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AI 경쟁력 높여 고령화 극복해야
■
「 저출산에다 초고령사회 초읽기
생산인력 감소 AI로 해결 가능
세계는 지금 ‘AI 국가주의’ 물결
반도체 경쟁력부터 확보해야
」
우리나라가 맞닥뜨린 급격한 인구 위기 경고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지구촌 최저 수준의 합계 출산율은 0.72명으로 지속 하락하면서 현 정부도 조직 개편까지 서두르며 특단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으나,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잠재성장률 악화와 국가 경쟁력 하락은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렵다. 내년도 합계 출산율 예상치는 0.65명 수준으로 더 떨어지고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총인구의 20%를 넘어 초고령사회 진입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금세기 후반에는 한국이 일본을 넘어 전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될 전망이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국제 콘퍼런스 중 석학들의 대담 화두는 ‘AI 시대 고령화 극복 전략’으로 쏠렸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공저자 대런 애쓰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는 고령화 사회에서 발생하는 생산인력 감소는 로봇을 포함한 AI 개발에 따른 생산력 제고로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AI 기술의 도입과 발전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친화적이고 보완적인 방향으로 나간다는 전제 하에 그렇단 얘기다. 아울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으로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박사도 AI는 고령화로 파생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기준) 감소의 경제적 피해를 줄일 뿐 아니라 저출생에 따른 경제 사회적 충격도 대폭 상쇄할 것라는 다소 파격적인 의견을 냈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령 인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10여 년 전 필자의 국민연금공단 재직 시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고령화 시대의 국가전략’을 주제로 열렸던 연금 개혁과 고령화 대응정책 세션에 같은 패널로 참여했던 두 인물의 기억을 되살려 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EU 대통령급 인사인데 7남매를 둔 워킹맘으로 육아 휴가제도 개혁 등 독일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이끈 당시 노동사회부 장관이었다. 그는 “청년은 빨리 달리지만, 노인은 지름길을 안다”라는 격언을 소개하면서 고령화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장년층 이상 인구의 생산적 활동 여부에 달렸다며 실버세대의 고용 확대를 강조했다. 동양에도 유사하게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또는 ‘노마지도(老馬知道)’로 알려진 한비자에 나오는 춘추시대 고사다. 군사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늙은 말을 앞세워 지름길을 찾았다는 고사로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를 활용하라는 뜻이다.
일본 게이오대 총장이었던 세이케 아쓰이 박사는 세계적 노동경제학자이자 일본의 고령화와 양극화 문제 극복에 앞장서 과거 65세로의 정년 연장 정책을 이끌었던 인물로, 2001년 펴낸 『정년 파괴』라는 책으로도 유명하다. 고령화 사회의 성장 촉진을 위해서는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의 토론 중 가장 관심을 끈 대목은 “노년층의 생산 활동 확대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상충적이 아니라 보완적”이라는 점이다. 생산인구 위축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국가 경제의 활력을 높여 오히려 일자리 늘리기를 지원한다는 얘기다. 잘 설계된 정년 연장은 연금 재정 안정에도 일조해 연금개혁의 실효성을 높일 수도 있다.
AI 혁명의 노동생산성 제고 기능을 극대화하려면 국내 AI 산업경쟁력부터 확보해야 한다. AI 기술의 독점화나 악용을 막기 위한 효율적인 규제와 제도적 장치를 갖추면서 무엇보다 반도체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AI 혁신의 긍정적 효과도 가능하다. 글로벌 ‘AI 국가주의’ 물결 속에 우리나라의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집결해야 할 시기다. 당면한 초고령화 시대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