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오프라인의 위기를 말하며 온라인으로 달려갈 때, 오히려 오프라인의 가능성에 집중한 사람이 있다. 최근 책 『결국, 오프라인』(사진)을 출간한 ‘프로젝트 렌트’(이하 렌트)의 최원석 대표다. 그는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정서적 충만감에, 온라인에서는 죽었다 깨어도 발견할 수 없는 오감 충족형 경험이 더해진다면 오프라인이 강력한 마케팅 채널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평양 슈퍼마켓’ ‘성수당’ 모두 그의 작품
최 대표가 소비자와 브랜드가 ‘직접’ 만나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으로 선택한 것은 팝업 매장(단기간 운영되는 임시 매장·이하 팝업)이다. 2018년 서울 성수동 서울숲길 작은 골목에 6평짜리 작은 공간을 임대해 ‘렌트’라는 팝업 전문 플랫폼을 시작했고, 이후 렌트는 성수동 일대와 역삼동을 중심으로 6호점까지 늘었다. 이 기간 최 대표가 기획, 운영한 팝업은 ‘어메이징 오트 카페’ ‘스튜디오 아이’ ‘가나 초콜릿 하우스’ 등 300여 개나 된다. 기업 마케터, 라이프 스타일 전문가들이 최 대표를 ‘팝업 성지 성수동을 견인한 선구자’ ‘공간 경험 전문가’라고 부르는 이유다.
홍익대에서 산업디자인을, 동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을 전공한 최 대표는 졸업 후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 현대카드 디자인팀에서 일했다. 독립 후 필라멘트앤코를 창업하고 카페뎀셀브즈·모던눌랑 등 수많은 F&B 브랜드와 제품을 컨설팅했다. “업종도, 소비자도, 목적도 다른 브랜드들을 접하면서 세 가지가 눈에 들어왔죠. 시장에 대한 공급자(브랜드 마케터)의 뿌리 깊은 착각, 첫 발을 떼고자 하는 브랜드에게 여전히 높은 시장의 문턱, 기존 마케팅 채널의 노후화였죠. 이때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가능성이 눈에 들어왔어요. ‘스몰 브랜드, 빅 스토리(Small Brand, Big Story)’를 슬로건 삼아 세상에는 덜 알려졌지만 색깔이 분명한 브랜드와 소비자가 직접 만날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 시작이 왜 성수동이었을까. 지금의 성수동은 MZ세대 최고의 놀이터이자 외국인도 꼭 찾는 관광 명소로 유명하지만, 렌트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작은 중소업체들의 생산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낡고 오래된 동네였다. “임대료가 저렴했어요. 렌트 1호점 6평짜리 공간 월세가 60만원이었는데 이 정도면 사업이 안 되더라도 밤에 대리운전을 해서 버틸 수 있겠다 싶었죠.(웃음)”
저렴한 땅값과 임대료 덕분에 독창적인 아티스트와 플레이어들의 식당·카페가 들어섰고 소비력 높고 접근성 용이한 강남 젊은이들로 주말 상권이 커졌다. 큰 기업들이 앞다투어 건물을 지으면서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직원들의 상주로 주중 상권 또한 안정됐다. 여기에 최 대표가 흥미로운 팝업을 연이어 열면서 MZ세대 사이에선 ‘언제 가도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동네’라는 믿음이 생겼다.
MZ세대 ‘언제 가도 재밌는 동네’ 인식
“제가 추구하는 팝업은 신제품을 공짜로 나눠주는 판촉 행사나 예쁜 인테리어로 꾸민 공간과는 달라요.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콘텐트가 있어야죠. 모든 브랜드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지속가능한 ‘찐’ 팬덤인데, 멋진 마인드와 그걸 깊이 있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죠. ‘파타고니아’가 광고에서 “우리 브랜드 좀 그만 사라” 외치면 왜 이런 광고가 나왔는지 스토리를 아는 사람들은 ‘파타고니아스럽다’며 더욱 열광하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그들스럽다’ ‘그들답다’는 무한 신뢰를 얻는 일이고, 그러려면 스토리가 있는 콘텐트가 제일 중요하죠.”
최 대표와 렌트는 스스로를 점검하고 역량을 확인시키기 위해 자체 기획 팝업을 열기도 한다. ‘평양 슈퍼마켓’ ‘성수당’ ‘토종벼’ 팝업 등이다. 모두 기존에 없던 형태와 내용으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2020년 진행한 ‘성수당’이에요. 영화 ‘만신’으로 유명한 인간문화재 고 김금화 선생의 마지막 신딸 김가근(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이수자) 선생과 함께한 점집 프로젝트인데, 코로나 19로 모두 불안한 때라 위로를 건네고 싶었죠. 무속 신앙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조선시대에 무당은 동서활인서(국립의료기관)에 소속된 공무원이었어요.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지켜주는 영적인 의사였던 거죠.”
팝업 한편에선 ‘렌트스러운’ 부적과 굿즈도 판매했다. 만사형통을 위한 ‘적갑부’, 소원성취를 위한 ‘구령부’ 등 전문 용어의 부적도 있었지만 ‘눈이 밝아지는 부적’ ‘정신이 맑아지는 부적’ ‘변비 해결에 도움을 주는 대변불통부’ 등의 부적도 있어 성수당을 찾은 이들을 웃음짓게 했다.
최 대표는 “이제 브랜드가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마케팅 전략은 안 먹힌다”고 했다. ‘관광지가 되는 장소로 기획하라’ ‘리테일은 더 이상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다’ ‘한시적 콘텐트를 채워라’ ‘공간이 건네는 인간적인 이야기가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오프라인은 미디어다’ 등 마음을 사로잡은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기 위한 10가지 법칙을 정리한 책 『결국, 오프라인』을 낸 이유도 브랜드와 소비자 모두가 팝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오프라인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선상에서 팝업의 본질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이해가 생겨야 앞으로도 좋은 공간 경험이 계속 만들어질 테고, 그만큼 세상은 더 재밌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