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도깨비, 굿바이 팬텀!” 55년간 수고했어요

권혁철 기자 2024. 6. 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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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 공군 예비역 소장(90·동국대 석좌교수)이 7일 오전 공군 수원기지에서 열린 'F-4E 팬텀 퇴역식'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기' 팬텀에 작별을 고했다.

1969년 8월29일 당시 34살이던 이재우 공군 중령은 미국에서 팬텀기(F-4D)를 이틀 간 몰아 태평양을 건너 공군 대구기지에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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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수원기지서 ‘F-4E 팬텀 퇴역식’
7일 오전 공군의 F-4E 팬텀 전투기가 공군 수원기지에서 거행된 F-4 팬텀 퇴역식\'에서 신원식 국방부장관의 출격명령을 받고 마지막 비행임무를 위해 이륙하고 있다. 공군은 팬텀 퇴역의 역사적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이날 비행하는 F-4E 중 1대를 공군 팬텀의 과거 모습인 정글무늬(Jungle Camouflage Pattern)로 복원했다. 공군 제공

“팬텀을 보내며 마지막으로 외쳐본다. 하늘의 도깨비, 굿바이 팬텀!”

이재우 공군 예비역 소장(90·동국대 석좌교수)이 7일 오전 공군 수원기지에서 열린 ‘F-4E 팬텀 퇴역식’에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기’ 팬텀에 작별을 고했다.

1969년 8월29일 당시 34살이던 이재우 공군 중령은 미국에서 팬텀기(F-4D)를 이틀 간 몰아 태평양을 건너 공군 대구기지에 내렸다. 1968년부터 이 중령을 비롯한 공군 조종사 6명은 팬텀 도입요원으로 미국에 건너가 인수교육을 받았다. 1968년 한반도는 사실상 전시 상태였다. 그해 1월21일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과, 이틀 뒤인 1월23일 발생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 사건이 일어났고 남북은 이틀에 한번 꼴로 군사분계선에서 교전을 벌였다.

이재우 예비역 소장은 이날 팬텀 퇴역식에서 “미국에서 훈련 중이던 조종사들은 당시 긴박했던 안보 상황에 대비해 인수 교육을 받자마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태평양을 횡단해 즉시 귀국했다”며 “당시 최신예 팬텀을 타고 공중급유를 받으며 대구기지 활주로에 안착시킨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심장이 요동친다”고 말했다. 공군은 1969년 당시 세계 최강의 신예기였던 F-4D를도입하면서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고 공군은 설명했다.

1969년 미국에서 팬텀기를 몰고 한국으로 왔던 이재우 공군 예비역 소장이 7일 오전 공군 수원기지에서 열린 ‘F-4E 팬텀 퇴역식’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KFN 화면 갈무리

그는 팬텀을 도입하던 1960년대 후반 공군의 ‘퍼스트 펭귄’이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남극 펭귄들이 바다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두려워할 때 펭귄 한 마리가 용기를 내어 먼저 뛰어들면 나머지 무리들이 바다로 들어가듯이, 당시 팬텀 도입 요원 6명은 퍼스트 펭귄 역할을 맡았다. 지금까지 7600명의 공군 조종사들이 팬텀을 몰았다.

그는 이날 퇴역식에서 ‘예비역 소장’이 아닌 “공군 예비역 전투조종사”라고 스스로 소개했다. 국가의 부름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담은 것이었다.

이날 행사장에는 ‘호국영웅석’이 마련됐다. 여기에는 팬텀을 타고 임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조종사 34명의 이름과, 추락한 팬텀 19기의 기체 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놓였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기념사 도중 순직한 조종사 34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렸다.

7일 경기 수원시 공군 10전투비행단에서 열린 F-4 팬텀 퇴역식에서 마지막 비행 임무를 마친 F-4E 팬텀 전투기와 명예전역장이 함께 있다. 연합뉴스

F-4E 팬텀 전투기 2대가 32분 간의 고별 비행을 마치고 활주로에 내렸고 한 대당 2명씩 모두 4명의 조종사는 행사를 위해 따로 준비해 둔 조종간을 신원식 장관에게 상징적으로 넘겼다. 조종간은 전투기에게 조종사의 의지를 반영하는 중요한 매개체다. 조종사가 조종간을 국방장관에게 넘겼다는 것은 모든 임무가 끝났음을 상징한다.

신 장관은 임무를 마치고 무대로 들어선 팬텀에 ‘명예 전역장’을 수여했다. 전역장에는 ‘55년간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고 명예로운 퇴역을 하게 되므로 이에 전역장을 수여함. 2024년 6월7일 국방부 장관 신원식’이라 적혀 있었다. 신 장관은 팬텀 기수에 축하 화환을 건 뒤 기체 오른편에 ‘전설을 넘어, 미래로’라는 문구를 적었다.

신원식 장관은 “팬텀이 1958년 미국에서 출고돼 첫 비행을 했다. 제가 58년 개띠라, 팬텀은 내 친구”라며 “팬텀은 죽지 않고 잠시 사라질뿐이고, 대한민국 영공수호에 바친 팬텀의 고귀한 정신은 세계 최고 수준의 6세대 전투기와 함게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팬텀 퇴역식은 무기체계인 팬텀을 마치 군인 퇴역식처럼 치뤄 눈길을 끌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팬텀의 역사적 의미, 팬텀 조종사·정비사·무장사 등의 열정과 노력, 팬텀 문화가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사람에게 하듯 전역장을 수여하고 퇴역식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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