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R은 전력 게임체인저…대형원전보다 안전하고 경제적”
30년간 K원전 개발 주도…김한곤 혁신형 SMR 기술개발사업단장
사실 원전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찬밥 신세였다가 최근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주요국들이 신재생에너지로는 폭증하는 전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원전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원전 강국 한국에 다시 없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재단법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 기술개발사업단’을 이끄는 김한곤 단장은 지난 30여 년간 후발주자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원전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현장에서 함께 해 온 K원전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서울대와 KAIST를 거쳐 미국 미시간대에서 원자력공학을 공부하고 1997년부터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에서 일하며 ‘APR1400’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APR1400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차세대 한국형 원전으로, 미국 외 국가로는 세계 최초로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인증을 취득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로 수출돼 원전 수출의 문을 연 바로 그 원전이다. 이후 이를 더 진화시킨 ‘APR+’의 핵심기술 개발도 김 단장의 손을 거쳤다.
전 세계가 SMR 개발 경쟁에 뛰어들어
대형원전 개발에 몸담았던 김 단장은 이제 차세대 전력시장의 ‘게임체인저’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SMR 역시 한국이 선두 그룹에 서 있는 분야다. SMR은 기존 대형원전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크기가 작아 주로 바닷가에 건설되는 대형 원전과 달리 반도체공장 등 전력 수요가 많은 산업단지의 지근 거리에 건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주도로 사업단을 설립하고 ‘혁신형 SMR(i-SMR)’을 개발 중인데 김 단장이 그 총괄 책임을 맡았다.
Q :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을 공식화했다.
A : “평생 원전 기술만 연구해온 사람으로서 환영할 일이다. 경제·정치적인 문제를 떠나 2050년까지 정부가 목표로 세운 ‘탄소 중립’(탄소 배출 제로)을 달성하려면 사실 원전밖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도 원전을 늘리겠다고 한다.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에너지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한다.”
Q : 지난 정부는 원전을 배척했는데.
A : “그 5년은 뭐랄까, 무관심의 시간이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탈원전을 선언했으니 일 자체가 없었다. 연구하던 모든 것이 멈춘 그런 시간이었다. i-SMR 또한 이 때문에 5년가량 뒤처지지 않았나. 일감이 떨어진 민간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최근에는 해외 기업과 함께 SMR을 개발하고 있다. 자본 유출이라며 이를 탓하는 사람도 있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 아닌가. 지난 5년간 원전 부품을 생산하는 국내 공급망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졌고, 지금 사업단에서는 이 공급망을 되살리기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에 따르면, 2016년 27조4513억원에 달했던 국내 원자력 산업 총매출은 탈원전 정책으로 2020년 22조2436억원으로 19% 감소했다. 특히 민간 기업이 속해 있는 원자력 공급 산업체 매출은 같은 기간 5조5034억원에서 4조573억원으로 26% 급감했다. 인력 규모도 축소됐다. 전체 산업 인력은 2016년 3만7232명에서 3만5276명으로 5% 줄었는데, 원자력 공급 산업체 인력은 2만2355명에서 1만9019명으로 15% 쪼그라들었다. 김 단장은 “원전 생태계가 조금씩 복원되고 있다”고 말했다.
Q : 여전히 안전 문제 등을 이유로 원전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A : “대형원전의 사고 확률은 10만 년에 2회로 여전히 낮은 편이다. 특히 최근에는 건설기술 발전 등으로 안전성이 과거보다 더 높아졌다. 게다가 한국은 자력으로 원전을 개발해 해외로 기술 수출까지 한 나라가 아닌가. 우리보다 수십 년 먼저 원전을 지은 미국이나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만큼 안전성 면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Q : 우리는 어떻게 원전 강국이 됐나.
A : “아마도 일찌감치 원자력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1978년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건설한 고리 원전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후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기 위해 정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했다. 결국 이게 지금의 원전 강국을 만든 바탕이 됐다. 특히 선진국은 1980년대 이후 원전 건설을 중단했지만 우리는 꾸준히 원전을 지어왔다. 지금은 기술과 경험이 충분히 쌓인 것이다. 1997년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세운 이후 한국전력·한수원·원자력연구원이 각자의 영역에서 연구·개발(R&D)을 이어오고 있다.”
A : “기존 대형원전 대비 훨씬 더 안전하고, 훨씬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SMR은 두 가지 이유로 개발을 시작했다. 첫 번째는 안전성을 보완할 수 있는 원전을 개발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로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AI 등으로 전기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데, 석탄 등 화력발전의 퇴출을 앞둔 이 시점에서 이를 대체할 수단은 현재로는 SMR이 유일하다. 작게 만들어(모듈화) 건설 비용을 줄이되, 사고 가능성을 낮췄으니 현존하는 최고의 발전 기술이라고 본다. 전 세계가 SMR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가장 공들인 건 3세대 ‘APR1400’ 개발
Q : 혁신형 SMR은 무엇이 다른가.
A : “한국은 전 세계 최초로 소형원자로(SMART)를 개발해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나라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자로 개발은 멈췄었지만, 한수원에서는 원전 사고가 재발했을 때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R&D를 10년 넘게 지속해왔다. i-SMR은 이런 연구개발의 결과가 담길 것이다. 미국 등이 개발 중인 SMR보다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일 것이라 믿는다. 이제 개발 시작 단계인 데도 스웨덴, 핀란드, 베트남 등지가 i-SMR에 관심을 두고 있다.”
Q : 30년 가까이 원전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A : “1997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형 원전, 즉 신형 원자로 개발만 해왔다. 가장 오랜 시간 공들인 건 3세대 원전으로 불리는 APR1400이다. APR1400을 개발하면서 외환위기가 터져 개발이 지연되기도 했고, 개발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외국 원전을 순회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발한 APR1400을 신고리 3·4호기에 적용키로 한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출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Q :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A : “사실, 지금이 가장 힘들다. i-SMR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은 물론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는 한 번도 마감 기한을 두고 원전을 개발한 적이 없다. 개발을 끝낸 후 검토 과정을 거쳐 원전 건설 계획을 세우고, 이를 국가 계획에 반영해 실행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i-SMR은 이 모든 걸 동시에, 정해진 기간 내에 해야 한다. 부담감이 크다.”
i-SMR 사업단은 2025년 표준설계를 완료, 2026년 상세 설계 및 사업 준비 후 2028년 표준설계 인가 획득을 목표로 SMR을 개발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2031년 첫 번째 SMR이 완성된다.
Q : 그만큼 자부심도 클 것 같다.
A : “내가 가진 기술로 원전을 짓는 일은, 늘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 자부하며 일한다. 그럼에도 이 분야에서 30년을 몸담다 보니 원전 설치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부침을 겪을 때도 있다. 이번 전기본 발표로 SMR 건설이 확정되니 안전성에 대한 부분이 또 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분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이 최우선인 기술자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한 기술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안전성에 대한 정서적 불안을 해소하는 건 당국과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오유진 기자 oh.y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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