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복숭아
[박준의 마음 쓰기] (5)
일을 마치고 역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제 건너편 테이블에는 먼저 자리를 잡은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오랜 친구 사이인 듯했습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그분들은 저마다 손을 뻗어 반갑게 그릇을 받아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그 중 한 사람이 환하게 웃으며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며 그냥 김치만 달라고 말했습니다. 쟁반에서 반찬 그릇을 내려놓으려던 식당 주인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다시 일행 중 다른 사람이 우리는 김치면 충분하다고 다시 한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니 몇 해 전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집필을 핑계로 한적한 동네에 있는 민박집을 잡아 며칠 머물 요량이었습니다. 처음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 주인 어르신은 “점심 못 먹고 왔지? 여기가 외진 곳이라 주변에 마땅한 식당도 없어. 그러니 밥부터 먹어” 하며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사양할 새도 없이 상에 오르던 따뜻한 밥 한 공기와 묵은 김장 배추김치, 알타리김치, 오이김치 그리고 옅은 풋내를 풍기는 열무김치까지. 찬이 많다고 그만 내오시라고 만류하던 저에게 주인 어르신이 다시 말했습니다. “김치가 무슨 반찬인가? 김치는 김치지. 여기에 반찬이 어디 있대?”
김치는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 같은 것. 그리하여 아리기도 하고 싱겁기도 하고 맵기도 한 것이지요. 식당에서 나와 역으로 가는 길. 기차 시간이 제법 남아 큰길을 가로질러 가지 않고 시장길로 에둘러 가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이런저런 구경도 할 겸 말입니다. 시장 복판에서 걸음을 멈추게 한 것은 복숭아였습니다. 유월 초순, 이르게 나온 것도 신기했지만 그 복숭아의 크기와 모양이 어린아이가 쥔 주먹처럼 작고 앙증맞았기 때문입니다. 복숭아를 보니 자연스레 제가 좋아하는 하나의 일화가 더 생각났습니다.
시인 구상과 화가 이중섭의 이야기입니다. 젊은 날의 구상 시인이 폐병으로 대구의 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막역한 친구인 이중섭 작가는 도화지에다가 큰 복숭아 그림을 그려 와 불쑥 내밀었다고 합니다. 복숭아 그림 안에서는 한 아이가 청개구리와 놀고 있었고요. 이 그림이 무엇이냐고 구상 시인이 묻자 이중섭 화백은 특유의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병환의 쾌차에는 복숭아가 좋다고 해서 복숭아를 가져왔다며 웃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때까지 구상 시인은 이중섭 화백에게 조금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절친한 친구의 문병을 기다렸지만 다른 사람들이 오가는 동안 좀처럼 오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중섭 화백에게도 사연은 있었습니다. 병문안을 가야 하는데 주머니가 가벼워 빈손으로 가야 하는 상황. 고민 끝에 이중섭은 복숭아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입니다. 이후 구상 시인은 건강을 찾았고 2004년 타계할 때까지 친구 이중섭에게 받은 복숭아 그림을 그 무엇보다 아끼며 살았습니다. 무를 일도 썩을 일도 없던 그 복숭아.
비록 현실은 집 한편에 아름다운 그림 한 폭 걸어두지 못하고 그림을 선물해줄 화가 친구도 없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결코 상하거나 무르지 않는 음식이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기억이 깃든 음식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상하는 법이 없지요. 시작된 여름날, 정한 이들과 함께 변함없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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