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seas trip] 중동 오만 여행 ②

2024. 6. 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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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의 옛 수도 ‘니즈와’
역사와 태양의 도시에 가다

오만의 옛 수도이자 역사 도시로 꼽히는 ‘니즈와(Nizwa)’는 이야기보따리 같은 도시다.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물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리적 환경은 뜨거운 태양 아래 여러 시각적 이야기를 전달한다. 가장 보수적이면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로서 니즈와가 가진 다채로운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떠난 여정을 소개한다.
(위로부터)니즈와 탑 뷰 포인트에서의 일몰 전경, 무스카트 시외버스정류장 , 니즈와 시외버스정류장
오만 역사·종교·예술의 중심지, 니즈와
니즈와는 오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서기 6세기와 7세기경 오만의 수도였다. 오만의 무역과 종교, 예술의 중심지로 군림했던 이 도시는 오늘날 무스카트(Muscat)와 더불어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각광받는다. 무스카트에서 남쪽으로 약 150km 떨어져 있는 니즈와까지는 시외버스로 이동이 가능하다.
2시간가량 달려 버스가 니즈와 중심부에 다다르자 현실에 눈을 뜬다. 영겁의 시간이라 믿었던 순간은 끝이 나고, 아무리 감추려 애를 써도 발길에 묻어나는 아쉬움은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않는다. 광활한 사막 풍경 대신 특색 없는 빌딩이 들어서 있는 도시의 풍경은 무색무취일 뿐이다. 한탄만 한들 시간은 멈출 생각을 않고, 결국 고안해낸 결말은 재빨리 풍경을 바꾸는 일. 버스정류장에서 니즈와 구시가지(Old Town)까지 순간 이동하듯 그렇게 아쉬움을 털어냈다.
(위로부터)오래된 성벽과 건물이 남아 있는 니즈와 구시가지 전경, 오만에서 가장 큰 거대한 원형 탑이 있는 요새 꼭대기
오만은 한때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연결하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현재의 이란과 파키스탄, 남쪽으로는 탄자니아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1600년대 지어진 니즈와 구시가지에는 제국의 역사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래된 성벽을 따라 고대 수도에 당도가면 지루한 도시 풍경은 종적을 감추고 제국이 여행자를 환영한다. 구시가지를 대표하는 니즈와 요새가 첫 목적지. 침략자, 폭동, 전쟁 등 모든 종류의 공격으로부터 니즈와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요새는 건설 기간만 12년이 소요됐다.
(위로부터)구시가지 골목 곳곳에 들어선 현대식 카페,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1668년 요새가 건설되었다, 요새 꼭대기에서 바라다본 니즈와 도심 전경
1668년 요새가 건설될 당시 니즈와 일대는 향신료 무역로의 전략적 요충지로 이를 빼앗으려는 주변국들로부터 도시를 보호할 필요성이 대두된 시기다. 니즈와가 가진 풍부한 천연자원과 전략적 위치는 요새의 강력한 방패를 통해 지킬 수 있었던 데다 나아가 주변국을 통제하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고대 오만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요새 내부에는 여러 개의 방이 미로처럼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지름 45m, 높이 34m의 오만에서 가장 큰 거대한 원형 탑 요새 꼭대기에서는 니즈와 중심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가장 보수적이며 가장 개방적인 도시
(좌측)전통의상과 칸다르 단검으로 치장한 공연단, (우측)이슬람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알 칼리아 모스크
고대 도시 니즈와는 당시 오만에서 가장 보수적인 도시로 명성을 떨쳤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슬람 학습의 중심지이자 오만의 영적, 종교적 수도로서 니즈와는 이슬람교의 영향력을 전파한 도시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 탐험가 윌프레드 테시거가 쓴 책에서 그는 이슬람 종교성직자에 의해 니즈와 방문을 차단당했다고 언급했는데, 니즈와는 종교적이고 보수적인 마을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 배경을 설명했다.
영적, 종교적 수도로서의 본질을 지키고자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던 고대 도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1세기 현재 이 도시는 오만에서 대표적인 관광지로 불리며 매년 많은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
니즈와 요새에서 바라다본 알 칼리아 모스크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도시의 본질, 보수적인 도시로서의 얼굴은 두 곳의 모스크로 확인 가능하다. 2009년에 지어진 ‘술탄 카부스 모스크(Sultan Qaboos Mosque)’와 구시가지에 위치한 오래되고 유서 깊은 ‘알 칼라아 모스크(Al Qala’a Mosque)’가 바로 그곳. 특히 니즈와 요새 인근에 자리한 알 칼리아 모스크는 한때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7세기 초부터 현재의 자리를 지켜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스크 중 하나다.
