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면 아이 낳는다는 건 ‘착각’… 저출생 대책은 왜 매번 실패했나
엄마 아닌 여자들
페기 오도널 헤핑턴 지음 | 이나경 옮김 | 북다 | 336쪽 | 1만8800원
재생산 유토피아
클레어 혼 지음 | 안은미 옮김 | 생각이음 | 280쪽 | 1만8600원
지난해 연간 합계출산율 0.72명, 통계청이 전망한 올해 합계출산율 시나리오는 0.68명.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다. 대한민국은 해마다 합계출산율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곳 중 합계출산율이 0명 대인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OECD 평균 합계출산율(1.58명·2021년 기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저출생’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만큼 상황이 심각하진 않지만, 서구 상황과 학계의 논의를 엿볼 수 있는 미국 학자들의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인 페기 오도널 헤핑턴의 ‘엄마 아닌 여자들’과 법학자 클레어 혼의 ‘재생산 유토피아’.
◇'돈 줄 테니 난자를 얼려라?’
‘엄마 아닌 여자들’의 저자는 “역사적으로 자녀를 갖지 않는 여성은 늘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저출생’ 경향은 낯설고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는 게 그의 주장.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며 다양한 이유를 제시한다.
경제적 안정은 ‘아이 낳을 결심’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해 전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때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980~1996년 출생)는 대략 12~27세였다. 2020년 봄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국이 대공황 이후 최악의 실업 사태를 맞이했을 때 이들은 약 24~39세였다.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단지 그뿐일까? 헤핑턴은 “먹을 것과 돈, 안정이 없으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을 결핍 상태에 있는 파블로프의 개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돈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고 종용하는 세계 각국의 저출생 정책을 따끔하게 꼬집는다.
한국 상황을 떠올려보자. 각 지자체가 앞다퉈 난임 시술비를 지원해준다.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난자 냉동 비용을 지원한다. 최근 정부 차원에서 난자 냉동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해야 할까? ‘돈 줄 테니 난자를 얼려라’는 말이다.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일까.
헤핑턴 교수는 말한다. 여성에게 일·가정 양립은 언제나 난제였고, 핵가족화로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친족 공동체가 무너진 것도 저출생의 한 요인이라고 말이다. ‘아름답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슬픈’ 지구에서 2세 만들기를 거부하는 여성도 있다 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전통적인 가족상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자녀를 낳지 않기로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고통스러운 난임 시술을 거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그 모든 과정을 거친 이후에도 아이 갖기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는 복잡다단하다.
◇코앞에 온 ‘인공자궁’ 기술
혹자는 묻는다. 최근 적극 연구되고 있는 ‘인공자궁(artificial womb)’이 저출생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재생산 유토피아’는 인공자궁을 둘러싼 사회·정치·윤리·법적 질문을 검토한다. “마침내 인공자궁을 만들어낼 과학적 역량을 목전에 둔 지금, 문제는 더 이상 혁신이 가능한지가 아니라 우리는 준비가 되었는지다.”
저자는 “인공자궁은 임신 중 심각한 합병증을 치료하거나 임신의 대안으로, 또 신생아의 생명 유지 목적으로 환영받을 수 있겠다”면서도 우려를 표한다. 임신 중지(낙태)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 국가가 인공자궁에 태아를 옮기길 강요한다면? 인공자궁이라는 재생산 기술은 운 좋은 소수만 이용하게 되지 않을까? 우생학이 개입할 여지는 없을까? 인공자궁이 불평등한 사회에 도입될 때 어떤 결과를 낳을지 우려하는, 한발 앞선 고민을 담았다. ‘상당한 사회 변화가 없다면 인공자궁은 기존 한계와 편견으로 일그러진 세상에 단순 편입될 뿐이다.’ 서늘한 경고다.
지난달 한국 정부는 ‘저출생대응기획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위원회 체제(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은 수년간 저출생 대책에 수백조 원을 투입했지만, 출생률은 좀처럼 반등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지금까지의 접근이 잘못됐다는 방증일 수 있다. 사람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가 복합적인 만큼 보다 섬세하고 영리한 정책적 접근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여성들에게 ‘몸이 공공재냐’는 반발을 일으키는 백화점식 대책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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