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달라 외국인끼리도 말 안통해 … 안전교육은 서류 사인 '패스'

권선미 기자(arma@mk.co.kr) 2024. 6. 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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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시공 위험 몰린 건설현장
한 팀에 5~6개 국적 제각각
10개 필요한 핀 2~3개만 박고
배관 고정 안돼 누수사고 속출
불법체류 근로자 없으면
전국에 있는 건설현장 올스톱
단속건수 6년간 4분의1 토막
고용주 인권·법률리스크 노출

◆ 공사현장 점령한 불체자 ◆

내국인이 고된 건설현장 근로를 기피함에 따라 외국인과 불법체류자의 공사장 근로가 크게 늘고 있는 가운데 7일 서울 시내의 한 아파트 공사현장에 한글과 중국어·베트남어로 병기된 안전주의 문구가 걸려 있다. 한주형 기자

"형틀, 목수 공정에서는 한 명이 거푸집을 들고 있는 사이에 빠르게 핀을 고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인부들 국적이 우즈베키스탄, 중국, 베트남으로 다 달라요. 말이 안 통하다 보니 손짓발짓으로 눈치껏 작업합니다. 사실은 대충 작업한다고 봐야죠."

건설노동자 B씨는 공사현장에서 벌어지는 불법체류 노동자 문제를 이렇게 설명했다. 형틀·목수의 경우 한 팀당 10명씩 팀을 꾸린다. 이들의 국적만 5~6곳으로 제각각이다.

안전교육도 문제지만 실제 일을 할 때 10명 간에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B씨는 '이러다 사고 나겠다'는 경각심이 하루에도 몇 번은 든다고 말했다.

형틀·목수·철근을 비롯한 기능공은 단순 작업이 아닌 기술을 요하는 기술직이다. B씨는 "아래층에서 0.1㎜가 틀어지면 위로 올라갈수록 엄청나게 큰 차이가 발생한다"며 "수평과 수직을 정확하게 맞추는 게 부실 공사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국적팀은 의사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10개를 박아야 하는 핀을 2~3개만 박고, 배관 고정도 제대로 하지 않아 누수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생기곤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려는 내국인이 없다면 불법체류자라도 써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이 문제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내국인 노동자들의 설명은 다르다. 한 건설노동자는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을 구하지 못해 허탕 치는 한국인 노동자가 많다"며 "불법체류자처럼 장시간·중노동으로 부려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를 3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불법체류자를 단속한다고 해서 이들을 모두 현장에서 빼내면 중단되지 않는 현장이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건설현장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단속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은 2017년 25만1041명에서 지난해 42만3675명으로 1.7배 증가했다.

반면 본지가 고용노동부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건설현장 불법체류자 적발 수는 3743명에서 821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이는 실제 불법체류자 숫자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실효성 있는 단속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불법체류자 없이는 건설현장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단속할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2022년 12월 건설현장의 외국인 고용 제한 전면해제 추진을 발표했다. 이후 건설현장 인력이 불법체류자로 채워지는 현상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당시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우리 국민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리드하면서 공정에 참여하고 일자리를 보호하는 게 맞는다. 각 협회에서 내국인 중심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연수시켜서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며 감독은 내국인이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당시 임이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는 "중소 전문 건설업체 대다수가 외국인 고용허가제 위반으로 외국 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고용제한 해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법무부는 필요한 분야에 외국 인력을 적절히 투입하되 불법체류 관리도 효과적으로 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불법체류자의 건설현장 투입만 늘어났을 뿐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지자체가 발주한 관급공사현장까지 불법체류자 유입이 난무하고 있다. 한 건설노동자는 "건설 경기 위축으로 가뜩이나 일자리가 준 상황인데, 현장 기술이 전혀 없는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하는 현장이 부쩍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건설현장에서 이런저런 불만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오자 경찰청은 4월부터 오는 30일까지 건설현장 외국인 근로자 범죄에 대한 집중단속을 실시 중이다. 경찰은 '통보의무 면제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불법체류 외국인이 범죄 피해자라면 강제 출국 우려 없이 피해 신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불법체류자는 업무 능력이나 기술 습득 의지가 정상적인 근로자에 미치지 못하고 산업재해에 취약하다. 작업 중 크게 다쳐도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을 받기 어렵고, 고용주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인권, 법률 리스크도 상당하다.

업계 관계자는 "숙련공이면서 한국어를 잘하는 합법체류자들은 1명 몫을 제대로 해내는 경우가 많다"며 "장기적으로 건설현장에서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한국인과 합법체류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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