(좌측)‘칸다르(Khandar)’라 불리는 단검 동상, (우측)니즈와 수크에서 판매되는 수공예품 도자기
구시가지의 마지막 행선지는 니즈와 수크(Souq 전통시장)다. 무스카트에 있는 무트라 수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의 시장이다. 구시가지의 전통적인 건축물 사이에 자리한 수크는 주변 풍경만으로 마치 고대로 회귀한 듯 강렬한 인상을 자아낸다. 이곳 시장은 수공예품과 농산물이 주된 품목으로 고기, 생선, 과일, 채소부터 도자기, 카펫, 꽃, 대추야자, 금 및 은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군을 판매하는 것이 특징이다.
(위로부터)니즈와 수크(시장) 입구, 구시가지의 전통적인 건축물 사이에 자리한 니즈와 수크
그중 니즈와는 오만에서 최고 은제품을 취급하는 도시답게 독특한 스타일과 패턴의 은 주얼리와 ‘칸다르(Khandar)’라 불리는 은으로 제작된 단검 등이 눈길을 끈다. 또한 니즈와 수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오만의 국민 디저트인 ‘할와(Halwa)’다. 버터와 전분, 설탕, 견과류, 샤프란, 타피오카, 카다몬, 대추 등을 혼합해 만드는 할와는 젤리와 같은 질감으로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 디저트다.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여행은 매번 길 찾기의 연속이다
(좌측)니즈와 도심 주택가 풍경, (우측)니즈와 탑 뷰 포인트에서의 일몰 전경
니즈와에 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무스카트의 대중교통이 결코 무용지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 나라의 수도답게 편리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음을. 니즈와가 오만에서 두 번째로 큰 관광도시라고는 하지만 관광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단 뚜벅이족에게는 그렇다. 이동에 따른 고민이 커져갈수록 오만여행에서 렌터카의 유무는 여행의 질을 판가름하는 요소다. 더 구체적으로는 여행의 범위가 맞는 표현이겠다.
니즈와 도심과 구시가지는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외곽으로 범위를 확대하려면 이동수단은 필수다. 택시를 대절하거나 차량을 빌리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한데 중요한 건 비용이다. 오만에서 1일짜리 택시와 렌터카 비용은 거의 3~4배가량 차이가 난다. 그만큼 렌터카와 주유 비용이 굉장히 저렴한 편이다.
니즈와 탑 뷰 포인트로 가는 길, 니즈와 도심 주택가 풍경
하지만 운전을 할 수 없는 경우라면 비용에 상관없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내 경우가 그랬다. 이동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선 택시 말곤 주어진 선택지가 없었던 상황에서 고심 끝 또 하나의 옵션을 스스로 만들었다. 운전이 가능한 동행자를 찾아 나선 것. 운이 좋게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던 호주인 피터(Peter)와 연이 닿았다. 흔쾌히 운전을 자처한 그와 함께 렌터카를 이용해 니즈와 외곽 탐험에 나섰다.
니즈와 도심 투어를 마치며 일몰 감상을 위해 니즈와 탑 뷰 포인트(Top View Point)에 오르는 동안 몇 번이고 길을 헤매야 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 알려준 정보와 실제가 달랐기 때문. 현지인 여럿에게 물어 도착한 일몰 장소에서 태양은 너무나 멋들어진 풍경으로 도시를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슴이 뜨겁게 차오를 만큼. 또 한번 하늘이 도왔다.
태양으로 가는 길, 태양의 ‘산’과 ‘성’
(좌)뛰어난 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자벨 하트 알 셰르키 마운틴 뷰’, (우)뷰 포인트에서 바라다본 ‘태양의 산’의 풍경
렌터카를 타고 니즈와 외곽으로 이동의 범위가 넓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오만은 캠핑의 천국과도 같은 나라라는 것을. 무스카트에 머물 때 캠핑장비를 들쳐 메고 온 유럽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공감할 수 없었던 사실이 눈앞에 현실을 맞닥뜨리고 난 후 퍼뜩 고개가 절로 움직여졌다. 그 사실은 니즈와 숙소에서 차를 몰아 자벨 하트 알 셰르키 마운틴 뷰(Jebel Hatt Al Sherqie Mountain View)에 당도하고 더욱 절감했다.
독특한 건축미와 실내 장식이 특징인 자브린 성 내부, 자브린 성 꼭대기에서 바라다본 주변 마을 풍경
니즈와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이곳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니즈와에서 가장 뛰어난 산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대기가 맑은 날에는 뷰 포인트에서 서쪽으로 자벨 샴스(Jabel Shams)까지 바라다볼 수 있다. 해발 3,018m의 오만 최고봉인 이 산은 ‘태양의 산’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봉우리가 높아 오만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이유에서다.
