서 골프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웠다. 두산건설 및 노랑통닭, 큐캐피탈파트너스 골프단 단장을 겸임하고 있고 2024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국내 개막전인 두산건설 We’ve 챔피언십을 여는 실무책임도 지고 있다.
-한국 선수들 성적이 워낙 좋아 ‘US 코리아 여자오픈’이라고 불리던 US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이야기가 많다.
“예전 대회를 보면 한국 선수들이 가장 간절한 모습으로 경기했다. 비장함까지 느껴질 정도로 경기에 몰입했다. 지금은 일본이나 태국 선수들에게서 예전의 한국 선수 모습이 보인다. 한국 선수 실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의 성장세가 더 빠르다고 본다. 이번 대회 상위 10위 이내 선수들이 보여준 경기 수준은 상당히 높았다. 그린 주변 어프로치 실력과 퍼팅 실력은 비슷한 환경에서 경험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한국 여자골프의 전성기 시대를 이끌었던 ‘세리 키즈’는 미국 무대에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갈고 닦은 실력이었다. 당시 44명 안팎의 한국 선수가 US여자오픈에 참가했는데 지금은 20명으로 반으로 줄었다. 그렇다면 국내 무대에서 고난도 코스를 이겨낼 실력을 갖춰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다. 이번 US여자오픈의 러프와 퍼팅 난도를 10점 만점이라고 한다면 일본 메이저 대회는 7 정도는 된다. 한국은 평균 3 정도일 것이다.”
-왜 US여자오픈은 코스를 어렵게 만드나.
“US여자오픈은 골프 실력과 심리 모두 갖춘 진정한 챔피언을 가린다는 코스 세팅의 뚜렷한 목표가 있다. 기술 측면에서는 골프 백에 든 14개의 클럽을 골고루 잘 활용하는 능력을 보고, 핀 위치에 따라 다양한 샷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도 본다. 선수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코스를 통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녔는지도 본다. 한국도 이에 따라 어릴 때부터 어려운 코스에서도 충분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험을 하도록 해줘야 한다. 우리는 아마추어 국가대표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나머지 선수들이 해외 무대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주니어 시절부터 성인 무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코스를 경험할 기회의 폭을 넓혀줘야 한다. US여자오픈은 올해 총상금 1200만달러, 우승상금 240만 달러였는데 앞으로 남자 US 오픈 수준까지 올릴 수도 있다는 게 현지 분위기였다. 역사와 권위 모두 최고였던 US여자오픈의 위상은 더 올라가고 세계 여자골프의 스탠더드를 제시하는 장악력도 더 높아질 것이다. "
-한국 여자골프의 전망은 어둡다는 이야기인가.
“다행히 한국에는 황금세대라고 부를 만한 뛰어난 선수들이 3~4년 주기로 끊임없이 나온다. 지금 아마추어 국가대표팀만 봐도 아마추어 세계 최강 수준인 김민솔, 이효송, 오수민, 이시현, 양효진, 박서진 등이 있다. 박세리를 보고 자란 ‘세리 키즈’ 박인비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것처럼, 박인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이들이 LPGA투어에 뛰어들 시기가 되면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KLPGA투어에서 잘하는 이혜원과 황유민, 방신실, 윤이나 등도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들이다. 지금의 위기를 잘 살려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기력 면에서 한국 여자골프 정말 망했다는 느낌이 들면 팬도 후원자도 떠날 확률이 높다. 몇 년째 경기력이 내림세다. 지금이 여자골프를 살릴 마지막 골든타임일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US여자오픈같은 고품격 대회 조건은?
“매년 KLPGA 1부 투어 대회인 두산건설 We’ve 챔피언십과 2부 투어 대회인 ‘노랑통닭 큐캐피탈파트너스 드림챌린지’ 실무책임을 지는 입장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고품격 대회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미국과는 여건이 크게 다른 점은 있다. US오픈은 선수와 갤러리, 자원봉사자의 힘이 한데 어우러진 예술작품이다. 이번 대회 자원봉사자가 1600명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오는데 교통비는 자비 부담이다. 교대로 일주일에 4일씩 일하는 시스템이더라. 경험 많은 노인들이 많았다. 지역 주민은 거의 다 참가해서 동네 사람의 힘으로 잔치를 벌이는 것 같았다. 국내에선 미국처럼 자원봉사자를 구하기 어렵다. 대회 진행 인력이 100여명 정도이다 보니 진행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생긴다. 가장 큰 차이라면 미국도 대회 후원사가 있지만, 대회의 대부분 권한을 LPGA가 갖고 있다. 스폰서의 영향력이 큰 국내에선 스폰서가 뭘 부탁하면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된다는 게 협회로서도 고민일 것이다.”
-국내 대회 업그레이드 방법은.
“USGA가 주관하는 대회에는 스폰서 기업의 상표보다 USGA 깃발이 더 많이 휘날린다. 그래도 적절한 수준으로 스폰서인 알라이뱅크의 로고 등이 티박스 등에 노출됐다. 알라이의 호스피탤리티 텐트도 있었다. US오픈은 갤러리 스탠드를 많이 만든다. 파3는 기본으로 다 만든다. 갤러리가 어디서든 경기를 시원하게 볼 수 있도록 티잉 구역도 정리해놓았다. 선수와 갤러리의 동선이 거의 겹치지 않도록 로프로 통제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한국의 골프 수준과 경제력 등을 생각하면 한국 골프도 US오픈 수준의 대회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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