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인호]‘전 국민 25만 원’, 스위스의 길과 그리스의 길
고액연금 그리스는 나랏빚 늘어 경제 위기
포퓰리즘 유혹, 장기적 영향 따져 떨쳐내야
최근 전 국민에게 각각 25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려는 일부 움직임이 있다. 이 계획에 필요한 금액은 약 13조 원이다. 이 돈의 규모는 상장 대기업들의 시가총액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LG전자의 시가총액은 15조9000억 원이며 직원 수는 3만5000명이다. 한국전력의 시가총액은 12조8000억 원으로 직원 수는 6400명이다. 이렇게 큰 상장 기업을 통째로 살 수 있는 정도의 큰 금액을 25만 원씩 개인에게 나눠 준다는 것은 혹시 여름 아스팔트 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러한 사례가 실제 과거 2016년 스위스에서 있었다. 일률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300만 원 현금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였다. 결과는 당시 스위스 국민이 이러한 기본소득 안을 전체 국민투표의 76.9%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반대한 것이다. 국민의 의식이 놀랍다. 그들은 일시적인 현금 지급보다는 오히려 근로 의욕이 지속될 수 있는 장기적인 방안을 요구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밀턴 프리드먼은 정책 결정의 중요한 원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책을 그 결과가 아닌 의도로 판단하는 것은 큰 실수 중 하나다(One of the great mistakes is to judge policies and programs by their intentions rather than their results).” 이는 정책이 국민에게 순간적인 만족감을 제공하겠다는 의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장기적인 결과와 영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일시적인 현금 지급이 당장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플레이션, 사회적 불균형 같은 부작용이 결국 사회와 경제에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킨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에서 후안 페론 정부(1946∼1955년)는 노동자의 임금을 일괄적으로 인상하고 공공 지출을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페론 초기에는 인플레이션이 10%대였으나 말기에는 40%를 넘어서면서 인플레이션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는 기본 식품, 연료, 의약품에 대한 광범위한 보조금 제공과 가격 통제를 통해 초기에는 저소득층의 생활비 부담을 가볍게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생산자의 수익성 감소로 물품 부족을 가져왔고,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그리스의 경우 유럽에서 가장 관대한 연금 제도와 공공 부문의 확대로 인해 조기 은퇴와 평균 임금의 상당 부분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러한 정책들은 많은 사람이 공공 부문에서 일시적으로 고임금과 안정적인 직장을 찾도록 했지만, 결국엔 국가 부채의 증가와 경제 위기를 일으켰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0년 7월 임차인의 거주 기간 안정화와 주거비 감소를 의도로 임대차 2법을 시행했다. 임차인의 거주 기간을 기존 2년에서 2년 더 연장하고, 임대료 인상을 직전 계약 대비 5% 이내로 제한하는 정책이다. 하지만 이 법의 실제 시행 결과는 정책 의도와는 달랐다. 법이 시행된 이후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격은 2020년에 12.5%, 2021년에는 13.1% 상승했다. 그리고 전세가격 통제 이후 임대차 시장은 시장 가격, 규제 가격, 그리고 협상 가격이 형성되어 더 복잡해졌다. 그리고 임대차 2법이 시행되기 전에 이미 임차인들은 평균적으로 3.8년 동안 거주하고 있었다. 따라서 법적 연장이 없어도 거의 4년 가까이 거주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일시적 달콤함에 대한 포퓰리즘의 유혹이 의도와 결합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주목하자. 그럼 포퓰리즘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을까. 먼저, 정부는 국민이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생태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전문가와 학계는 포퓰리즘 정책이 종종 직면하는 경제적 불안정성과 재정적 비효율성을 동시에 보여주며, 보다 지속가능하고 효율적인 정책 수립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국민은 단순하고 일시적인 정책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어떤 복잡한 문제와 정책에 대해서 결과와 영향을 깊이 이해하면서 정책의 본질에 접근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송인호 객원논설위원·KDI 경제정보센터 소장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野, 정청래-최민희 등 초강경 인사 지명… 與 “국회 일정 불참”
- 이화영, 1심 징역 9년 6개월…쌍방울 대북송금 유죄
- 최전방 사단장, 北 오물풍선 테러때 음주 회식 논란
- 탈북민단체, 전단이어 ‘페트병 쌀’ 500kg 北 보내
- 서울대 의대 17일 휴진 결의에…정부 “유감” 의협 “경의”
- 후티 반군, 유엔 직원 9명 납치 감금…추가 억류 가능성도
-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약국에서 수면제를 사서 먹어본 적이 있다
- 액트지오 고문 “성공률 20%는 양호한 수치…동해 유정 ‘홍게’에서 트랩 등 확인”
- ‘현충일 욱일기’ 의사 결국 사과 “상처 받은 모든 분께 죄송”
-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 신상 공개한 유튜버 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