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사색] 전력 질주

2024. 6. 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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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질주
여태천

우두커니
몰려오는 저녁의 비를 바라보는
새의 표정으로.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하는 저 타자.
한때 그도
몰려오는 저녁의 비만큼이나
감정의 두께를 가졌겠지.

게임은 언제나 정교한 자세를 요구해.
내리는 저 비를 피할 수 있을 만큼의
주의력이 필요한 거야.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배트를 휘두르고 싶어.
정말이지 근사하게 오늘만큼은
저 새와 함께 우하하게
저공비행을 하는 거야.
그 어디쯤에 분명 네가 있을 테고
무심한 너의 그림자에 놀라
나는 잠깐 당황하겠지.

차례로 자리를 일어서는 저 관중들 앞에서
헛스윙으로
삼진을 당하고 돌아서는 타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싶어.
오늘따라 너의 꽉 다문 입술이 슬퍼 보이는 걸까.

이미 끝난 게임
9회 초 마지막 공격에서 터지는 장외 홈런.
우리의 생은 펜스 너머로 아득히 멀어지고
낮게 몸을 낮추며 비행하는 저 새는
오늘의 비를 무사히 피할 수 있을까.

먹이를 발견한 첫 비행의 저 새를 봐.
그렇게 다시
전력을 다해서
비가 내리는 베이스를
우리는 돌고 또 돌고.『스윙』 (민음사 2008)

아마추어 야구와 달리 프로야구에서는 양 팀의 점수 차이로 인한 콜드게임(called game)은 선언되지 않습니다. 간혹 폭우로 혹은 드물지만 강설이나 강풍으로 경기가 중도에 끝날 뿐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크게 승부가 기울어도 9회까지는 가야 한다는 것. 패색이 짙은 경기를 바라보는 팬의 입장으로는 마음이 답답하겠지만 저는 이런 경기의 관전을 좋아합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을 대신해 신인 선수나 오랜 재활 끝에 어렵게 1군에 올라온 선수들이 교체 투입되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잘 지거나 덜 지기 위해 모두 전력을 다합니다. 오늘의 패배가 결코 나의 패배는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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