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전서 존재감 빛났다… 주민규·박승욱의 ‘인생 역전극’

김영준 기자 2024. 6. 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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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한국이 월드컵 아시아 예선 싱가포르전을 7대0 대승으로 끝내자 온라인 중계사는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과 함께 트로트 가수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배경 음악으로 내보냈다. 이날 만 34세 54일 나이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린 주민규(울산)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고(故) 김용식 39세 264일(1950년 4월 홍콩과 친선전)에 이어 역대 둘째로 많은 나이에 넣은 A매치 데뷔 골이었다.

그는 이미 국가대표 최고령 기록을 하나 갖고 있다. 지난 3월 21일 태국전에서 만 33세 343일 나이로 역대 최고령 A매치 데뷔 경기를 치렀다. 한국 축구 전설 중 하나인 박지성이 국가대표를 은퇴한 게 30세, 선수 생활을 완전히 접은 게 33세인데 그는 남들이 은퇴할 나이에 만개한 전형적인 늦깎이인 셈이다.

주민규는 이날 싱가포르를 상대로 데뷔 골을 포함 1골 3도움을 몰아쳤다. 기존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 조규성(미트윌란)이 부상으로 빠진 사이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11일 중국과 홈 경기가 남았지만 이미 ‘김도훈호’ 최대 성과로 꼽힌다.

주민규는 30대에 한국 프로축구 K리그를 대표하는 간판 골잡이로 떠오른 대기만성 인생 역전 주인공이다. 2021년 제주 소속으로, 지난해 울산 소속으로 두 차례 K리그1(1부) 득점왕에 올랐다. 각각 31세, 33세 나이였다. 그의 20대는 대부분 2부 리그에서 1부 진입을 향해 안간힘을 쓰다 보냈다. 2019년 울산 현대에 영입되면서 1부 경험을 했으나 이내 다시 2부 제주로 이적했다.

주민규(가장 오른쪽)가 6일 싱가포르와 벌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헤더 골을 넣고 있다. /연합뉴스

많은 대표팀 선수들이 연령별 대표를 차곡차곡 걸은 것과 달리 한 번도 태극 마크를 단 적이 없다. 뒤늦게 빛을 발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국내 리그를 호령했지만 국가대표 감독들은 매번 그를 외면했다. 프로 리그 공식전에서 넣은 득점만 57골. 결정력은 좋지만, 패스 등 연계 능력이 약점으로 꼽혔다. 주력도 빠르지 않아 최전방에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는 평가도 받았다. 파울루 벤투와 위르겐 클린스만, 두 외국인 감독은 그를 부르지 않았다. 주민규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제주 소속 마지막 해였던 2022년부터 패스 연습에 주력했다. 공을 받자마자 동료들 움직임을 살피고 다시 패스를 내주는 훈련을 반복했다.

그러던 지난 3월 임시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 감독은 그를 호출했다. 황 감독은 “K리그에서 3년 동안 50골 넣은 선수는 주민규밖에 없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고 했다. 이어 임시 지휘봉을 넘겨 받은 김도훈 감독도 그를 뽑았다. 그리고 3번째 A매치 경기에서 진가를 드러냈다. 최전방에서 수시로 내려와 좌우 측면 공격수(손흥민·이강인)들에게 패스를 뿌렸다. 그 노력은 ‘도움 해트트릭’이란 결실로 돌아왔다. 그를 공격 연계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잉글랜드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에 빗대 ‘주리 케인’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축구 팬들도 나왔다. 김도훈 감독은 “득점력만 가진 게 아니라 팀 플레이에도 어울린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전 이후 그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 감독님께서 ‘대표팀 은퇴라는 건 안 불러주면 은퇴’라고 하시더라. 그 말이 정말 와 닿았다. 축구 인생에서 오늘이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간절하게 뛰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에 한계를 두지 않고 할 수 있는 역할을 끝까지 하며 버텨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전에서 ‘인생 역전극’을 연 선수는 또 있었다. 이날 후반 25분 교체 출전하며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수비수 박승욱(27·상무)이다. 그는 후반 34분 배준호(스토크시티) 득점을 도와 데뷔전에서 곧바로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국내 1부 리그 무대도 밟지 못하던 선수였다. 2019년 세미 프로였던 K리그3(3부) 부산교통공사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를 1부 무대로 이끈 건 김기동 현 FC서울 감독. 포항 사령탑이던 김 감독은 부산교통공사와 연습 경기 도중 박승욱 플레이를 보곤 “쟤 누구야”라면서 높이 평가했고, 2021년 7월 포항으로 데려왔다.

기회를 잡은 박승욱은 이적하자마자 활약을 펼쳤다. 포항의 ACL(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주역에 대회 4강 베스트 11에도 뽑혔다. 지난해까지 포항 주전 수비수로 활약하다가 지난해 연말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의 올 시즌 선두권 돌풍을 이끄는 주역 중 하나다.

6일 싱가포르전에 출전한 박승욱. /대한축구협회

‘김도훈호’에서 그는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용한 자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포항 이적 전까지 주로 중앙 수비수와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포항에서 오른쪽 풀백을 맡았다. 상무에선 다시 중앙 수비수로 활동했는데 싱가포르전에선 다시 오른쪽 풀백으로 나섰다. 그는 “자신을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K3리그에 있었던 경험이 나무에 물을 주는 그런 소중한 ‘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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