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 그리움이 세계를 향해 확장되기까지
신카이 마코토를 말하다
후지타 나오야 지음|선정우 옮김|요다|272쪽|1만8000원
지난해 3월 국내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 관람객은 557만명. 역대 한국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중 관객 수 1위다. 지난 2017년 개봉한 ‘너의 이름은.’도 391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둘 다 신카이 마코토(51) 감독의 작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잇는 국제적 감독.’ 신카이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일본 SF·문예 평론가인 저자는 신카이의 작품, 관련 서적, 인터뷰 등을 총괄하며 ‘별의 목소리’(2002) 등 초기작부터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8편의 작품을 다루면서 신카이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리움’의 진화
누군가를 만나고픈 마음, 가질 수 없다는 초조함, 상실감 등이 신카이 작품의 주된 정조다. 저자는 ‘그리움’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이 감정이 디지털 시대의 산물임에 주목한다. 중학생 소년·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별의 목소리’에서 ‘그리움’은 상대의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이다. 여주인공 미카코는 말한다. “세계라는 단어가 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 세계란 휴대전화 전파가 닿는 장소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신카이는 게임업체 영상 담당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거의 혼자 힘으로 만든 ‘별의 목소리’를 독립 영화관에서 개봉했는데 3500명이 몰려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홍보를 한 것이 먹혀들었던 것이다.
저자는 신카이의 ‘그리움’이 초기엔 주인공의 연애 감정에 한정되다, 전통과 과거에 대한 향수로 발전하고, 현실세계의 거대한 재앙 때문에 인류가 잃은 것들로 확장되어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지진이 덮친 세상을 소녀가 구한다는 ‘스즈메의 문단속’은 대의적 그리움의 완결판이다.
◇하루키 영향 받은 나약한 男主
미디어를 통한 통신과 고독이라는 모티프는 신카이가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공언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과 연관된다.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결말에서 주인공 와타나베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통화를 한다. 넓은 우주에서 좌표축을 잃은 듯 ‘어느 곳도 아닌 장소’에서 상대방을 계속해서 부른다.
하루키와 신카이 작품의 또 한 가지 공통점은 주인공의 ‘나약함’. “신카이 마코토의, 특히 초기 작품 주인공들도 남자답지 못하다. 그들은 솔선해 싸움에 나서거나 누군가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 소년만화 등의 소위 ‘열혈’ 계열 주인공과 비교하면 그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레이먼드 카버 등 서구 문학에 심취했던 하루키가 나이가 들면서 점차 ‘겐지모노가타리’를 비롯한 일본 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신카이 역시 고전으로 눈을 돌린다. ‘너의 이름은.’은 여주인공 마츠하가 신사의 무녀라는 설정부터 일본 전통의 영향이 명백한 작품. 남녀 주인공의 몸이 바뀐다는 설정은 헤이안 시대 소설 ‘도리카에바야모노가타리(とりかへばや物語)’에서 모티프를 따 왔다. 작품 제목은 고대 일본의 시가집인 ‘만엽집(萬葉集)’에 나오는 ‘그대는 누구인가(誰そ彼)’라는 구절과 연관된다.
◇재난 전후 세계를 연결하려는 시도
‘너의 이름은.’은 화제가 된 만큼 비판도 많았던 작품. 저자는 “작품에 도취됐지만 ‘새로운 유형의 일본 낭만파’가 아닌가 경계했다”고 밝힌다. ‘일본 낭만파’란 일본을 미화하는 광신적 시(詩) 운동을 가리킨다. 혜성 충돌로 죽을 운명이었던 사람들 500명이 살아난다는 결말이 현실을 미화하며 “마치 재해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린 영화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 “제국주의 시대에 황국사관에 맞게 고쳐 만들었던 국가신토(国家神道)를 홍보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올 소지가 없진 않다”고도 말한다.
저자는 신카이의 최근작 ‘스즈메의 문단속’이 전작의 논란을 뛰어넘어 동일본대지진의 실체를 인정하고, 재난 전후의 세계를 ‘연결’하려는 작품이라고 해석한다. 스즈메가 동일본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네 살 때의 자신을 만나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라고 격려하는 마지막 장면이 두 개의 갈라진 상처를 연결할 뿐 아니라 양쪽을 붙여 재생시키는 ‘반창고’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작가론(論)이지만 어렵지 않다. 신카이 마코토 작품을 좋아한다면, 모든 작품을 다 보지 않았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신카이 마코토는 외래의 미디어였던 애니메이션, 새로운 기술인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오타쿠 시대의 감성과 그 옛날 일본의 전통적인 감각을 습합하고자 한 작가라는 것이 이 책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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