자벨 하트 알 셰르키에서 서쪽으로 자벨 샴스를 거쳐 하자르 산맥(Hajar Mountains)까지 이어지는 길은 ‘태양으로 가는 길’이다. 이 일대에 여러 개의 트레킹 코스와 다수의 캠핑장이 자리해 등산과 캠핑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게다가 오만은 산이나 숲, 사막 등지에서의 오지캠핑을 허용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자유로이 텐트를 칠 수 있다.
(좌로부터)넓은 평원에 우뚝 솟아 있는 ‘자브린 성’, 좁다란 계단으로 이어지는 자브린 성 내부 모습, 독특한 건축미와 실내 장식이 특징인 자브린 성 내부
광활한 산의 경치를 뒤로 하고 차를 몰았다. 니즈와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작은 마을, 자브린(Jabreen). 마을이라고 하기도 뭣한 이곳은 넓은 평원에 우뚝 솟아 있는 오래된 성(Castle)의 존재가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자 전부인 곳이다.
1675년 이맘 빌-아랍 빈 술탄(Imam Bil-Arab Bin Sultan)이 자브린 성의 설계와 건설을 담당했다. 큰 돌과 짙은 회색 사암, 두꺼운 모래와 석고로 덮여 있는 아름다운 궁전이자 요새, 성인 곳. 산과 사막 사이에 자리한 이곳은 일년 내내 뜨거운 태양을 받는 지리적인 요소로 인해 당시 오만에서 점성술, 의학, 이슬람 법 학습의 핵심 장소로 각광받기도 했다.
오래된 산간마을 그리고 최신의 박물관
(좌로부터 시계방향)녹색 야자수 정원의 오아시스가 있는 곳, ‘미스팟 알 아브리옌’, 오만 관개 시스템인 ‘팔라즈, ‘오만 어크로스 에이지 뮤지엄’ 외부 전경
바위, 진흙, 돌로 지어진 흥미로운 건축물이 있는 산간마을이 있다고 해서 들른 곳이 미스팟 알 아브리옌(Misfat Al Abriyeen)이다. 농촌마을에는 친근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통 석조 주택인 미스파 올드 하우스가 있다. 팔라즈(falaj)의 흐르는 소리와 함께 녹색 야자수 정원의 오아시스가 있는 곳이다.
팔라즈는 극도로 건조한 지역에 건설된 관개 시스템으로, 농업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이곳 산간마을에서는 경사면의 녹지에서 솟아오르는 야자수, 오래된 집과 폐허의 잔해 등을 볼 수 있다. 아랍의 오래된 아치, 짧은 집 입구, 진흙과 돌담, 전통적인 목재 들보 천장, 오만 특유의 대문 디자인 등 마을 일대가 살아 있는 건축 박물관이다.
(좌로부터 시계방향)기하학적 건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 ‘오만 어크로스 에이지 뮤지엄’, 수천 년의 역사가 광범위하게 펼쳐진 ‘오만 어크로스 에이지 뮤지엄’, 첨단 기술을 통한 오만의 풍부한 유산을 보여주는 박물관 내부 전시들
니즈와 외곽 여행의 종착지는 2023년 초 문을 연 최근 오만에서 가장 핫한 곳, 문화유산박물관이다. ‘오만 어크로스 에이지 뮤지엄(Oman Across Ages Museum)’, 이곳은 기하학적 건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만의 옛 통치자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알 사이드(Sultan Qaboos bin Said Al Said)’의 유산 프로젝트로 추진된 이 박물관은 알 하자르 산맥과 그 협곡의 특별한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되었으며, 오만 왕국의 독특한 특성과 역사적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어졌다.
박물관 내부에는 선사시대 최초의 정착민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시대, 왕조 및 문명을 거쳐 오만의 수천 년의 역사가 광대하고 광범위하게 펼쳐진다. 오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것. 나아가 기하학, 빛을 테마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는 전시 디자인은 첨단 기술을 통한 오만의 풍부한 유산을 보여준다.
올드 하우스 주변 골목길 풍경
박물관에서는 전시내용을 포함해 내·외부 건축 디자인을 살피는 데만 2~3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박물관이라기보다 21세기에 지어진 성이자 궁전과도 같다. 과거와 한 가지 다른 점은 오만을 세계 곳곳에 널리 알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개방적인 도시이자 국가로, 오늘날 오만은 존재한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33호(24.6.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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