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 이미지 저우언라이, 변절자 가족 16명 몰살 작전 지휘
[제3전선, 정보전쟁] 온화·냉혈 두 얼굴의 지도자
변절자 많아지자 본보기로 집단 처형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 태동기 저우의 리더십이 여기저기서 많이 보인다. 1912년 청 왕조 멸망 이후 격동의 중국 현대사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고비마다 그의 정보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앞날을 대비해 국민당 요로에 스파이를 침투시켜 놓은 저우의 정보전 전략은 열세의 공산당이 어떻게 압도적 우위의 국민당을 이길 수 있었는지 잘 말해 준다. 이러한 저우의 정보 리더십은 격동의 중국 혁명기가 낳은 시대적 산물로 구순장 일가족 몰살 사건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저우의 정보 리더십은 중국대륙 지배를 놓고 국민당과의 일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더욱 빛났다. 먼저 국민당과의 세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정보조직을 신설한 것이다. 1927년 장제스(蔣介石)의 상하이 쿠데타 성공으로 국민당이 대륙을 장악하자, 공산당은 세력이 위축되고 쫓기는 신세가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제스와 국민당의 일거수일투족을 미리 파악해 사전에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저우는 1927년 11월 중국 공산당 최초의 정보기관인 중앙특별행동과(중앙특과)를 신설했다. 이듬해엔 소련 정보기관인 체카를 직접 방문해 정보수집, 적 내부 스파이 침투, 배신자 처단 등 공산혁명에 필요한 정보활동 방법을 배워 중국에 이식했다. 정보전을 비밀병기로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국민당에 침투한 공산당 스파이들은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국민당 정보기관인 중앙통계조사국(중통)에 무선통신전문가로 취직한 첸좡페이(錢壯飛)와 리커눙(李克農), 후디(胡底)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국민당 내부 돌아가는 사정들을 속속들이 공산당 지휘부에 알렸다. 특히 첸좡페이는 앞서 설명한 구순장의 변절 사실을 공산당 지도부에 긴급히 알려 저우 등이 체포되어 처형될 수 있는 사태를 막았다.
저우의 침투정보전은 2차 국공합작 이후 더욱 불을 뿜었다. 그간 쫓기던 신세였던 공산당이 1937년 중일전쟁 발발로 2차 국공합작이 시작되자, 국민당과 공산당간 인적 교류가 자유로워지는 등 우호적 정보여건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저우는 이 틈을 타 국민당의 당, 정, 군 요소마다 스파이를 더 많이 심어놓았다. 중일전쟁 이후 국민당과의 큰 싸움을 내다본 장기포석으로 훗날 국민당과의 마지막 일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저우의 정보전략은 무서운 힘을 발휘했다.
국민당 장제스의 직계인 후중난 부대에 잠입한 슝샹후이(熊向暉), 천중징(陳忠經), 선젠(申健) 등은 국민당군 장교로 근무하면서 국민당군의 작전 계획과 병력배치 등 실전 정보를 신속하게 공산당에 알렸다. 장제스의 작전명령이 국민당 군대의 일선에 하달되기 전에 마오쩌뚱과 저우가 먼저 보고 있을 정도였다. 2만여 명의 중국 공산당 군이 20만 대군의 국민당 후중난 군대와 맞서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정보 덕택이었다. 국민당의 속기사로 침투해 장제스의 속기사로 승진한 선안나(沈安娜)는 13년간 잠복하면서 국민당의 주요 기밀정보를 빼냈다. 특히 여기에는 공산당을 은밀하게 해체하기 위한 국민당의 비밀회의 문서도 있었다. 〈공산당활동제한조치〉, 〈공산당처리방침〉 등이다. 공산당에게는 생사가 걸린 극비정보였다. 이처럼 저우의 용의주도한 정보전 덕택에 공산당은 국민당과 싸움에서 질 수 없을 정도로 국민당 내부를 훤히 보고 있었다.
저우의 장기 잠복 정보전 현재도 적용
저우는 지금의 중국을 만든 건국 지도자이다. 탁월한 정보전을 통해 중국 건국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정보 지도자이기도 하다. 중국 공산당 최초로 정보조직을 만들고, 장기잠복 스파이전 등 현대 중국 정보전의 기틀을 확립했다. 또한 뛰어난 정보 전략가이기도 했다. 국민당 정부에 침투한 스파이들에게 결정적 시기가 올 때까지 기다리게 해 결국 1948~49년 국민당과의 최후 일전에서 정보전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고, 이는 공산당 승리의 토대가 됐다. 그래서 마오쩌뚱도 저우의 정보 리더십이 공산당 승리와 중국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술회했다.
오늘날 중국은 미·중 세력경쟁이라는 더 큰 시대적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국공내전 때의 정보전 성공방식이 재현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저우의 장기잠복 정보전을 경쟁국에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5년 중국계 미국인 진우타이(미국명 래리 우타이 친)가 30년간 미 중앙정보국(CIA)에 잠복해 있다가 적발된 사건이 이를 말해 준다. CIA도 2021년 중국 정보만 담당할 ‘중국미션센터’를 설치했다. 미·중 정보전이 치열해질수록 그 여파는 한반도까지 미칠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스파이를 침투시킬 때 미국 동맹국들의 국민을 자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래저래 우리가 미·중 정보전의 유탄을 맞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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