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찰기 쫓고 간첩선 격침…55년간 지켜줘 감사합니다 [르포]
#7일 경기도 수원 공군기지. 적막한 활주로 위로 'F-4E 팬텀(도깨비)'의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흰 연기와 웅장한 엔진음을 내며 날아오른 팬텀기는 최대속도 마하 2.4(시속 2937㎞)로 마지막 비행을 펼쳤다. 팬텀기가 머리 위를 지나갈 때마다 55년 간 한반도 영공을 수호해 온 역사가 함께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55년의 팬텀기 역사는 총 33분 간 고별비행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팬텀기에는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실제로 팬텀기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잉태된 전투기다. 1960년대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보상으로 미국 정부가 제공한 특별 군사원조 1억 달러 중 6400만 달러를 들여 F-4D 6대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세계 최강 전투기였던 F-4D 도입은 미국·영국·이란에 이어 전 세계 4번째였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북한과 비교해 군용기 보유 대수가 절반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F-4 전투기 도입 계기로 공군력을 양적·질적으로 압도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69년 8월 F-4D를 도입한 후 개량형인 F-4E, 정찰기인 RF-4C 등 총 187대의 팬텀기를 운용했다. F-4D는 2010년, RF-4C는 2014년 각각 퇴역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F-4E도 이날 속으로 떠나게 됐다.
F-4E는 F-4A부터 F-4E로 진화한 F-4 시리즈 중 최신형이다. 2인이 탑승할 수 있는 복좌기로 최대속도 마하 2.4, 최대 무장탑재량 7.3톤(t)에 달한다. 폭격 임무와 엄호, 적 항공기 침투 저지, 근접항공지원작전 등 다양한 항공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또 기관포가 장착돼 있고, 공대공(AirToAir)과 공대지(AirToGround) 미사일, 중거리 공대지 미사일 팝아이(Popeye·AGM-142) 등도 탑재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F-4는 핵투발 능력을 보유하기도 했다. 1960~70년대 세계 최강 전투기로 통했다.
F-4 팬텀은 1958년 첫 비행을 마친 뒤 1985년 단종될 때까지 전 세계에서 총 5195대가 만들어졌다. 최초에는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에서 운용할 함재기로 개발됐으나 성능의 우수성이 입증돼 미 공군과 해병대는 물론 우리나라 등 서방 10여개국에서 운용됐다.
반세기 넘게 활약한 F-4D 팬텀은 우리나라에서 '하늘의 도깨비'로 불렸다. 1971년 6월 발생한 소흑산도(現 가거도) 근해 대간첩작전은 팬텀의 능력을 증명한 대표적인 전적이다. 북한의 대형 무장간첩선이 소흑산도 근해에 출몰하자 공군과 해군은 합동작전을 벌였다. 북한 간첩선은 대공화기로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공군 F-4D 전투기는 간첩선을 끈질기게 추격한 끝에 격침시켰다.
1975년에는 북한 김일성의 중국 방문, 베트남 공산화 등 안보 위기 상황이 조성되자 우리 국민은 앞다퉈 방위성금을 냈다. 그 중 70여 억원으로 F-4D 5대를 구입했다. 이 전투기가 바로 '방위성금 헌납기'로 불린다.
1980년대에도 대활약을 펼쳤다. 북한에서 이웅평 대위가 미그-19기로 귀순했을 때 비상출격해 안전하게 수원기지로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1998년에는 동해 상공에 출현한 러시아 정찰기 IL-20을 식별·차단하기도 했다.
공군은 전력 증강 사업을 지속 추진해 1986년 4월 F-16D를 도입했고 2005년 10월에는 F-15K 2019년 3월에는 F-35A를 도입했다. 이처럼 기존 전력을 대체할 최신 전력이 도입됨에 따라 팬텀의 역할은 점차 줄어들어 퇴역이 결정됐다.
이어 "권선징악의 상징인 도깨비처럼 하늘의 도깨비 팬텀은 적에게는 공포를, 우리에게는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줬다"며 "팬텀 덕분에 대한민국은 든든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맥아더 장군이 말한 것처럼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라며 "팬텀 또한 죽지 않는다. 잠시 사라질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영공 수호에 평생을 바친 팬텀은 세계 최고 수준의 6세대 전투기와 함께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팬텀 그동안 수고 많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날 퇴역식에 참여한 이재우 공군 예비역 소장(89·동국대 석좌교수)도 F-4E 팬텀에 작별을 고하며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이 전 소장은 1968년 미국 데이비스-몬산 공군기지에서 비행훈련을 받고 1969년 8월 미국으로부터 F-4D 팬텀을 처음 도입해 온 전투 조종사 중 한 명이다.
이 전 소장은 "미국에서 훈련 중이던 조종사들은 당시 긴박했던 안보 상황에 대비해 인수 교육을 받자마자 공중급유를 받으면서 태평양을 횡단해 즉시 귀국했다"며 "당시 모든 전투요원들이 총력을 기울여 단시간 내 작전태세를 갖춤으로써 세계의 공군 역사상 팬텀기의 전력화를 가장 빠르게 달성했던 기록은 지금도 빛나는 자랑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이 전 소장은 "석별의 정을 나눈다고 하더라도 팬텀기는 전투 조종사들 마음 속에서 영원히 생동할 것"이라며 "우리 도입 요원들은 모든 역량을 후진들에게 전수하고 국가 안보를 위해 생을 바칠 것을 굳게 맹세한다"고 했다. 그는 "팬텀을 보내며 마지막으로 외쳐본다"며 "하늘의 도깨비, 굿바이 팬텀. 팬텀이여 안녕"이라며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수원(경기)=김인한 기자 science.inh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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