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강사 믿었는데 80% 손실" 부동산 리딩방 주의보

배현정 2024. 6. 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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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공동투자 피해 봇물
#. “저는 완벽하게 실패하였습니다.” 유도선수 출신 흙수저 청년이 30대에 건물주가 됐다는 성공 스토리로 부동산 투자업계 스타로 떠올랐던 경매 강사 A씨. 그가 3월 말 블로그에 남긴 ‘80%의 투자 손실’ 고백 글에 수많은 투자자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부동산아카데미를 통해 수강생에게 함께 투자할 기회를 준다며 공동 투자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진행한 공동투자 프로젝트는 10개 이상으로 투자금액만 11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투자에 참여한 한 수강생은 “수강생 간 경쟁 심리를 자극해 투자금을 끌어들이더니 주식으로 치면 상장폐지 수준의 말도 안 되는 손실을 내용 증빙도 없이 그냥 떠넘겨버렸다”며 “그러면서 정작 A씨는 얼마를 투자했는지 계좌내역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 B씨는 2년 전 경매 공부를 위해 다니던 학원에서 솔깃한 투자 제안을 받았다. 공동투자에 참여하면 1년 뒤 25%의 수익을 더해 돌려주겠다는 것. 이미 낙찰받은 유망 투자 물건에 이른바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해당 경매학원이 수강생들로부터 모은 투자금은 10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투자 원금에 수익을 더해 환급해주기로 한 시기가 지나자 학원 대표는 환급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최근 아예 문을 닫고 잠적해버렸다. 수강생들은 수익금은 물론 투자 원금까지 떼일 위기에 몰렸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부동산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부동산 공동투자 피해가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일부 부동산학원의 유명 강사를 중심으로 수강생과 공동투자를 진행했다가 손실을 보자 잠적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손실을 보자 어쩔 수 없이 잠적한 경우도 있지만, 부동산 공동투자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다는 틈을 이용해 처음부터 수강생·회원들의 투자금을 노린 사기 행각도 드러나고 있다.

현재 확인된 공동투자 피해는 대개 부동산 경·공매학원 관련 폐쇄카페에서 불거지고 있다. 경매는 부동산의 권리분석부터 입찰, 명도 등 부동산 투자 초보자들이 수업만 듣고 바로 실전 투자에 나서기는 어려운 분야다. 그러다 보니 유명 강사를 필두로 한 ‘공동투자’가 만연해 있다. 유명 강사나 카페 운영자, 학원과 초보 부동산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경매로 큰 돈을 번 유명 강사가 주도하는 투자다보니 내용을 잘 몰라도 수강생이나 카페 회원은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투자에 나선다. 유튜브 ‘현명한부동산투자TV’ 운영자인 C씨는 “대개 학원이 카페 등에서 공동투자자를 모집하면 보통 5분 안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며 “유튜브 등을 통해 팬층을 보유한 유명 강사가 주도하는 투자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예컨대 경매학원의 온라인 카페 등에 ‘경기도 ○○○ 공장 투자, 선착순 ○○명’ 이런 식의 공지가 올라오면, 해당 학원 수강생들이 투자에 나서는 형태다. C씨는 “다른 곳에서 투자 권유를 받았다면 수익이 날까 고민했을 물건도 학원에서 권유하기 때문에 보지도 않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원이나 카페, 강사 입장에서는 혹여 투자 손실이 나더라도 크게 손해를 보지 않는다. A업체의 경우 유료 멤버십으로 300만~400만원 수강료를 내야 공동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경매학원도 고가의 유료 수업을 들어야만 공동투자에 참여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공동투자가 진행되면 관련 수수료를 미리 떼거나 운영 비용 등 각종 명목으로 수익금의 일부를 가져가는 식으로 이익을 낸다. 그러다 보니 학원이나 유명 강사들이 앞다퉈 공동투자 사례를 늘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는 “수강생들의 돈으로 하는 투자는 일종의 ‘게임머니’와 같다”며 “강사 입장에선 성과가 잘 나면 홍보하고, 수익이 안 나도 수수료 등을 먼저 가져가기 때문에 주저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투자를 했다가 투자 원금을 날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받을 길도 마땅치 않다. 부동산 공동투자 등에 대한 제도적 안전장치나 이를 모니터링할 기관, 법적 규제 사항 등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조경호 한길회계법인 공인회계사는 “D경매업체의 경우 자본금 대비 부채비율이 100배가 넘어 금융사기가 의심된다고 금융당국에 신고했지만, 불법 유사수신행위 업체에 대해선 사법당국이 수사한 후 처벌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을 뿐”이라고 전했다.

공동투자는 잘만 활용하면 소액으로도 큰 돈이 드는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강사와 경매 학원은 하자 있는 물건을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속여 투자자들을 기망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개발 가능성이 극히 낮은 토지, 유치권 성립 여부를 속인 물건들도 나온다. 조 회계사는 “공동투자라고 하지만 사실상 기형적인 이른바 부동산 리딩방에 대해 감독기관이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투자의 투자 손실 사례는 앞으로 더 나올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피해를 줄이려면 투자 결정 단계에서부터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근 경매 공동투자의 경우 대부분 특수목적법인(SPC)을 이용하는데, 이 경우 투자자 간 정보나 의견을 나누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익명조합을 통한 투자는 운영자가 상당한 재량과 전권을 가지기 쉽기 때문에 삼가는 게 좋다. 공동투자를 하더라도 가능한 소수로, 투자금액에 맞는 지분을 나눠 갖는 형태의 참여가 권유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익명조합의 공동투자 주체들은 투자 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므로 반드시 투자대상의 수익성을 직접 확인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동투자에 나선다면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계약서에 독소조항이 담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 인플루언서인 ‘전파소년’ 구범서씨는 “한 공동투자 조합의 계약서에는 채권자는 1년에 딱 하루, 12월 31일 영업시간에만 조합의 회계장부와 재산상태를 검사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며 “그날이 오기도 전에 법인이 버티지 못하고 파산해 경매로 넘어가도 투자자들은 상황을 파악해 대응하기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손실이 나도 외부에 오픈 시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거나, 투자 종료 기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계약서도 많다. 양준모 법무법인 AL 대표변호사는 “투자계약서만으로 불법 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투자 모집 과정에서 수익 보장을 했다든가, 경매업체가 신고 없이 투자금을 모았다면 자본시장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피해 발생 시 다각적으로 법률 검토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bae.hyu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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