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를 옮겨온 해산물 식당, 술 부르는 제철 병어회·대삼치
맛난 음식, 맛난 우리술
지금은 로컬 식재료가 각광받고 그 소중함을 많은 이들이 알아주지만 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낯선 지역의 상호명과 식재료를 갖고, 그것도 당시에는 꽤 외진 중곡동에서 식당을 시작한다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조 대표와 가족들은 고향인 완도와 여수 등지에서 품질 좋고 다양한 수산물을 공수해 솜씨 좋게 다루면서 10년 간 호황기를 가졌다. 서울 성수동과 면목동, 경기 성남 등에 고모·외삼촌 등이 분점을 내는 등 대한민국 경제 회복기에 가족이 함께 좋은 시절을 누렸다.
1997년 개업, 남도 해산물 마니아들 단골
2020년에는 조종표 대표의 아들인 인협씨가 식당 주방에 합류했다. 그동안 자동차 정비 등 다른 일에 관심이 더 많았지만, 알고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가게가 바쁘면 카운터 일도 보는 등 틈틈이 식당 일을 도왔던 그가 결국 가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인협씨의 합류 이후 기존 택배에만 의존하던 재료 수급 일부를 고속버스 직송으로 대체해서 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등 소랑도는 본격적으로 남도 해산물 마니아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인협씨가 주방 일을 시작한 건 2020년부터이니 맛집 주방장 경력 치고는 짧다. 하지만 사진에서 병어를 썰어 놓은 칼질 수준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 소랑도의 음식 퀄리티는 매우 뛰어나다. 지난 4년 간 인협씨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이런 역사를 가진 소랑도의 안주들과 잘 어울릴만한 술이 뭐가 있을까? 아쉽지만 소랑도에선 일반 주류만 취급한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소랑도에서 겨우 180m 떨어진 거리에서 전통주 80여종을 파는 ‘우정바틀샵’을 발견했다. 전통주 구입은 물론이고 간단한 안주와 함께 매장에서 마실 수도 있는 곳이다. 병당 1만원 정도의 콜키지 비용을 내면 이곳에서 구입한 전통주를 소랑도에서 즐길 수 있다고 약속도 받아 두었다.
우정바틀샵은 일단 간판이 재밌다. 간판 명이 ‘우정이발관’이다. 알고 보니 40년 넘게 이 자리에 실제 이발소가 있었고, 창업 당시 자금이 부족해 간판 교체를 미뤘던 게 손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지금은 우정바틀샵의 상징이 됐다.
이곳의 이예람 대표는 시각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퇴사한 후 2023년 1월에 현재 매장을 인수했다. 하던 일이 디자인 업무였고, 우정이발관 내외부도 오래됐지만 워낙 관리가 잘돼 있어 감각적으로 최소한의 손만 거치니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복고풍 매장이 완성됐다. 일부러 꾸미려면 참 어려운 인테리어랄까.
그다지 활성화된 상권이 아니어서 이 대표는 매장 오픈 후 단골들을 모으기 위해 냉장고를 털어 마시자는 뜻의 ‘냉털회’라는 월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현재는 인근 프랑스 디저트, 멕시칸 타코, 일본 타코야끼 업장 등과 협업 행사를 진행하면서 세계의 음식과 우리술을 매칭하는 데도 열심이다. 규모는 작지만 얼마 전에는 매장 안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즐기는 재즈 공연도 진행했다(우정바틀샵의 행사 정보는 인스타그램을 참고하면 된다).
이발관 자리, 간판 교체 미루다 상징으로
이 대표에게 이웃사촌인 소랑도의 안주들과 어떤 술이 어울릴지 탁주, 약주, 소주 각 1종씩 추천을 부탁했더니 다음과 같은 제안이 왔다. 탁주 ‘콸콸12(12도, 강원 강릉 진정브루잉)’는 청량한 탄산감과 산뜻한 과실향, 은은한 단맛과 산미가 조화로운 술로 무엇보다 달지 않고 바디감이 가벼워서 기름진 음식들과 페어링하기 적합하다. 약주 ‘초록섬(15도, 서울 종로 양조장 히읗)’은 산미가 부담스러운 이에게도 기분 좋은 술로 입에 여운이 남는 감칠맛과 입맛을 돋우고 입안을 깔끔하게 해주는 산미 덕분에 해산물과의 페어링에 특히 좋다. 증류식 소주 ‘가무치25(25도, 충북 충주 다농바이오)’는 도수에 비해 알코올감이 적고 목 넘김이 부드러운 편이라 부담 없이 마시기 좋은 술로 첫 잔에선 구수함이 느껴지고 한두 잔 더 맛본 후에는 후미에서 은은한 바닐라향이 느껴지는 게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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