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플랫폼이 미국에 드리운 그늘
알렉 맥길리스 지음
김승진 옮김
사월의책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전 GM공장 부지에 들어선 거대한 물류창고 건물에는 ‘아마존 풀필먼트(amazon fulfillment)’라는 간판이 내걸려 있다. 초거대 플랫폼 기업 아마존은 주요 대형 물류센터를 풀필먼트센터라고 부른다. 온라인 상거래 고객의 주문을 완수하고 충족시키는(fulfill) 곳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딱 알맞은 이름이다. 축구장 18개 크기에 맞먹는 이 대형 물류센터에서는 로봇 노동자와 인간 ‘피커’ 노동자가 주문에 따라 물건들을 찾고 ‘패커’ 노동자들이 포장한다.
이전에 이곳에 있던 GM은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평균 27달러를 지불했다. 그런데 같은 곳에 세워진 이 물류센터는 그 절반인 시간당 12~13달러를 지급하고 부가급부도 훨씬 적게 준다. 적어도 노동자 입장에서 본다면 풀필먼트와는 거리가 멀다. 그동안 지역 정부와 주 정부가 아마존의 물류센터를 유치하고 지원하기 위해 회사에 제공한 혜택이 4300만 달러(약 600억원)나 되는데도 말이다. 아마존닷컴의 현주소다.
2019년 기준으로 아마존은 미국 전국에 110곳이 넘는 풀필먼트센터를 두고 있다. 미국 인구 절반이 아마존 물류센터 40㎞ 이내 거리에 살고 있다. 물론 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 배송 관련 시설이나 장비가 훨씬 많이 늘어났을 것이다.
공룡 아마존의 존재는 지난 30년 사이 미국의 경제, 사회, 정치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이 책은 주로 아마존 때문에 발생하는 부정적인 현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막강한 시장 지배자인 아마존의 저가 공세와 구매 독점으로 수많은 로컬 기업들이 파산이나 폐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마존은 자사 사이트에 입점한 제3자 판매자들이 판매하는 인기 상품의 복제품을 내놓거나, 많게는 16%에 달하는 높은 판매 수수료를 챙기는 식으로 개인 소매업을 고사시키기까지 했다.
오하이오주와 지방 정부는 아마존의 새 물류센터를 유치하는 대가로 15년 동안 1700만 달러에 달하는 조세 감면을 약속해야 했다. 2017년 한 해에만 아마존은 미국 전역에서 풀필먼트센터를 열면서 1억 달러가 넘는 보조금을 챙겼다. 그 이전 10년을 합하면 보조금 규모는 10억 달러에 달한다. 아마존의 보조금 전담 부서 이름은 ‘경제개발부’다.
일간신문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아마존은 수도 워싱턴에서 가장 규모가 큰 로비 부서를 두고 있다. 판매세, 드론 규제, 우정청 할인율, 반독점법 등에 관한 로비에는 전직 의원·장관 등을 로비스트로 앞장세웠다. 11개의 침실, 25개의 욕실이 있는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 저택은 모두가 파티에 초대를 받고 싶어하는 사교라운지가 됐다.
아마존 등으로 인한 산업구조 재편으로 미국의 노동 환경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안정적이지 않은 근무 시간과 근무 일정, 단순화된 고립적인 방식의 노동 형태 등 이른바 아마존식에 적응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밖에도 아마존이 불러온 지각변동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쿠팡 등이 지배적인 한국에서도 미국 못지않은, 어쩌면 더욱 격동적인 변혁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를 비춰 보는 거울이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부정적인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한경환 자유기고가 khhan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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