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옷 입고 면접 가래요” 미래 불안감에 점 보는 청춘들
점술에 빠진 MZ세대
취준생 김우석(26)씨는 채용 면접을 앞둔 하루 전날 점집을 찾았다. 김씨는 “정말 어렵게 서류 통과를 거쳐 면접까지 왔다”며 “너무 합격이 간절해 점집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취업은 했어도 이직이 늘 고민인 정지은(28)씨도 최근 용하다는 신점집을 찾아갔다가 혼만 났다. “당신 조상이 이 일을 꼭 해야 된대. 이젠 딴생각하지도 말고 일에 집중 좀 해봐.” 정씨는 “불안한 미래에 고민만 하기보다는 뭔가 해결책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분기마다 점을 보고 있다”고 했다.
사주·운세·타로 등 점술에 빠져드는 1030세대가 크게 늘고 있다. 모바일앱 분석 업체인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사용량 상위 5개 운세앱의 1030세대 사용자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2021년 104만9000명에서 올해 4월엔 119만1000명으로 3년 새 14%나 늘었다. 운세앱 포스텔러의 경우 MZ세대가 가입자의 83%를 차지할 정도다. 이들은 운세앱뿐 아니라 유튜브 운세 해설 영상도 즐겨 찾고 있다. 유튜브 데이터 분석 서비스 플랫폼인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현재 운세와 관련한 유튜브 채널만 1900개에 달한다.
10대는 교우 관계, 20대는 취업 등 관심
특히 10~20대인 Z세대를 중심으로 운세와 점술을 접하는 빈도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 중 하나다. 포스텔러 관계자는 “최근 가입자 중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비중이 2019년 18%에서 36%로 2배나 급증했다”고 전했다.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 점집에도 MZ세대의 왕래가 잦아지고 있다. 10년간 타로 상담가로 활동 중인 김보운(40)씨는 “직접 방문에 상담 전화까지 포함하면 고등학생부터 20대 초반의 상담자가 최근 3배가량 늘었다”며 “10대는 교우 관계 어려움이나 연애, 20대는 취업과 이직 고민이 주된 상담 분야”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1020세대의 경우 마주한 사회 현실이나 주변 여건이 워낙 불확실하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불안한 마음이 큰 상황”이라며 “이들이 점술에 관심을 갖는 건 그만큼 젊은 세대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진단했다. 1030세대가 점술에 관심을 갖는 게 사회·경제적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취업난이 대표적이다. 통계청이 지난달 22일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현황에서도 전 연령대 중 유독 20대 이하만 전 분기 대비 일자리 수가 줄었다. 5분기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연령별 인구수 대비 일자리 비중도 20대 이하만 감소했다.
임명호 단국대 교수도 “‘중꺾마’ ‘갓생’ ‘미라클 모닝’ 등에 관심이 많은 MZ세대 특성상 단지 운세나 점술 결과에 휘둘리기보다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점에서 이들이 점술에 관심을 갖는 현상을 비판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어려운 현실 극복 ‘중꺾마’ 노력일 수도
이렇다 보니 최근엔 자신의 운세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점술을 배우려는 MZ세대도 늘고 있다. 지난달 하순 서울 광진구의 한 타로 카페. 평일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스터디 모임이 열렸다. “자. ‘컵 7번’ 카드는 노력 없이 결과만 바라는 경우예요. 취업이 고민인 분이 이 카드를 뽑으면 행동은 안 하고 고민만 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에겐 우선 이력서부터 써보라고 하죠.”
상담사 강의에 정선아(28)씨의 필기 속도가 빨라졌다. 정씨는 “1년간 독학하며 심심풀이로 친구들 점을 봐줬는데 좀 더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찾게 됐다”며 “제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아 부업으로 해볼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36)씨도 “20대 초반부터 진로 고민으로 서울·대구·부산 등 전국의 유명한 점집이란 점집은 다 찾아다녔는데, 관심이 점점 늘면서 직접 배워보기로 마음먹게 됐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점술을 배우려는 MZ세대가 늘면서 점술 상담 업체의 채용 기준이 한층 높아졌다는 얘기도 나돈다. 운세앱 관계자는 “요즘은 20대 중반의 점술가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경제 불황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데 따른 불안감을 달래려는 목적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 나름대로 희망을 갖고 미래에 대비하려는 모습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다만 사주나 점술이 미래를 결코 책임져 주진 않는 만큼 운세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수민 기자 shin.su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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