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일자리 때문에 결국 다 망한다고?”…‘아마존의 역설’ 뭐길래 [Books]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6. 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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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 맥길리스의 ‘아마존 디스토피아’
아마존 로고. [로이터 = 연합뉴스]
글로벌 인터넷 서점에서 출발해 이제는 전 세계 ‘모든 곳’에 ‘모든 것’을 파는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1994년 미국 시애틀로 이주해 지금의 회사를 세웠다. 주요 공항이 있을 만큼은 규모가 컸고, 미국에서 가장 큰 도서 물류센터 중 하나가 있는 오리건 주 로스버그에서 차로 6시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베조스는 회사가 성공한다면 아주 많은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는데, 시애틀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있어 활용 가능한 인력 풀이 충분했다.

아마존이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주요 도시 가운데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었던 시애틀도 급변을 거듭했다.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혁신을 할 수 있는 두뇌를 확보하고 있느냐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정보기술(IT) 분야 회사들이 대거 유입됐다. 페이스북, 구글, 애플도 연구개발 부서를 시애틀에 새로 설립했다. 대침체 이후 10년 간 22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2018년에는 매주 50명의 개발자가 시애틀로 이주해 들어오는 것으로 추산됐고, 그해 광역 시애틀의 1인당 소득은 7만5000달러에 육박해 수십 년 전과 비교해 무려 25%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단, 혁신에 따르는 거대한 보상은 일부 전문 인력층에 집중됐다. 시애틀의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 소득이 도시 전체 소득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였다. 주택 값도 치솟아 미국 어느 도시보다도 비싸졌다. 시애틀은 점점 더 가족을 부양하면서 사는 게 불가능한 도시가 됐다. 출산율은 뚝 떨어졌고 이미 2014년에 전체 가구 중 아이가 있는 가구가 5분의 1에 못 미칠 정도로 줄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졌다. ‘초번영 도시’가 된 이곳에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체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아마존 디스토피아
신간 ‘아마존 디스토피아’는 탐사보도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비영리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의 선임기자인 알렉 맥길리스가 글로벌 플랫폼 기업 아마존이 미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놨는지 비판적으로 파헤친 탐사 르포다. 아마존이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지역적 격차를 더욱 벌리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심지어는 정치와 민주주의마저 타락시켰던 현장과 그 현장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회전문 인사와 로비, 세금 회피 등 아마존의 비리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맥길리스는 “아마존은 미국이 어떤 상태로 변모해왔는지 이해하는 데 이상적인 틀”이라며 “모든 곳에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면서 오늘날 미국을 변모시키고 있는 많은 요인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아마존 창업자의 어마어마한 부와 아마존을 구성하는 노동자 다수의 미미한 임금 간 격차는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을 보여 준다. 아마존이 주 정부와 연방 정부의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미국 워싱턴의 권력 구조에서 주요 세력으로 자리잡았다는 점도 자본과 결탁한 미국 정치계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아마존은 사람들의 대면 상업 활동을 줄이고 지역사회의 조세 기반을 잠식하면서 사회적 유대의 해체에도 일조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펜데믹을 거치면서 아마존을 통한 소비 방식은 이제 단순히 편리한 서비스를 넘어서 필수적인 존재가 돼버렸다. 최근 세계 경제가 침체하면서 수많은 기업이 구조 조정에 나서거나 파산 신청을 하고 있지만, 아마존만큼은 계속해서 새로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에서만 수십만 명씩 새로운 인력을 고용하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일자리는 과거의 숙련되고 보람된 노동 가치를 더 이상 제공하지 못하는, 단순하고 고립된 저임금 노동일 뿐이다. 곳곳에선 로컬 기업이 소멸해갔다.

책에 따르면 베조스는 2014년 아마존에 대한 책을 펴낸 한 기자에게 “아마존은 단지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이기만 한 게 아니라 두 번째로 큰 강보다 수 배 더 큰 강이고, 다른 모든 강을 다 날려버리는 강”이라고 말했다. 쿠팡과 같은 플랫폼 기업이 일상을 지배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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